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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권능을 통해 마음의 기쁨과 평안 얻어

<다시 보는 신앙체험기> 선우혜국 승사
발행일 발행호수 2644

소사신앙촌의 시온유치원 모습(1957년경)

제가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마음에 기쁨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인 저는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처음 들어온 당시부터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양가가 기독교를 믿었기 때문에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이미 세례를 받고 태어나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23세 되던 해에 결혼을 하였고, 1947년에는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내려와 6․25 전쟁을 겪게 되면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육적인 빈곤함과 더불어 분단된 조국에 대한 슬픔 등으로 인해 저는 늘 불안하고 초조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이런 식으로 살 수 없다고 판단하여, 하나님을 진실로 잘 믿어서 마음의 기쁨을 얻고자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결심을 하고부터 저는 부흥집회가 열린다고 하면 어느 곳이든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 자신이 기쁨을 원한다고 하여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운몽 장로의 용문산 집회에 갔을 때, 신을 받았다는 사람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방언을 한다고 야단이었는데, 저는 그런 모습이 부럽기는커녕 오히려 추하게 느껴지며 더 이상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이곳은 내가 찾는 곳이 아니다’ 깨닫고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여러 부흥집회에 참석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강 모래사장에서 박태선 장로님의 부흥집회가 열린다고 하여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1955년 7월이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는데, 집회가 열리는 동안 제 눈앞에서는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벙어리가 말문이 트이고, 소경이 눈을 뜨며, 들것에 실려 왔었던 병자들이 벌떡벌떡 일어나는 등 그동안 여러 번 부흥집회를 다녔어도 이런 일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의 기쁨 찾아 여러 부흥집회에 참석했으나 만족 못 해
박 장로님 집회에서 기적 목격하고, “죄가 빠져나가야
성신이 담긴다”는 말씀에 감동하여 새사람 되기로 결심

그런데 병자가 일어나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죄가 빠져나가야 성신이 담긴다”고 하시는 하나님 말씀이 제 가슴속에 절실히 와 닿았습니다. 평생 기성교회에 다니며 죄에 대한 것도 모르고 눈물이 메말라 있었는데, 하나님을 뵙고는 제가 지극히 작은 자라는 것이 느껴지면서 눈물만 흐를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새사람이 될 수 있을까?’, ‘성신이 담길 수 있도록 깨끗하게 살아야겠다’ 하는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그 후 1956년 1월 1일부터 전도관 교인으로 정식 등록을 하고 원효로 구제단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곧 전도사로 발령을 받아 일을 하였고, 저는 시어머니를 저희 집에 모시고 와서 제단에 같이 다녔습니다.

그런데 1957년 12월 시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시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혀 의식을 차리지 못하며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였는데, 생명물은 떠 넣어 드리면 간신히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의식이 없는 상태로 한 달이 지났습니다. 당시 지방에서 전도사로 있던 남편이 올라와 하나님께 가서 어머니의 사정을 말씀드리니, “그럼 내가 가서 안찰해 주지” 하시고 친히 저희 집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어머니를 안찰해 주시는데 그렇게 정성스러운 안찰은 처음 보았습니다. 머리에서부터 손끝 발끝까지 안찰을 하시고는 다시 한번 더 해 주셨습니다. 안찰을 마치신 후에는 항아리에 물을 떠 오라 하셔서 떠다 드리니 그 물을 축복해 주시면서 이것만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시어머니가 숨을 거두시는 날까지 3일 동안 그 생명물을 계속 넣어 드렸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저희는 너무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어머니의 얼굴에는 발그스레하게 혈색이 돌면서 너무나 투명하여 가느다란 핏줄까지 보일 정도였습니다. 입술 또한 연지를 바른 것처럼 새빨간 빛을 띠었는데, 60세 넘은 할머니가 너무나 곱게 피어 예쁜 모습을 하고 있으니, 보는 사람들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보다 더 젊다”고 하며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그 곱게 핀 모습에 더욱 놀라웠던 것은, 시어머니 얼굴 가득하게 너무나 맑은 이슬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집에 오셔서 아픈 시어머니 안찰,
생명물 축복해 주셔 시어머니 돌아가신 후
얼굴엔 혈색 돌고 이슬방울 맺혀 모두 놀라워해

