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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나무께서 이슬같은 은혜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신다

김창섭 권사(2) / 소사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320

그 자리에 제단 건물을 마련하면서 정식으로 ‘광주전도관’이 세워졌습니다. 1956년 9월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개관집회가 열렸는데 집회 첫날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개관집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으로 예상하여 제단 바깥에 천막을 설치해 두었는데, 예배 전에 둘러보니 제단은 물론이고 천막 안까지 집회장 전체에 뽀얀 안개 같은 것이 가득 차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광주공원 집회에서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있었으며, 그 안개 같은 것이 ‘이슬은혜’라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예배가 시작되기 전부터 은혜를 내려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1956년 9월 광주전도관 개관집회날
예배 전부터 집회장 전체에
뽀얀 안개같은 것이 가득 차있어
‘시작 되기 전부터 은혜를 주시는구나’

저는 광주제단에 계속 다니면서 주일학교 반사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감람나무 향기 속에 귀엽게 자라세~” 하는 찬송가를 아이들과 함께 부르면서 ‘감람나무’와 ‘이슬 같은 은혜’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누구든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죄를 씻어야 하며, 감람나무께서 이슬 같은 은혜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신다.”라는 것을 차근차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 후 1957년에 광주사범대학을 졸업한 저는 교사 발령을 받기 전까지 고창에 있는 집에서 지냈습니다. 고창에는 아직 전도관이 세워지지 않아 고창군수의 관사에서 군수 사모님을 비롯한 몇 분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군수 사모님인 김소순 집사님은 하나님의 집회에서 은혜를 받으신 분으로, 고창에 발령받으신 전도사님을 도와서 제단을 세우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몇 개월의 공사 끝에 드디어 교촌리 산언덕에 아담한 전도관을 지었는데, 제단이 없던 곳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니 그렇게 기쁘고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단을 지은 후 주일학교를 활성화하기 위해 그해 8월에 처음으로 ‘하기 아동 성경학교’를 열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일주일에 걸쳐 열린 ‘하기 학교’에는 많은 아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주일학생을 전도하기 위해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던 기억과 “가자 어디로- 전도관으로-” 하며 우렁차게 부르던 찬송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고창에서 1년 가까이 지낸 저는 영광초등학교로 교사 발령을 받았는데, 영광에는 전도관이 없었기 때문에 제단에 나갈 길이 막연했습니다. 그래도 주일예배만큼은 꼭 지키고 싶은 마음에 예전에 전도관에 다녔던 분들을 수소문하여 찾게 되었고, 그분들과 함께 매주 일요일마다 모여 앉아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군대에 입대하게 된 데다가 군 복무를 마친 후에도 계속해서 전도관이 없는 곳으로 발령받게 되면서 제단에 다니는 것이 여의치가 않았으며 나중에는 제단과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떤 일로 크게 놀란 뒤 아내는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며 고생을 해
‘생명물을 마시면 낫지 않을까’ 생각하여 소사신앙촌에 입주한 그날부터 숙면 취해

결혼 후 경상남도 합천군의 중학교에서 근무하던 1970년이었습니다. 제 처가 무슨 일 때문에 크게 놀란 뒤로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니 그 고통이 날로 심해졌습니다. 경북대학교병원을 찾아가 진찰을 받았으나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면서 치료 방법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매일 수면제를 먹고 잠깐 눈을 붙이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걱정을 하던 저는 예전에 전도관에서 생명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그리고 제 처가 결혼 전에 소사신앙촌에서 지냈던 것이 떠오르며 ‘소사신앙촌에 들어가 생명물을 마시면 불면증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제단과 멀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갑자기 소사신앙촌 입주와 생명물을 바라는 것이 죄송스러웠으나 그래도 그 방법 외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소사신앙촌의 시온중학교를 찾아가서 교장 선생님께 제 사정을 말씀드린 후 시온중학교로 전근할 수 있는지 상의하고 돌아왔습니다. 며칠 후에 다행히 자리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이삿짐을 꾸려서 소사신앙촌으로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사신앙촌에 입주한 그날부터 제 처가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이었습니다. 전날까지 불면증에 시달렸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이 낫게 되어 하나님께 참으로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소사신앙촌에서 지내며 감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메바성 이질에 걸려 약을 먹어도 그때 뿐이고 계속되는 복통과 혈변으로
1년 가까이 고생을 하면서 힘들고 고통스럽게 지내다가
아픈 사람을 위해 축복해주신 특별 생수 한 컵 마신 후 말끔히 나아

그 후 소사신앙촌에서 계속 생활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배가 자꾸 아프고 혈변을 누는 일이 잦아져서 병원에 갔더니 아메바성 적리에 걸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질의 일종인 아메바성 적리는 그 당시 약을 먹어도 계속 재발하거나 만성화하여 근원적인 치료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병에 걸린 후로 계속 복통이 있는 데다 변을 볼 때는 말로 다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으며 약을 먹을 때만 잠시 통증이 누그러질 뿐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는 남동생이 약을 보내 주었으나 그 약도 잠시 효과가 있을 뿐 또다시 재발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1년 가까이 그렇게 고생하다 보니 몹시 힘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즈음 하나님께서는 일요일마다 소사신앙촌의 오만제단과 서울 시내 중앙전도관을 순회하시며 예배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한번은 오만제단에 오신 하나님께서 “오늘은 아픈 사람을 위해서 특별 생수를 강하게 축복해 주겠다.” 하셨습니다.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특별 생수를 받아 와서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명물을 먹은 그날부터 고질적이던 복통과 혈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1년 가까이 좋다는 약을 다 써 봐도 근치(根治)가 되지 않아 그렇게 저를 괴롭혔던 병이 생명물을 한 컵 먹은 뒤로는 언제 아팠냐는 듯 말끔히 나은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재발하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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