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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의 병을 고친 것은 감람나무를 증거하기 위한 것

발행일 발행호수 2632

덕소신앙촌에서 생명물을 축복하시는 모습

하나님께서 전국을 순회하시며 천막집회를 하실 때,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 집회에 참석하여 기사와 이적을 체험했습니다.

벙어리가 말을 하고,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등 초현실적인 일 뿐 아니라 전염병으로 여겨져 가까이하기를 꺼리던 나병 환자들까지도 하나님께 안찰을 받거나 축복받은 물질로 대부분 완치되었습니다.

몇십 년 불치병으로 여기며 살아오던 사람들을 안타까이 여기셨던 하나님께서 그의 손길로 병을 고쳐주시자 사람들은 병고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권능에 감사하며 전도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에게 이러한 권능을 보여주신 것은 무소불능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신 것으로, 단지 병 치유의 목적이 아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권능의 하나님이 이 땅에 육을 입고 오셨음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캐러멜과 축복 솜으로 병이 낫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전도돼
1963년 봄쯤으로 기억됩니다. 건설대에서 같이 일을 하던 아이 중에 경상북도 영주 근처 산골 마을에서 온 아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로부터 자기 고향에 전도사님 한 분이 전도관을 세우고자 와 계시며 무척 노력하신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당시 덕소신앙촌에서 생산되는 축복 캐러멜은 사람들이 아플 때 끓여서 먹거나 상처 난 곳에 바르면 금방 나았고, 심지어는 캐러멜 껍질만 발라도 아픈 데가 낫곤 하였기 때문에, 그 전도사님도 축복일에 오실 때마다 캐러멜 껍질을 얻어 가신다고 했습니다.

저는 마침 축복일이 돌아오기에 작은 성의로나마 그 전도사님께 전해 드리려고 캐러멜 한 봉지와 솜 한 뭉치를 샀습니다. 하나님께서 덕소신앙촌에 계시며 매일 새벽마다 단에 서시고 안수도 해 주실 때였는데, 저는 그 캐러멜과 솜을 하나님께 축복 받으려고 새벽예배 때 가지고 갔습니다.

예배 마친 후 줄을 서서 안수 받을 차례가 되었을 때 저는 강하게 축복해 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봉지에서 솜을 꺼내 “이 솜 축복해 주세요”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솜을 여러 번 비벼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캐러멜도 축복해 주세요” 하고 말씀드리니, 캐러멜 위에 쉭쉭 하고 강하게 축복을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제 목으로 주먹만 한 달달한 덩어리가 넘어가 뱃속까지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침을 계속 삼켜보아도 입안은 꿀같이 달콤하고 또 향기로움이 느껴졌습니다. 그날은 일을 하면서도 하루 종일 계속해서 단물이 넘어가고 마음이 너무나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그런 느낌은 그 이튿날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저는 캐러멜과 솜을 그 아이를 통해 전도사님께 전해 주었는데, 얼마 후 전도사님으로부터 그 아이 앞으로 장문의 편지가 왔습니다. 편지 내용을 읽어 보니, 그 마을에 원래 나병 환자들이 많고 부스럼이 나서 진물이 줄줄 흐르는 아이들이 많은데도 가난하여 누구 하나 병원에 가지도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사님이 축복 캐러멜을 녹여 아이들에게 조금씩 발라줬더니 그 이튿날로 부스럼이 말끔하게 나았고, 캐러멜을 바르고 나은 나병 환자만 해도 몇 명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전도되었다면서, 보내준 축복 캐러멜과 축복 솜을 얼마나 귀하게 썼는지 말로 다 하지 못한다며 너무나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그 아이와 저는 너무 기뻐 편지를 몇 번이고 계속 읽어보았습니다.
김춘자 권사 / 기장신앙촌

■ 생명물의 권능으로 나병까지 깨끗이 낫는 것을 확실히 보게 돼
1957년 평택에 전도관이 세워져 전도사님과 평택읍 서정리시장 근처에 있는 나병 환자 집에 심방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서정리시장 옆 개천가에 집들이 여러 채 있었는데, 나병 환자의 집은 다른 집들보다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초가집이었습니다. 나지막한 집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니 볕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 방에 50대 정도 되는 남자분이 누워 있었습니다.

