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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교역, 교인들과 마음모아 일했을 때가 가장 기쁜 순간

남삼호 전직 관장(전 중부 총무) ②
발행일 발행호수 2552

하루하루가 감사하다는 남삼호 전직 관장

남삼호 전직 관장(전 중부 총무)은 1967년에 교역자 생활을 시작하여 50년간 교역을 마무리하고 지난 7월에 정년퇴임을 했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교역자로 손꼽히는 그의 교역 생활 이야기를 실어본다.

둔덕전도관을 개척한 후, 부산으로 발령을 받으셨는데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지요?

– 1973년 6월 5일, 부산 연산전도관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교회에 갑자기 큰 비용이 필요한 일이 생겼습니다. 아무리 밤새워 궁리해도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가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저는 부족하고 능력도 없습니다. 감당할 길을 열어주소서’라며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일을 해결 못 하여 교역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만 났습니다. 마구 쏟아지는 눈물이 마루에 흘러내려 마루에 칠한 니스가 녹아서 끈적거릴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는데 문을 여는 인기척이 났습니다. 돌아보니 생면부지의 할머니가 “젊은이, 왜 이렇게 울고 있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내 부족함으로 교역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듣던 할머니는 조용히 나가시더니 약 30분 후에 다시 들어오셔서 보따리 하나를 건넸습니다. 그러면서 “젊은이, 기부할 테니 좋은 일에 써라”는 말 한마디를 하고 나가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저는 급하게 문을 열고 나가보았지만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꿈같은 일입니다.

교인들과 다함께 마음을 모아
일하는 그 시간이 가장 기뻐
따뜻한 마음으로 교인들 대하고
모든 면에서 희생하고 부지런해야

관장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전도하셨나요?

– 새교인 전도도 중요하지만 교인들이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이끌고, 쉬고 있는 교인들을 다시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전도라고 생각합니다. 1980년 9월부터 영주전도관에서 시무했는데, 그때까지 10군데 지역을 다니며 열심히 전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영주가 그런 곳이었습니다. 늘 죄송한 마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에서 가장 열악한 곳으로 알려진 강원도 장성전도관으로 보내 달라고 말씀드려 1982년 1월 20일 강원도 장성전도관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곳은 워낙 교통이 불편한 곳이라 전도가 쉽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인들도 대부분 교회에 못 나오고 교회 근처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만 나오고 계신 상황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 수리가 시급했습니다.

가장 먼저 쉬고 있는 교인들 집을 3개월 정도 끊임없이 찾아다녔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교인일수록 다시 교회에 나오시라며 더욱 따뜻하게 인사를 하고 그 가정을 위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교인들이 마음문을 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얼마 후 몇십 명의 교인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교회 수리에 나섰습니다. 교인들은 너도, 나도 “종각은 내가 올리겠다”, “예배실 수리는 내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다 함께 마음을 모아 일하는 그 시간이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 후, 교인들은 점점 늘어났고 전도의 기쁨을 많이 느꼈습니다. 세상의 어떤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장성 전도관에서 느낀 것은 교역자는 언제나 교인들에게 온기가 느껴지는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하고, 모든 면에서 먼저 희생하고 부지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973년 부산 연산동 전도관 시절

기억에 남는 하나님 말씀이 있으신지요?

– 기장신앙촌이 건설된 후 1980년대에는 축복일마다 농구시합을 했습니다. 한 번도 농구공을 만져보지도 못한 제가 4번 등 번호를 달고 남부팀 선수로 선발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키가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농구의 ‘농’자도 모르니 골대 근처에 그냥 서 있다가 공을 받으면 무조건 골대를 향해 던졌습니다. 폼은 고사하고 받아서 던지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던질 때마다 골인이 되었습니다. 경기 후 하나님께서 부르시더니 “4번 잘했다. 최고야!”라고 칭찬해주시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말씀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말씀에 힘을 얻어서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퇴임 후 신앙촌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계신지요?

– 2018년 7월 29일, 50년간의 교역 생활을 마치고 신앙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생활하고 있는데 하루하루가 무척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신앙촌은 공기부터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새벽예배 드리러 갈 때도 맑은 공기를 마셔서 그런지 몸도 가볍고, 더 건강해진 것 같습니다.

후배 교역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 교역 생활을 지나고 보니 부족함뿐입니다. 전도를 많이 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죄송스럽습니다. 일할 기회는 지나가면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젊은 교역자나 청장년들이 더 열심을 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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