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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구원을 바라보며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하심을 감사

오향근 권사(3)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298

1969년에 조암제단이 완공되면서 김은안 씨의 친정부모님을 비롯해 식구들 여러 명이 제단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1년쯤 지난 후에는 그 집의 할머니가 노환으로 숨을 거두셔서 입관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이 찬송을 부르는 가운데 축복 비누로 시신을 깨끗이 씻겼는데, 다 씻기고 나자 할머니가 함박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기가 아주 기뻐서 방실방실 웃는 것처럼 고인이 웃고 계신 모습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피부 또한 뽀얗게 피어나 일흔이 넘은 할머니라고는 믿기 어려웠으며, 입관예배를 드리는 동안 계속해서 향취가 진동하여 마치 그 방 안에 향취가 가득 찬 것 같았습니다. 아름답게 핀 고인의 모습을 보면서 입관예배에 참석한 교인들과 유족들 모두 놀라워했습니다.

소비조합 활동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신앙촌 물건을 전하면서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올 때면
제 마음 속에는 어느덧 보람과 기쁨이 가득히 차오르곤 해

그날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더니 큰아들인 종천이가 웬일인지 저녁을 먹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 아이를 봤더니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데다 한쪽 눈의 검은자위에 새빨간 혹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전날 아이가 밖에서 놀다가 돌에 눈을 심하게 찍혔는데 제가 걱정할까 봐 알리지 않고 잠을 잤다고 했습니다. 저는 새벽예배에 가서 전도사님께 종천이가 다쳤다고 말씀드렸더니 예배를 마친 후 전도사님과 교인 분들이 생명물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축복 솜을 생명물에 적셔서 아이의 눈에 붙여 주고 한참 찬송을 부른 후에 아이의 눈을 살펴봤는데, 하얀 눈곱 같은 것이 나오며 눈에 있던 빨간 혹이 조금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그날 계속해서 생명물에 적신 축복 솜을 아이의 눈에 붙여 주었더니 눈곱 같은 것이 빠지면서 혹이 차차 줄어들었고 나중에는 깨끗하게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퉁퉁 부어올랐던 얼굴은 다음 날 아침에 자고 일어나자 거짓말처럼 다 가라앉아 완전히 정상이 되었습니다. 전날 함께 예배를 드렸던 교인들은 종천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나은 것을 보고 모두들 놀라워했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러 2003년경이었습니다. 제가 종천이와 조카딸과 함께 대화를 나누다가 예전에 종천이가 눈을 다쳤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조카딸에게 “그때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다른 데도 아니고 눈을 심하게 다친 거잖아. 그런데 축복 솜을 생명물에 적셔서 붙였더니 완전히 나았잖니. 그렇지? 종천아?” 하고 이야기했더니, 아들은 “그럼요. 그때 다친 눈이 안 다쳤던 눈보다 더 밝아요.”라고 했습니다.

단골 고객인 초등학교 선생님 댁의 병약했던 아들이 숨을 거둬
천부교회식 장례 부탁받고 시신 씻긴 후 곱게 핀 모습 보고 `천국 갔나봐` 감탄

저는 조암제단에 다니면서부터 농사일을 접고 본격적으로 신앙촌 소비조합 활동을 했습니다. 신앙촌 간장과 양말을 들고 동네를 다니며 방문 판매를 했는데 처음에는 이웃 분들이 평소 친분을 생각해 물건을 사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촌 물건은 정직하고 믿을 수 있다.’라는 인정을 받게 되면서 장사의 규모가 커지고 제품의 종류도 다양하게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장사를 하며 고객들과 참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다섯 군데 마을에서 장사했던 저는 한 동네를 5일에 한 번씩 찾아갔는데, 갈 때마다 고객들이 정답게 맞아 주며 어쩌다 하루라도 늦게 가는 날이면 “왜 어제 안 왔어요? 얼마나 기다렸는데.” 하며 문밖까지 뛰어나와 반겨 주었습니다. 가져간 제품을 전부 다 판매하고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올 때면 제 마음속에 보람과 기쁨이 가득히 차올랐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신앙촌 물건을 전하는 것이 그렇게 보람되고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신앙촌 소비조합을 하며 아이들의 대학 교육을 뒷바라지하고 생계를 꾸리는 데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그 후 1986년경이었습니다. 저희 단골 고객 중에 초등학교 선생님 댁이 있었는데, 그 댁 아들인 초등학생 병천이는 제가 갈 때마다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원래 몸이 허약했던 그 아이는 밥을 잘 먹지 않았지만 생명물 간장에 밥을 비벼 주면 참 좋아하며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병천이가 언젠가부터 많이 아프더니 병원에 가도 차도가 보이지 않고 눈에 띄게 쇠약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결국 숨을 거두게 되자 병천이 부모님은 천부교회식으로 장례를 치러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때 마침 관장님께서 다른 지방에 일을 보러 가시고 안 계셔서 저와 권사님 한 분이 시신을 씻겼는데, 축복 비누로 시신을 씻길 때 아이 얼굴이 환하게 피어나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 씻긴 후에는 입술에 발그스름한 혈색이 감돌아 너무나 예쁘고 고왔습니다. 특히 병천이 아버지의 동료인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찾아와서 그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기성교회에 열심히 다닌다는 한 선생님은 곱게 핀 시신의 모습에 감탄하면서 “얘는 천국에 갔나 보네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더운 7월 여름날 돌아가신 어머니 시신을 씻기는 동안 방안 가득 향취 진동해
여든이신 어머니가 어찌나 잘 피었던지 당시 50대였던 저보다 더 젊어 보여

저는 1992년에 기장읍(현재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으로 이사하여 기장제단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듬해에는 연로하신 친정어머니를 모셔 와서 함께 지냈는데 한 달쯤 후에 어머니가 숨을 거두셨습니다. 입관예배를 드리는 날 교인들이 찬송을 부르고, 저와 동생인 오경근 관장, 그리고 덕소신앙촌에 있는 사촌동생댁이 와서 함께 생명물로 시신을 씻겼습니다. 그때가 7월이라 한창 더울 때인데도 시신을 씻기는 동안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어오며 향긋한 향취가 방 안 가득 진동했습니다. 시신을 다 씻기고 보니 여든이신 어머니 얼굴이 어찌나 뽀얗고 예쁘게 폈는지 그때 50대였던 저보다 더 젊어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입관예배에 참석한 교인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시신을 씻기는 사람들의 얼굴도 함박꽃처럼 뽀얗게 폈다고 했습니다. 귀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마음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2004년에 기장신앙촌에 입주한 저는 공기 맑은 이곳에서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하나님을 뵙지도 못하고 지내던 제가 이 진리를 깨닫고 따라 온 세월을 돌아볼 때면 그 감사함을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하루 구원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도록 이 길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 죄와는 상관없는 성결한 자격을 갖추어 그날에 아름다운 하늘 세계에 들어가는 자가 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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