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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선 관장 편 ① 하나님께 가까이

하나님께 가까이
발행일 발행호수 2297

1985년 학생관장으로 첫 발령을 받고 난 해에는 하나님께서 각 교회마다 전화를 하실 때였습니다.
새벽예배 끝나고 전화 오실 시간에 여성회 관장님 방에서 기다리면 “학생관장도 바꾸라” 하셔서 하나님의 전화를 받곤 했습니다. 그날도 수화기를 들고 쉰 듯한 음성으로 “하나님 김명선입니다”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갑자기 ‘쉭쉭’ 하는 축복소리가 들려 놀라서 나도 모르게 수화기를 목에 힘차게 갖다 대었습니다. 너무 세게 대어 소리가 ‘퍽’ 하고 날 정도였습니다. 옆에 계시던 관장님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조금 지나 무슨 말씀을 하시면 대답을 해야 될 것 같아 수화기를 조심스레 귀에 갖다 댔는데 수화기 너머에 하나님께서는 웃고 계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아이들에게 씌어서 그래” 하시며 축복을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반사들이 아이들을 전도해오면 하나님을 깨닫게 하려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시간은 예사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전화로 매일 챙겨주시다가 어느 날부턴가 전화가 뜸해지셨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엔 아예 전화가 없으셨습니다. 그때 저를 비롯한 많은 학생관장들이 많이 휘청거렸습니다.
“매일 해주시던 전화말씀도 안 해 주시고…” 몇몇 학생관장들끼리 모이면 ‘언제까지 전화를 해주셔야 되겠냐! 우리가 알아서 잘 하자’라고 하면서도 막상 또 각 중앙에 돌아가면 힘을 잃고 하나님 말씀대로 “늘어진 용수철 같은 상태”로 지내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런 상태로 축복일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찬송을 인도해주셨습니다. 긴 시간 찬송을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을 지으시며 애타게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너무도 냉랭했습니다. 하나님의 눈물에도 제 마음은 녹지 않았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마음이 조금 풀어져 눈물이 조금 나면서 ‘그래 가서 열심히 해야지’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찬송을 그치셨습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구나!’ 하며 눈물이 납니다. ‘내가 교역을 하며 누군가를 키운다고 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참고 기다리고 품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학생 축복일을 앞두고 한 아이를 참석시키려고 그 아이 집을 찾아갔습니다. 축복일에 다녔던 아이였는데 한동안 교회도 안 오고, 신앙촌도 안 가고 해서 ‘이번 축복일엔 데려가야겠다!’ 마음먹고 찾아 갔는데 할머니도, 엄마도 다녀오라고 하는데도 아이는 고집을 부리며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반사와 함께 약 두 시간 넘게 설득을 한 끝에 힘들게 축복일에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옆에서 지켜보신 듯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와서 어떻게 천국에 가겠냐?” 하시며 서운하신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축복일에 어떠한 마음으로 와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앞두고 방학을 맞아 신앙촌에서 합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방학을 한 남부지역은 먼저 신앙촌에 들어갔습니다. 서울은 아직 방학을 안했지만 제가 있던 수원 지역은 방학을 해서 내려가야 했습니다.
신앙촌에 먼저 가 있는 관장님과 전화가 연결이 되었는데 ‘지금 합창연습해요?’ 하니 ‘아직 합창 안 해요. 밥만 축내고 있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밥만 축내느니 나중에 서울팀 하고 같이 내려가야겠다’ 하고선 있었는데 다음날 새벽 하나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짢은 목소리로 “왜 안 와?” 하시며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합창보다도 밥보다도 하나님 계신 곳에 빨리 갔어야 하는 것인데 미련한 것이 민첩치 못하여 내 생각으로 판단하고 아이들이 하나님 가까이 갈 시간을 막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갈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고 가까이 가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교역의 일이라 생각해 봅니다.

/성남교회 학생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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