나병 환자는 얼굴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불그스름한 상처가 뒤덮여 있었고 상처에서 고름이 자꾸 흘렀습니다. 그분은 나병에 걸린 뒤로 바깥에 다니지 못하고 자녀들도 자신을 무서워하며 가까이 오지 않는다면서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전도사님이 그분에게 생명물을 주시며 박태선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물이라고 설명했더니 그분은 얼굴에 생명물을 발랐습니다. 그리고 교인들과 함께 간절히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환자의 부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편이 문둥병에 걸린 후로 동네 사람들이 무조건 피하고 조롱까지 한다면서 이렇게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꼭 대접하고 싶다고 해서 전도사님과 교인들은 그 집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며칠 후 다시 그 집에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평택 제단에서 그분의 집까지 가려면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가야 했고, 주변에 다른 교인들이 없어서 자주 심방을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도사님이 일주일에 두 번은 꼭 가자고 했습니다.그 집에 가서 환자의 얼굴을 보니 불그스름한 상처가 많이 아물어 고름이 꾸덕꾸덕하게 말라 있었습니다. 그분이 하는 말이, 나병은 고치기 어려운 데다 가난한 형편에 치료 받을 수도 없어서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살았는데, 생명물을 바르고 며칠 만에 이렇게 좋아졌다며 무척 기뻐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그 집에 심방 갈 때마다 그분의 얼굴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 그분은 피부가 완전히 깨끗해져서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전도사님과 교인들은 그분에게 “이제 다 나으셨네요” 하며 인사를 건넸고 그분은 이렇게 고마운 일이 어디 있냐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분의 부인과 자녀들도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 고맙다고 했습니다. 저는 나병 환자를 가까이에서 본 것은 그분이 처음이었는데, 그토록 험하던 얼굴이 생명물을 바르며 깨끗이 낫는 것을 확실히 보게 되었습니다. 생명물을 바르고 나병이 나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평택 제단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안진옥 권사 / 기장신앙촌

■ 하나님의 안찰과 생명물로 나병환자의 병이 기적적으로 완치돼
저는 그동안 농사일에만 매달리느라 몸을 무리한 탓인지, 1957년 온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광주에 사는 사촌 동생이 제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 하는 말이, 얼마 전 박태선 장로님 집회에 참석했을 때 많은 불치 병자들이 병을 고친 것을 봤다면서 그분께 안찰, 안수를 받으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얼마 후 저는 사촌동생의 부축을 받으며 전남 화순에서 열리는 박태선 장로님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찬송을 열심히 부르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저도 자리를 잡고 예배를 보는데, 이상하게도 예배를 보는 동안 피곤치 않고 안 먹어도 배고픈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철야를 하고 다음 날에는 박 장로님께서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머리를 ‘탁’ 하고 쳐 주셨는데, 순간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찌릿찌릿하더니 집회에 참석하러 오기 전보다 몸이 오히려 더 가뿐해졌고, 가슴 답답하고 아프던 증상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부축 없이도 혼자서 거뜬히 걸을 수 있었습니다.

동네에서는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사람이 그 멀리까지 갔으니 도중에 죽기라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병이 다 나아 멀쩡한 사람처럼 걸어 들어가니까 온 동네에 난리가 났습니다. 정말로 박 장로님 집회서 병 고치고 왔냐며 이웃 동네 사람들까지 몰려와서 확인하고 갈 정도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복용하던 그 많던 약을 모두 내다 버렸고, 그 후로 몸이 가끔 불편할 때도 찬송가만 부르면 금방 괜찮아졌습니다.

