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공원 집회 참석기] 아름다운 천국을 목적 삼고 참 진리의 길을 따르다
1955년 1월 1일, 서울 무학교회 집회에서 시작된 하나님 초청 부흥집회는 한국 땅에 하나님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3월 26일부터는 남산집회를 시작으로 전국적인 순회 부흥집회가 열렸는데, 이는 천부교 역사의 초창기이자 성신의 역사의 시발점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을 수용할 만한 건물이 없어 천막을 치고 집회를 열어 천막집회로 불리는 이 순회 부흥집회는 1955년 한 해 동안 15회에 걸쳐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13번째로 열린 광주공원 집회 장소를 찾아가 보았다. 당시 10대 내외의 나이로 집회에 참석했던 이은자, 조영순, 김순임, 차임정 4명의 권사(現 광주 서동교회)가 동행해 그날의 추억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1955년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이어진 광주공원 집회는 전남 서동 광주공원 광장에서 열렸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비둘기 모양의 축복이 내린 모습이 이 집회에서 찍힌 사진이고, 윤치영 선생이 단상 앞에 나와 간증할 정도로 은혜가 많이 내린 집회가 광주공원 집회다. 오성민 관장의 신앙체험기를 보면, 장로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며 교인들 감시차 광주공원 집회에 참석했다가 하나님 말씀에 감화를 받고, 성신의 은혜를 맛보며 기성교회를 끊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하나님 집회
방방곡곡에 퍼진 하나님의 기사 이적 소식은 당시 기성교계에 큰 화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인파를 모여들게 하였다. 특히 광주집회는 지방 인사와 유지들이 많이 참석한 특징을 보이며, 일주일 정도 집회가 열리는 동안 날이 갈수록 참석자들이 늘면서 자리를 뺏길까 봐 철야를 하는 이도 2만 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이은자 – 집회가 열렸던 자리는 건물 하나 없는 야산이었어요. 저희가 사진 찍은 곳이 공원 입구였고, 현재의 계단이 아닌 비탈진 흙길을 올라가면 천막이 끝없이 넓게 펼쳐져 있었어요. 지금의 시민회관 건물이 위치한 곳이 바로 천막집회 자리입니다.
저는 어머니와 함께 오순절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박태선 장로님 집회에 참석하라는 광고에 교인들이 모두 광주공원 집회에 참석해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었지요. 저희는 집회가 열리는 일주일 동안 참석했는데,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떠나면 자리를 뺏길까 봐 금식하고, 철야를 했습니다.
조영순 – 16살에 일신방직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어요. 어느 날 불의 사자가 광주공원에 와서 집회를 하신다는 거예요. 혼자 생각에 ‘불의 사자? 그럼 세상을 다 태우시겠네’ 싶어서 한번 가보자고 한 것이 지금까지 신앙의 길을 걷게 된 계기였어요.
김순임 – 저는 그때가 9살이었어요. 엄마가 기성교회에 다니던 중 광주공원 집회에 다녀오시더니 박태선 장로님이 오셔서 예배를 드리면 병이 낫는다고 하셔서, 저와 외삼촌, 사촌 동생이 엄마를 따라 집회에 갔어요.
차임정 – 고1 때였어요. 당시 저는 엄마와 함께 광주에서 제일 큰 중앙교회를 다니고 있었어요. 엄마가 몸이 좋지 않으셨는데, 어느 날 하시는 말씀이 “감람나무라는 분 집회에서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병도 낫는다더라” 하시면서 집회에 가자고 하셔서 엄마를 따라 광주공원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 은혜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따르기로
집회에서 불치의 병을 고치고, 이슬 같은 은혜를 체험하고, 하늘의 향취를 맡은 사람들은 점차 모여들고, 모여들어 감람나무 하나님을 따르게 되었다.
이은자 – 광주공원 집회에 은혜가 참 많이 내렸어요. 집회에 참석한 지 3일째 되던 날부터 하나님께서 설교하실 때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나더니, 그 뒤로는 예배 시간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향기가 났어요. 나중에야 그 고약한 냄새가 죄 타는 냄새고, 향기로운 향취는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천막집회에 참석한 이후에는 오순절교회에 다시 다니다가 지산동에 전도관이 생긴다고 한 때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았어요. 그런데 전도관에서 예배를 드리다 보면 교회 여자 전도사님이 생각나는 거예요. 저를 예뻐하셨거든요. 그래서 한 주일은 오순절교회, 그다음 주에는 전도관, 이렇게 번갈아 다니다 보니 마음이 냉랭해지고 은혜가 안되는 것을 느꼈어요. 그 후부터는 교회에 발길을 끊고 전도관에만 열심히 다니게 되었습니다.