그 후 1958년 1월 소사신앙촌에 입주하여 시온유치원을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보육에 관한 공부를 하여 고향에 있을 때 유치원 원장을 하기도 했었고, 6․25 전쟁 때는 전쟁 고아들을 돌보기도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저에게 유치원을 맡긴 것이었습니다. 은혜 안에서 자란 아이들이라 믿지 않는 밖의 아이들하고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아이들이라면 서로 싸우는 일이 예사일 텐데, 싸우는 일이 없고 짜증 내거나 불평 한마디 하지 않으며 말 잘 듣는 아주 착하고 순한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으로 1975년 기장신앙촌에 내려와서는 탁아소를 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일하러 가는 부모들이 맡기고 간 어린 아기에서부터 조금 큰 아기까지 돌보는데, 점점 아기들이 모여들어 숫자가 많아지니 기저귀 갈아 주는 일, 세탁하는 일, 취사하는 일 등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기들이 아플 때면 생명물로 치료를 하거나 하나님께서 방문하셨을 때 아픈 아기를 안고 하나님 앞에 가서 안수를 받게 하면 금방 나았습니다. 홍역을 앓을 때는 생명물을 몸에 바르고 먹이면 며칠 만에 다 나았고, 갑자기 위경련이 일어나 울어 댈 때는 생명물을 먹이고 가제에 생명물을 적셔서 가슴과 배에 올려놓으면 금방 가라앉았습니다. 약도 필요 없고 또 병원에 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늘 하나님 보호 안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 어느새 그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공부하러 학교에 다니고 회사에 취직을 하여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신통하고 대견스럽습니다. 훌륭하게 커서 장차 시온의 큰 기둥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랫동안 탁아소와 유치원을 하다가 1989년 12월부터는 양로원을 맡게 되었습니다. 많은 연세에 홀로 생활하시던 분들이 다 모이게 되었는데, 다른 분들이 우리 양로원을 방문하면 할머니들 얼굴이 참으로 깨끗하고 밝다며 부러워합니다. 신앙촌의 양로원 할머니들은 80세가 넘은 분도 90세가 넘은 분도 모두 웃음이 끊이지 않고 늘 기쁨으로 지냅니다. 항상 평안하고 부족함 없이 지내게 해 주시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또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날 때도 너무나 평안한 모습으로 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노환으로 혹은 지병으로 앓아누워 계시다가 어느 날 조용해서 코 밑에 손을 대 보면 숨을 거두신 것입니다. 시신을 깨끗하게 씻겨서 생명물을 발라 주면 너무나 예쁘게 잘 피는데, 장의사가 와서 보고 “깨끗하게 예쁘게 가셨네요” 하며 감탄하기도 하고, 곱게 피어 있는 모습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신기해할 때도 있습니다.

기장신앙촌 내 탁아소에 이어 양로원 담당
등과 목에 혹 있던 권사님 돌아가신 후 생명물로 씻겨 드리니
돌덩이 같던 혹 흔적도 없이 사라져

그동안 양로원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들 모두 한결같이 생전보다 훨씬 젊고 예쁘게 피어서 가셨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박말자 할머니가 후두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젊어서 전도사님으로 활동하셨던 박말자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늘 목이 아프다고 하시더니 목이 점점 굵어져서 나중에는 얼굴과 구분이 안 될 정도까지 되었고, 등과 목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혹 같은 것이 몇 개씩이나 불룩불룩 튀어나왔으며, 한쪽 눈두덩도 둥그렇게 혹처럼 부어올라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오랜 투병 생활 끝에 결국 1995년 8월에 77세의 일기로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박말자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아침, 저는 시신을 먼저 씻겨 드렸습니다. 혹같이 불룩한 데를 만져 보니 물컹물컹한 줄 알았었는데 돌덩어리같이 딱딱하였습니다. 정성껏 깨끗이 씻은 다음 입에 생명물을 넣어 드리고 솜에 생명물을 적셔서 얼굴에 씌어 드렸습니다. 다음 날 장의사가 왔을 때 덮어 놓았던 가제를 들쳐 보았는데, 전날보다 예쁘게 피어 있었고, 장의사는 혹을 만져 보더니 “돌덩어리네요” 하고 얘기하였습니다.

잠시 후 입관식을 하기 위해 장례반 권사님과 여러 승사님, 권사님들이 오셨습니다. 하나님 찬송 테이프를 틀고 모두 찬송을 부르는 가운데, 저와 장례반 권사님은 전날 씻어 놓아 깨끗해진 시신을 수월하게 씻기고 수의를 입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된 일인지 돌덩이 같던 혹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혹이 다 없어졌네요” 하며 소리쳤고, 거기 모여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 기적 같은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손뼉을 치며 기뻐하였습니다. 목에 있던 여러 개의 혹이 다 없어졌고, 눈두덩도 정상적으로 가라앉았으며, 등에 있던 혹도 온데간데없었습니다. 혹이 터진 것도 아니고 있었던 흔적조차 없이 그냥 어느 순간 없어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시신을 씻기는 데에만 정신을 쏟아 혹이 언제 없어졌는지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때의 감격과 그 기쁨이라는 것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박말자 할머니의 생전 모습은 시커먼 피부에 얼굴에는 검버섯이 많았었고 그리 고운 모습은 아니었는데, 시신을 씻기고 나니 얼마나 예쁜 모습으로 변하는지 시커멓던 피부는 뽀얀 빛으로 변하고 얼굴에 있던 보기 싫은 검버섯도 다 없어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살아 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주 곱게 피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그동안 수많은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서 가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때만큼 기뻤던 적은 없었습니다. 하나님 크신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그동안 ‘선을 보고도 행치 않으면 죄다’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더욱이 은혜 안에서 하는 일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맡겨 주시면 순종 못 할 것이 없고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여든둘의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건강히 즐겁게 살아가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큰 축복이라 생각하며, 무엇이든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 뜻에 따라 열심히 살아가고자 합니다.

<1996. 9. 15.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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