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서에 기록된 ‘동방의 한 사람’과 ‘감람나무’를 증거
박종문 승사(2) / 노량진교회그때 갓 돌이 지난 넷째 경원이를 집회에 데리고 갔었는데, 홍역을 앓아 열이 오르고 설사를 하던 아이가 예배를 드리는 동안 어느새 열이 다 내리고 설사도 멈추어 언제 아팠던가 싶을 정도로 깨끗이 나았습니다. 장시간 예배를 드리는데도 아이는 배고프다고 보채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며 새근새근 곱게 잠이 들었습니다.
남산 집회가 끝난 후 저는 하나님께서 전국의 대도시를 다니시며 부흥집회를 계속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해 10월에는 서울 제2운동장에서 하나님 집회가 열린다는 포스터를 보고 ‘은혜 받을 기회가 왔구나!’ 하며 얼마나 기쁘고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집회에 갈 생각만 하면 너무 좋아서 혼자 빙긋이 웃곤 했습니다.
그렇게 제2운동장 집회에 참석했을 때, 집회 중에 하셨던 말씀이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목수가 집을 지을 때 못을 단단히 박아 튼튼하게 집을 지으면 거센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말씀을 깊이 깨닫고 신앙을 굳건히 가진 자는 마귀의 방해가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치면서 깨우쳐 주시는 말씀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집회에 참석하는 동안 마음이 너무도 평안하여 미움이나 욕심 같은 악한 감정은 저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때까지 대가족의 살림을 꾸리면서 힘들고 고달팠던 저는 집회에 참석한 후로 딴 사람이 된 것처럼 기쁘고 즐겁게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기쁨이 충만하여 세상의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었고, 이 기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원효로의 하나님 댁 뒷마당에 ‘원효로 구제단’이 세워지면서 저는 그곳으로 예배를 드리러 다녔습니다. 매 주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원효로 구제단에 몰려와서 제단 뒤편 미나리꽝 쪽의 강둑에까지 차고 넘쳤는데, 그때는 흰색 무명옷을 많이 입던 시절이라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강둑이 온통 새하얗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청암동에 이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만제단을 짓기 시작하면서 저도 벽돌을 나르며 건설 일을 도왔습니다. 많은 교인들과 같이 찬송을 부르면서 일하는 것이 참으로 신나고 즐거워서 저는 매일 건설현장에 달려가 일을 하곤 했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성경 이사야서와 호세아서 등을 자세히 풀어 주시며 동방의 일인과 감람나무를 증거하셨습니다. 저는 한 구절 한 구절 자세하게 설명하시는 말씀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성경이 이렇게 재미있구나!’ 하며 집에 돌아와 거듭거듭 읽어 보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14장에 기록된 대로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존재가 곧 ‘감람나무’라 하시며 그 은혜를 내리셔서 우리의 죄를 씻어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내가 이토록 귀하신 분을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람나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죄를 씻을 길이 없는데……. 얼마나 큰 복을 받은 것인가!’ 하면서, 항상 감사를 드리며 이 길을 따르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동네에 사는 신 집사님의 따님이 폐병으로 고생하다가 숨을 거둔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댁에 가서 신 집사님과 함께 시신을 씻기고 입관하는 것을 돕게 되었습니다. 뻣뻣하게 굳은 시신이 전혀 움직여지지 않아서 가위로 옷을 잘라 벗긴 후에 씻겼는데, 난생처음 해 보는 일이었지만 신 집사님과 같이 찬송을 부르면서 거뜬히 할 수 있었습니다.
다 씻기고 났더니 시신이 어느새 노긋노긋 부드러워졌을 뿐 아니라, 폐병을 앓은 탓인지 시커먼 빛을 띠던 피부도 뽀얗게 피어나 보기 좋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입관을 돕는 동안 제 마음이 참으로 기쁘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저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후 막내딸 경혜가 다섯 살쯤 되었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턴지 아이가 밥을 잘 먹지 못하고 힘이 없었는데, 불 주사(결핵 예방주사)를 맞고 온 뒤로 주사를 맞은 부위가 계속 헐면서 더욱 기운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마루에 앉아 있을 때, 2층에 있던 경혜가 계단으로 내려오는 소리가 분명히 들렸는데 시간이 지나도 1층에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싶어 계단으로 올라가 봤더니 경혜가 계단에 앉은 채로 정신을 잃어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반응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축 늘어진 아이를 안고 마루로 급히 내려왔더니 남편은 무척 당황하여 의사를 불러야겠다고 했지만 제 생각에는 의사를 기다릴 시간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 마침 축복받은 생명물이 있다는 것이 떠올라 저는 소중히 보관해 두었던 생명물을 가져와서 숟가락으로 아이의 입에 떠 넣었습니다. 의식을 잃은 사람에게 물을 먹이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생명물은 시신의 입에 넣어도 잘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먹였습니다. 생명물이 목으로 꼬르륵 꼬르륵 하며 넘어가자 잠시 후 코밑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더니 창백하던 양 볼에 발그스름한 핏기가 감돌았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반짝 눈을 뜨고는 생기 있는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헐어 있던 주사 부위도 깨끗이 아물고 아프기 전보다 더욱 건강해져서 기운을 되찾은 것을 보면서 저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제가 전도했던 분 중에는 장 씨 성을 가진 그릇 장사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정직하게 장사하는 모습과 넉넉한 성품을 보고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제2운동장 집회에 모시고 갔는데, 그 후로 원효로 구제단에도 함께 다니게 되었습니다. 장 권사님은 이만제단을 지을 때 일꾼들의 식사를 준비하며 나름대로 정성을 기울였고, 소사를 거쳐 덕소신앙촌에 입주해 신앙생활을 계속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기장신앙촌 축복일에 가끔씩 저와 만날 때면 그분은 제 손을 꼭 붙들고 반가워했습니다. 저를 보고 귀한 길로 이끌어 준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내 평생에 잊지 못하지요.”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항상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시던 그분이 몇 년 전에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저는 매주 신앙신보를 받을 때면 하나님 말씀을 제일 먼저 펼쳐 봅니다. 그 말씀을 읽을 때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어떻게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본향인 하늘나라를 알게 하시고 그 본향으로 돌아갈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 이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길을 따르며 기쁘고 즐겁게 살아온 세월을 몇 마디 글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소중히 간직해 왔던 체험을 간단히 적어 보았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미처 죄를 깨닫지 못하여 회개하지 못할까 봐 항상 저의 마음과 생각을 돌아보면서, 죄와는 상관없이 맑고 성결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나님 귀한 은혜로 함께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