조영순 – 광주공원에 올라가니 천막 안에 많은 사람들이 찬송을 부르고 있었어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가운데 앉았는데, 곧 하나님께서 나오셔서 찬송을 인도해 주셨어요. 찬송을 한참 따라 부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너무 기쁜 거예요. 또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 사이를 다니시며 안수해 주셨던 기억도 생생해요. 안수를 받고 몸이 둥둥 뜨는 듯한 느낌이었고, 이틀 동안 밥을 안 먹었는데도 전혀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그래서 광주공원 집회 이후에도 다른 곳에서 하나님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곳까지 쫓아가기도 했어요.
영산포 집회에서는 정말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올라오실 때 보니 하나님 주변에 뽀얀 연기가 따라다니는 거예요. 처음에는 “저것이 무엇이여?” 그랬어요. 그때는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거든요. 또 한번은 예배실에서 하나님을 기다리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순간 천장을 보게 되었는데, 천장에 물이 송골송골 맺혀 있던 적도 있었어요. 초창기 때 하나님께서는 이슬성신 은혜를 내려주시며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체험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김순임 – 엄마를 따라가 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병 나은 사람은 일어나라고 하시니까 주변에 있던 앉은뱅이도, 봉사도 일어나더라고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같이 간 사촌 동생이 원래는 목에 몽우리가 있었는데, 예배드리고 나서 몽우리가 싹 없어졌다고 외삼촌이 동생의 손을 번쩍 드는 거예요.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서는 박 장로님이 은혜가 많으신 분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차임정 – 어머니를 따라 일주일간 집회에 참석하면서 보니 어머니의 몸이 많이 좋아지셨어요. 그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저는 하나님께서 단에서 말씀하실 때 이슬비가 내리듯 은혜가 내리는 것과 향취 체험을 하면서 이곳이 참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 뒤로 이분을 따라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중앙교회에 발길을 끊고 전도관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 천국을 목적 삼고 신앙을 지켜오신 어머니,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피게 해주셔
신앙의 본보기가 되어주신 어머니. 세월이 흘러 마지막 가시는 길에 하나님의 은혜로 깨끗하고 맑게 피어난 어머니의 모습은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을 실제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신 은혜를 주시는 분인지 깨달을 수 있었으며, 평소의 삶 속에서 신앙을 어떻게 지키고 실천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보게 하였다.
이은자 – 광주 서동교회를 지을 때 어머니가 세숫대야의 돌을 머리에 이고 나르던 모습, 새벽예배에 빠짐없이 다니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어머니는 신앙심이 깊으셨던 것 같아요.
이후 어머니는 소사신앙촌에 입주해 지내시다가 교통사고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63세에 돌아가셨어요. 소사신앙촌 장례반 권사님들께서는 어머니가 신앙촌에서 가장 잘 피어 가셨다고 말씀하셨어요. 돌아가시기 직전에 찬송가 세 장을 부르고 가셨는데, 그중 하나가 ‘주안에 있는 나에게’ 찬송이었어요. 어머니가 숨을 거두신 후 입관식 전이었는데도 얼굴에 살이 붙고, 우윳빛이 되어 젊은 사람처럼 보였어요. 게다가 웃는 모습으로 가셔서 슬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날 하나님께서 향취로 어머니 곁을 지켜주셔서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김순임 – 어릴 때는 어머니의 신앙생활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제단 지어지기 전에는 집에서 동네 사람들을 모아 예배드리고, 매일 새벽 4시만 되면 일어나 씻고 기도하는 바람에 불편하기만 했지요. 그러나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어머니의 신앙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어요. 그렇게 잘 피어서 가실 수가 없었거든요. 어머니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스스로 피어서 가는 사람이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겠나”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어요. 천국을 목적 삼고 살아오신 어머니여서인지 입관예배를 드리기 전부터도 얼굴이 이미 뽀얗게 피어 생전보다 더 예쁜 모습에 ‘이것이 하나님의 권능이구나!’ 하고 놀랐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암 투병으로 뼈만 남았었는데, 얼굴이 말 그대로 흰떡처럼 하얗고, 피부가 19살처럼 살이 차올라 있는 거예요. 장로교회 다니는 친척분들이 편안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시더니 “너희 어머니 볼 것도 없이 천당 갔다” 하실 정도였어요.
‘저런 모습을 보여 주시려고 엄마가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따랐나보다, 하나님 앞에 공을 세우면 참 진리가 되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임정 – 어머니가 69세에 심장병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때 그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생명물로 어머니를 씻겨 드렸는데, 얼굴에 화장을 해 놓은 사람처럼 입술도 빨갛고, 화색이 돌아 제 눈엔 20살쯤으로 보였어요. 당시 최성례 관장님께서 입관하고 계셨는데, 하나님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내가 축복해 줄 테니 잘하라” 하시며 교회에 다니는 딸을 바꿔주라고 하셨대요. 제가 전화를 받자 “잘 폈지?” 물으셔서 “네. 너무 예쁘게 피었습니다” 말씀드렸더니, “그것 봐. 내가 해서 핀 거야. 내가 하나님이야. 잘 믿어야 돼.” 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