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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희생과 사랑 기억하며 흐르는 눈물로 기도합니다

강봉임 권사(3)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192

강봉임 권사 / 기장신앙촌

1961년 1월 당시는 소사신앙촌에 물을 공급하는 큰 우물을 건설하던 때였습니다. 새벽예배를 마친 후 사람들이 돌 하나씩을 이고 우물 짓는 곳으로 가져가면 하나님께서 인자하게 웃으시며 한 명 한 명에게 전부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돌을 나른 후 안수를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줄을 섰을 때, 하나님께서 양쪽의 손목을 앞으로 모으시더니 “내가 이렇게 돼도 너희가 나를 따르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하며 궁금했지만 안수를 받고 곧 잊어버렸는데, 그로부터 이틀 후 하나님께서 구속되셨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제서야 손목을 모으시던 모습이 수갑을 차는 것을 뜻함을 알게 되면서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황무지에 축복하셔서 아름다운 신앙촌을 세워 주시고 그곳에서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 갖은 핍박과 악의적인 비방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촌과 전도관으로 계속해서 몰려오자, 특정 종교계와 종교계를 등에 업은 일부 정치인들은 위기 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들의 음해로 하나님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옥고를 두 번이나 치르셔야 했습니다. 옥에 들어가시기 직전에 저희를 바라보시며 “그래도 너희가 나를 따르겠느냐?” 하고 물으시던 하나님의 모습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저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고 이 길을 따라야겠다.’라고 굳게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입관예배 중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향기가 진동해
주위를 둘러봐도 문 열린 곳이 없는데 시신을 향해 바람이 불어
시신이 뽀얗게 피어나며 산 사람처럼 노긋노긋 부드러워져

그 후 저희 집과 이웃한 아파트에 사시는 70대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입관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던 중에 갑자기 제 머리 위로 시원한 바람이 확 하고 불어오더니 좋은 향기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른 주위를 둘러봤지만 문이 열린 곳도 없고 그런 바람이 들어올 데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람이 시신을 향해 불어 가자 거무튀튀한 빛을 띠던 시신이 뽀얗게 피어나면서 굳어 있던 몸도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노긋노긋 부드러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느꼈던 바람이 바로 성신의 바람이며 하나님께서 은혜를 허락해 주실 때 시신이 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비조합을 계속하던 저는 소사신앙촌 부근의 조종리에 단골 고객이 많아지면서 그곳에 자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조종리의 전도관 식구들이 제단을 세우고자 부지를 매입하게 되었는데, 한번은 장로교회에 다니는 아주머니 한 분이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이 제단 터 옆을 지날 때 제단 터에서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솟구치더니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면서, 그 순간 ‘어떡하나. 사람들이 전도관으로 몰려가겠구나.’ 하고 생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제단을 완공하고 개관집회가 열렸을 때는 조종리는 물론 이웃 동네의 주민들까지 참석했으며, 제가 전도했던 젊은 주부는 예배에 꾸준히 나오더니 후에 부천제단의 부인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1962년에는 모시고 살던 시어머니가 68세를 일기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온화하고 인자한 성품으로 진실되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노력하셨던 시어머니는 아침을 드신 후 주무시는 것처럼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입관예배를 드릴 때 어머니의 손가락마다 축복 솜을 끼워 드리고 축복 비누로 온몸을 깨끗이 씻어 드렸습니다. 시신의 얼굴은 일흔이 가까운 할머니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뽀얗고 맑게 핀 데다 꽃처럼 예쁜 홍조를 띠어서 모두들 “어머니가 너무 예쁘시다.” 하며 감탄을 했습니다. 입관예배를 드리는 내내 집에서 향취가 진동하여 이웃집 사람들도 저희 집에서 향취가 계속 난다고 했었습니다. 그 귀한 은혜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소사신앙촌에 입주한 후부터 소비조합을 시작한 저는 40년 넘게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소비조합을 하면서 10명의 대가족 살림을 꾸렸으며 첫째 아들의 박사 공부를 비롯해 6남매 아이들의 학업까지 뒷바라지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걱정도 없고 근심도 없는 편안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기쁘고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신앙촌 제품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지금도 소비조합을 할 때만큼 즐거웠던 시절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장사를 마친 늦은 밤 소사신앙촌 삼거리에 들어설 때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향긋한 향취가 제 몸을 감싸면서 하루의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습니다. 그때 느낀 평안과 기쁨은 맛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1979년부터 10년간은 둘째 딸이 있는 전라남도 남평으로 내려가서 소비조합을 계속했는데, 남평제단을 깨끗이 수리할 때 동참했던 일이 보람 있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2004년 5월 기장신앙촌에 입주한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은빛학교에 가는 것이 큰 즐거움입니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찬송가를 부르는 시간이 가장 기다려지는데, 아흔이 넘어서도 돋보기 없이 피아노를 치시는 양로원 원장님부터 고운 음색을 가진 할머니 학생까지 다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냅니다. 그토록 소망했던 기장신앙촌 – 마음의 고향인 이곳을 둘러볼 때면 하나님의 모습이 떠오르곤 합니다. 신앙촌에 모여든 교인들이 경제적으로 살아갈 길을 마련해 주시고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도 한없는 은혜를 허락하시는 하나님. 그 희생과 사랑 앞에서 오늘도 조용히 흐르는 눈물로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깨달아 알게 하시고 하루하루 죄를 이기는 생활로 그날에 구원을 얻는 자격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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