죽었으면 큰일 날 뻔
한순자 권사 / 기장신앙촌6·25 전쟁 때 피란다니다가 이질에 걸렸습니다. 지금 말하면 민간 요법이라고 하겠는데, 양귀비 말린 것을 끓여먹었습니다. 양귀비라하면 일종의 마약 성분입니다. 저는 3일만에 깨어났고, 깨어나서 보니 제 손에는 가지, 고추 등이 잡혀있었습니다. 깨지 않는 저를 죽지 않게 데리고 다녔다고 했습니다. 이질은 나았지만 눈이 안 보였습니다. 누구인지도 못 알아보고 형체만 보이는 정도였습니다.
희망이 없어 죽으려고 작정하고 약을 3번이나 먹었습니다. 수면제도 모았다가 먹고, 무슨 뿌리라는 것도 먹고, 그랬는데 안 죽어졌습니다. 저는 곡기를 끊고 물도 먹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나흘이 지나니까 죽을 것 같았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누웠습니다. 아버지가 들어오셔서 맥을 잡아보시더니 목을 놓고 울기 시작하시는데, 귀로는 들리니까 내가 죽으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저렇게 울겠구나 싶어서 그때 물을 마시고 뭘 의지해도 해야겠기에 옆집에 사시던 권사님의 전도로 여수의 제일장로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새벽기도에 한번도 안 빠지고 나갔습니다. 내가 살 세상이구나 싶었습니다.
얼마 후 저를 전도한 권사님이 ‘불의사자’가 나타났다며 하나님께 은혜 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던 신장로님댁으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아직 교회를 짓기 전 신장로님 댁 2층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 사과향기, 땅콩향기 등 온갖 향기가 진동을 하는데 저는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와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 후 서정에다 처음으로 여수전도관을 짓고 하나님을 모시고 개관집회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닷새 집회 기간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았습니다. 집에서 어머니는 딸 굶어죽는다고 도시락을 싸서 보내셨지만 먹으면 화장실 가게 되고 그러면 제 자리를 뺏길까봐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습니다.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치 않았습니다. 또 집회 기간 동안 이슬비처럼 빗방울이 톡톡 떨어지는 느낌은 있는데, 옷은 젖지 않고 그 비는 가슴 속까지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머리 위에는 하얀 쌀가루 같은 것이 소복히 얹혀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마루에 놓인 책 제목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펼쳐보니 그 안의 작은 글씨도 다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내일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새벽기도에 가서 힘차게 찬송을 하고 싶었습니다. 죽었으면 큰 일 날뻔 했습니다. 관문동에 다시 제단을 크게 지을 때는 밤새 모래를 져나르고 새벽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후로도 예배 때마다 하얀 안개처럼 뽀얗게 단상이 안 보일 정도로 은혜가 내릴 적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의 제가 있음을 분명히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