어느 날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싶어 밭으로 일을 하러 가는 중인데, 송 이장이 저를 보더니 “기화, 자네 화순 집회 가더니 정말 다 나았는가?”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다 나아서 이렇게 밭일까지 하러 간다고 대답하니, 깜짝 놀라면서 다음에는 자기도 꼭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돌아오는 일요일부터 저는 송 이장과 다른 환자, 그리고 환자 가족들과 함께 광주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송이장과 함께 다니면서 알고 보니 그는 나병을 앓고 있었지만, 그동안 겉으로 나타나지 않고 속으로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얼굴과 피부에 온통 우툴두툴한 것이 솟아나고 눈곱이 많이 끼는 등 겉으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우리 전도관 교인을 제외하고는 모든 동네 사람들이 그 집을 출입하기 꺼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께 가서 안찰을 받게 하고 싶어도 당시 하나님께서 주로 전도사를 안찰해 주실 때여서 교인들이 안찰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전도사님은 고민하더니 자기 대신에라도 안찰받게 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얼마 후 하나님께서 순회 집회 때 인근 교회에 오셨고, 전도사님은 안찰받는 줄에 서서 기다렸다가 자기 차례가 되자 옆에 데리고 있던 송 이장을 하나님 앞에 눕혔습니다. 그러면서 전도사님이 작은 목소리로 “저……. 나병 환자입니다”라고 말씀드리니 하나님께서는 “상관없어” 하며 안찰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환자의 몸에 손을 대시자마자 그 사람은 떠나가라 고함을 질러대며 하도 몸부림을 쳐 여러 사람이 단단히 붙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물 줘서 보내세요” 하시며 안찰을 마치셨고, 송 이장은 전도관에 빠짐없이 나오며 생명물을 열심히 타다 마시더니 결국 2~3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완치되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송 이장은 대촌전도관을 짓는 데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조기화 권사 / 소사교회

■ 나병 환자를 측은히 보시고 안찰해 주시던 하나님 모습 떠올라
한번은 20대의 젊은 여자가 송탄전도관에 찾아와 자신도 예배를 드릴 수 있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 얼굴에 눈썹이 하나도 없고 피부가 누런빛을 띠어서 무슨 병이 있냐고 물었더니 나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강원도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던 중에 문둥병에 걸려서 시집에서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오갈 데 없는 자신을 송탄에 있는 숙모가 거둬 주면서 전도관에 다니면 병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하여 이렇게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자살하려고 해 봤지만 사람 목숨이 마음대로 안 되더라면서,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도관에 다니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분은 매일 제단에 나와서 새벽예배를 드리고 생명물을 한 컵씩 마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축복일이 되어 덕소신앙촌에서 예배를 드린 후 많은 교인들이 안찰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바로 제 앞에서 안찰을 받았는데 그때까지 말없이 안찰하시던 하나님께서 그분을 측은하게 바라보시더니 “험한 병에 걸렸구나” 하신 후 안찰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안찰을 받고 며칠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그분이 들뜬 목소리로 자신의 얼굴을 보라고 하여 봤더니, 하나도 없었던 눈썹이 까맣게 자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칙칙하게 누런빛을 띠던 피부도 안찰을 받은 후로 점점 뽀얗고 맑은 피부가 되었고, 나중에는 어린아이처럼 발그스름한 홍조가 감돌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20대의 곱고 예쁜 모습이 되어 문둥병을 앓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분이 제단에 나온 지 1년쯤 되었을 때 예전에 다녔던 병원에서 다시 진찰을 받았습니다. 병원에서 나병이 완전히 나았다고 하더라며 그분은 무척 좋아했고 교인들도 모두 기뻐했습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나병 환자를 측은하게 바라보시며 안찰해 주시던 하나님의 모습이 떠오르곤 합니다.
홍정순 권사 / 기장신앙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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