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보고 겪은 은혜 어찌 부인할 수 있을까’
곽병기 / 기장신앙촌그해 가을에는 서울에 올라가 이만제단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안개같이 뽀얀 것이 사람들 머리 위로 자욱하게 내리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한없이 쏟아지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싹싹 피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주시는 이슬성신이 안개처럼 뽀얗게 내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똑같이 예배를 드려도 은혜를 받는 사람이 있고 못 받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안개같이 뽀얀 것이
사람들 머리 위로 내리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한없이 쏟아지고
어떤 사람에게는 싹싹 피해가
예배를 마친 후에는 경기도 부천에 건설 중인 신앙촌에 가서 일을 도울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보은제단을 지을 때 돕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워서 이번에는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신앙촌에 갔습니다. 한창 터를 고르고 있는 신앙촌에 도착해 돌 줍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저는 체구도 작고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그 분위기에 같이 뛰어 다니며 일했습니다. 또 새벽예배 때 앞자리에 앉으려고 일찍부터 준비해서 나가는 것을 보고 저도 따라 다녔습니다.
신앙촌에 들어온 후로 저는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왜 그리 기쁘고 즐거운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입에서 저절로 찬송이 흘러나왔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지어지는 신앙촌을 볼 때면 귀한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보람되었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내일은 더 열심히 살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신앙촌에서 어느 정도 일을 돕고 나니 그만해도 된다고 했지만 저는 일을 놓기가 아쉬웠고 신앙촌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정식으로 신앙촌 건설대가 되어 일하게 됐습니다.
저는 신앙촌에서 설교 말씀을 들으며 죄를 벗지 못하면 누구도 구원을 못 얻는다는 말씀이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죄를 씻어 주시는 하나님 은혜를 받아서 무서운 지옥을 면하고 천국에 꼭 가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짓지 말라 하시고 은혜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니 천국에 가는 것은 믿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내가 바르게 행하는 데 달렸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습니다. 구원 주시는 길을 끝까지 잘 따라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죄를 벗지 못하면 누구도 구원을 못 얻는다는 말씀이 두렵게 느껴져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짓지 말라 하시고 은혜로 죄를 씻어 주시는 하나님
믿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내가 바르게 행해야 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어
그 후 1961년에는 동아일보에서 이슬성신 사진이 조작됐다는 터무니없는 기사를 실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동아일보사에 항의하러 가는 사람들을 저도 따라 나섰습니다. 동아일보사 앞에 앉아서 구호를 외치다가 경찰들이 곤봉을 휘두르며 트럭에 타라고 하여 올라탔더니 경찰서로 데려갔습니다. 조사 받을 때 동아일보사에 왜 갔냐고 묻기에 하도 억울하고 답답해서 갔다고 했습니다. 내가 직접 보고 겪은 일을 거짓말이라고 하는데 억울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정말 이슬성신이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봤지요. 내 눈으로 직접 봤으니 따르는 거 아닙니까.” 했더니 할 말이 없는지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소비조합들이 매일 하나님께 안수를 받고 제품에도 축복을 받는 것을 보고 부러운 마음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원래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편이라 신앙촌 메리야스와 양말을 가지고 다니면서도 제대로 설명을 못했습니다. 그래도 신앙촌 상표를 먼저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서 차츰 단골도 생기고 재미있게 소비조합을 했습니다. 늦게까지 다니느라 피곤한 때에도 다음 날 아침 하나님께 안수를 받으면 온몸이 시원하고 가벼워졌고, 축복 받은 제품을 가지고 다니면 어느새 향긋한 향취가 저를 따라오는 것처럼 계속 맡아졌습니다.
신앙촌을 건설하는 일에 참여하니
기쁘고 즐거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입에서 저절로 찬송이 흘러나와
귀한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해
그 후 1962년 덕소신앙촌을 지을 때는 다시 건설대로 일하게 됐습니다. 한강변의 아름다운 덕소신앙촌을 바라볼 때면 우리 가족들도 이 길을 알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길이 구원의 길이고 생명길인데 나만 가서야 되겠나. 우리 가족들도 전부 다 와야 할 텐데…….’ 안타까운 마음에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연락하고 하나님 말씀도 전해 주었습니다. 얼마 후 동생들과 조카들 여러 명이 제단에 나오게 되어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신앙촌에서 지내는 동생과 조카가 이 길을 잘 따라가기를 기도드리곤 합니다.
기장신앙촌은 갯벌과 논이었던 땅을 흙으로 메워서 건설하느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덕소신앙촌에서 부산까지 오가시며 건설을 하셨습니다. 손수 자갈도 씻어 주시고 과정 하나하나를 진두지휘하셨습니다. 지금 깨끗하고 넓은 신앙촌 거리를 볼 때면 진흙투성이 논이었던 모습이 떠오르고 작업복 차림으로 함께 일하시며 우리에게 힘을 주시던 하나님 모습도 떠오르곤 합니다.
기장신앙촌 건설이 마무리된 후 저는 메리야스 공장과 식당 등에서 일했습니다. 퇴직한 후에도 일손이 필요한 곳을 도왔는데 요즘은 오전에 사원식당에 나가서 식재료 다듬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점심 때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몸도 마음도 가볍습니다. 올해는 체육대회가 있어서 할머니들도 매일 저녁에 모여 운동했는데 나이를 잊을 만큼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10월에 체육대회를 보내며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끝까지 이 길을 따라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됐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내 영혼이 은혜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하는 찬송이 떠오릅니다. 전쟁을 겪고 허무하고 슬펐던 마음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기쁨과 소망을 갖게 됐습니다. 얼마나 큰 복을 받았는지 세월이 갈수록 마음 깊이 느끼게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 가르쳐 주신 대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서 죄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세계에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곽병기님 신앙체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