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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과 4대강 살리기

박효종 /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발행일 발행호수 2329

박효종 /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우리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두 개를 꼽으라면 단연 세종시와 4대강이다. 이 가운데 세종시 문제는 여당과 야당, 정부와 지역주민들 간에 이루어지는 세속적 쟁점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반해, 4대강 문제는 종교인들의 신앙문제로 부각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4대강 문제는 그 자체로 종교적 성격을 띤 이유는 없고, 환경론자와 개발론자들 간의 쟁점이 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 대한 일부 종교인들의 반대 태도는 너무나 완강하여 성직자들이 삭발을 하고 릴레이식 1인 시위도 벌이는 등의 과격한 양상을 띠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이러한 사태에 대하여 우려하는 것은 4대강 개발에 대한 찬성과 반대 그 자체가 아니라 종교가 지나칠 정도로 정치·사회 영역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종교는 종교 나름대로의 영역이 있다. 그것은 믿음의 영역이며 혹은 윤리문제를 다루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의 문제에서 종교는 “진리냐, 아니면 이단이냐” 하는 문제를 가늠하게 된다. 그러나 4대강의 문제는 굳이 따지자면 과학의 영역이고 치산치수의 문제다. 다시 말해 이 문제는 종교인들이 신앙의 정신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환경론자와 개발론자들이 치열한 토의 끝에 결정할 세속적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종교인들도 정치·사회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상 세속적인 일에 대하여 의견을 가질 수 있고 특정 정책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를 표명할 수 있다. 그들도 신문을 보고 TV를 보고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종교인이라고 하여 이 세상일에 초탈한 자세로 살아가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 그런 것을 가지고 정교분리라고 할 수도 없다.

다만 세속적인 쟁점들에 대하여 의견을 갖는다면, 세속인들처럼 개인의 자격으로 표명하는 것이 타당하다. 만일 그렇지 않고 서구의 중세사회처럼 교회가 법정을 여는 식으로, 혹은 신앙의 이름으로 정책의 정당성 여부를 가늠하려 한다면, 신앙의 본질에도 맞지 않는 잘못된 일이다.
물론 중세기에는 그런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고 주장한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을 받았다. 이일이 잘못된 것은 지동설을 교회가 받아들이지 못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영역에 신앙이 지나치게 간섭했다는데 있다.

우리의 4대강 사업은 어떤가. 이 분야는 생명의 영역이고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에 개발해서는 안 된다고 교회가 권위 있게 결정을 하고 신자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신의 것’은 신에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바쳐야 한다. 4대강 개발찬반표명은 종교인의 자격으로 할 것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자격으로 하는 것이 옳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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