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의식을 가진 정치인을 원한다
박효종 /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다음 달이 바로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아닌가. 당연히 정치계절의 주역은 정치인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치인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당에서 공천 받으랴, 지역구민들 만나랴, 얼마나 바쁜가. 그러나 그럴수록 정치의 본질을 생각하고, ‘나’는 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는지 곰곰이 고민해봐야 한다.
정치인들은 어떤 존재인가. 정치인에 대해 실망할 때도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인은 사적인 자기이익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옹호하지 않는, ‘속물적 존재’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정치에는 수많은 이기적 행위가 있지만, 그래도 정치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공인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 같다. 물론 정치인이 가지고 있는 ‘공인의식’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전혀 무의미한 것만도 아니다.
이렇게 주장한다고 해서 정치의 상당부분이 비열하며 저차원이라는 점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정치활동에서 간교함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미 FTA와 같은 문제에서 야당이면 당연히 반대해야 표를 얻을 수 있다고 계산하여 원래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반대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도 한다. 혹은 지방출신 정치인이라면 수도권규제완화에 결사반대한다. 또 국회에서 한바탕 몸싸움을 하고 나서도 TV에 나가서 말할 때는 멱살을 붙잡고 싸웠던 상대방 의원을 크게 칭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치인들의 주된 탈선은 그런 것이 아니다. 고도로 정교화된 인간의 ‘나약함’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치명적인 나약함이란 무엇일까. 유권자나 국민들로부터 어리석다고 평가받는 것이 두려워, 인기를 잃는 것이 무서워 비록 잘못되었다고 판단해도 사람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생각이나 견해에 도전을 하지 못하고 영합하는 경향이다.
이른바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학자들처럼, 자신의 비겁함과 소심함을 감추고 또 원칙조차 버린 채 세상에 아부하면서도 사람들 의견을 경청하는 민주적인 정치인처럼 포장하려는 잘못된 욕구가 바로 이 ‘나약함’이다. 이렇게 되면 소신없이 유행만 따르는 소인배들의 태도와 다를 바 없어 때로는 사람들의 값싼 취향에 영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물론 민주정치인은 일정수준 바닥민심과 일정수준 연계되어 있어야한다. ‘독불장군’처럼 살면서, 혼자 저돌적으로 나아간다면, 어떻게 표를 얻을 수 있겠는가. 바람처럼 변화무쌍한 여론은 물론, 미래의 사태추이에도 항상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야만 하는 고도의 위험성을 가진 직종에 종사하는 존재가 정치인이 아닐까. 대중정치인에게 있어 임기응변능력과 순발력은 분명 하나의 재능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유행과 호사가들의 입방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원칙과 이를 지켜나가는 용기와 지혜를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한다는 점이다. 정치인에게 진정한 소신과 원칙이 없다면,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인기에 영합하려 한다면, 자신의 독자적인 ‘스펙 쌓기’에는 관심이 없고 두리번거리며 남의 답안만 기웃거리고 베끼려고 하는 기회주의적인 ‘표절자’에 불과하다.
자신이 목표로 삼는 일에 대해 뚜렷한 비전과 확신이 없는 정치인을 두고 어떻게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소명의식이 없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정치를 떠나는 것이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