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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하게 하나님을 믿으려면 전도관에 다녀야 해요

김필녀 승사(1)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379

저는 1930년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서당의 훈장이셨으며 농사를 지었던 저희 집은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제 나이 열다섯 살 되던 무렵 일제 말기에 이르러 처녀들을 강제로 공출해 갈 때 저는 공출을 피하려고 서둘러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시집살이를 하고 일제 말기와 6·25 전쟁까지 겪으면서 항상 마음을 놓지 못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을 믿으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집과 가까운 감리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교회에 찾아간 저는 예배에 빠짐없이 다니며 교회 청소를 맡아 놓고 하면서 나름대로 잘 믿어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예배당에 다니면서 잘 믿으면 나중에 천국에 갈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영월에서 10년 동안 감리교회를 다니다 정선군 예미리로 이사하게 되었는데, 동네에 다 쓰러져 가는 감리교회가 있어서 그 교회를 새로 짓고 제가 속장(구역별 모임인 속회를 맡아 인도하는 교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부흥상회라는 만물상을 운영했던 저희 집은 장사가 꽤 잘되어 넉넉하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차가운 성품의 언니가 전도관에 다닌 후
따뜻한 성품으로 바뀌었다며
‘사람이 변 한 거 보면 뭔가 있는거죠?’

그러던 1962년이었습니다. 저는 함백에서 감리교회에 다니는 김원오 권사라는 분과 알고 지냈는데 어느 날 그분이 저희 가게에 찾아와서 친언니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김원일 권사라는 그분은 소사신앙촌에 살면서 강원도로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러 다닌다고 했습니다. 김원일 권사님이 신앙촌에서는 아주 다양한 물건이 생산되며 불을 켜는 데 사용하는 카바이드도 만든다고 하여 저는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시골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카바이드가 아주 유용하게 쓰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김원일 권사님을 통해 신앙촌의 카바이드를 구입하여 저희 가게에서 판매하게 되었고 그러는 동안 김원일 권사님과 김원오 권사님이 저희 가게에 자주 오게 되었습니다.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신앙촌은 전도관 교인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이며, 전도관과 신앙촌은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세우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촌에 들어서자마자 탄성을 터뜨려
아름다운 풍경과 활기찬 사람들 모습
흐르는 공기까지도 아주 맑고 상쾌해

김원일 권사님은 신앙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신앙촌에 직접 가 보면 어떤 곳인지 알게 될 거예요.” 하며 같이 가 보자고 권유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동생인 김원오 권사님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우리 언니가 원래 아주 차갑고 냉정한 성품이었거든요. 그런데 전도관에 다니고부터 그렇게 부드럽고 따뜻해질 수가 없는 거예요. 사람이 그렇게 변화되는 거 보면 뭔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으려면 전도관에 다녀야 한다며 자신도 전도관에 다니고 싶어서 여러 사람들과 힘을 모아 함백에 전도관을 세울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신앙촌이 어떤 곳인지 점점 궁금해져서 한번 가 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감리교회 전도사는 ‘신앙촌은 한번 가면 못 나오는 곳’이라고
음해 했지만 직접 신앙촌에 와 보니 오히려 계속 더 머물고
싶어져서 저를 데리고 갔던 권사님에게 부탁해 며칠 더
신앙촌에 머물면서 예배에 참석하고 향취의 은혜를 받아

한번은 제가 다니는 감리교회의 전도사에게 신앙촌에 대해 물었더니, 전도사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신앙촌은 이단입니다.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오는 곳이에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성을 높이며 무조건 신앙촌에 가지 말라고 하는데 오히려 저는 ‘전도사님이 설명도 제대로 안 해 주고 왜 저럴까?’ 하며 의아해졌습니다. 그리고 한 교인은 박태선 장로님의 부흥집회에 참석해 봤다고 했는데 “단상에 무슨 전기 장치를 해 놓았는지 박 장로님이 단상을 치실 때마다 불이 번쩍번쩍하더라. 또 향수를 얼마나 뿌렸는지 온 집회장에 향수 냄새가 진동하더라.”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설마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속임수를 쓸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교인한테 “향수 뿌리는 것을 직접 보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그런 걸 사람들이 보는 데서 하겠나? 미리 진한 향수를 뿌려 놓아서 냄새가 오래오래 나는 것이겠지.”라고 했습니다. 저는 ‘전도관과 신앙촌은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곳’이라고 들었던 이야기가 가슴에 남아서 그런지 무조건 속임수라거나 이단이라고 하는 말에는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 후 1962년 6월에 저는 김원일 권사님을 따라 소사신앙촌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촌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워서 들어서자마자 탄성을 터뜨렸습니다. 반듯반듯하게 서 있는 양옥집들과 그 옆에 가꾸어진 예쁜 화단은 외국의 별장처럼 멋있었으며, 거리를 활기차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은 무척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습니다. 신앙촌에 흐르는 공기까지 아주 맑고 상쾌하게 느껴져서 정말 별세계에 온 것만 같았습니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오만제단에 올라가서 신앙촌을 내려다보니, 산뜻한 원색의 페인트로 주택의 지붕을 색칠해 놓은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촌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
예전에 한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싱그럽고 달콤한 냄새가 나

저는 박태선 장로님께서 오만제단에서 새벽예배를 인도해 주신다는 말을 듣고 새벽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넓은 제단이 꽉 차도록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모두들 진지하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등단하신 박태선 장로님은 키가 크신 신사 분으로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듯 환하게 빛나는 모습이셨으며, 박 장로님께서 손뼉을 치며 찬송을 인도하시자 그 많은 사람들이 꼭 하나같이 박자를 맞춰 힘차게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찬송 한 구절 한 구절에 진심을 담아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큰 감동을 받아 예배에 계속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감리교회의 전도사는 ‘신앙촌은 한번 가면 못 나오는 곳’이라고 했지만, 제가 직접 신앙촌에 와 보니 붙잡는 사람이 없어도 계속 머물고 싶어져서 저를 데려갔던 김원일 권사님에게 부탁하여 며칠 더 신앙촌에 있기로 했습니다.

신앙촌에서 예배를 드린 지 3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어디선가 매캐한 냄새가 풍겨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 냄새가 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이런 냄새가 나는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그 냄새가 금방 사라지더니 아주 향기롭고 좋은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백합 향기처럼 싱그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달콤하기도 한 그 향기는 예전에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는 냄새였습니다. 옆에 있는 김원일 권사님에게 아주 좋은 향기가 난다고 이야기했더니, 그 향기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난생처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저는 ‘참 신기하네. 이 향기가 정말 은혜인가?’ 하며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김필녀 승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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