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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상관 없어야 구원 얻는다는 말씀은 제 귀에 울리고

김영희 권사(1)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171

저는 1922년 경상남도 삼천포에서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불교 신자인 어머니는 저에게 불교를 믿어 보라며 권유하셨지만 저는 종교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1955년 가을, 결혼 후 부산 서면에서 살던 때였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옆집 정소순 언니(현재 기장신앙촌 권사)가 부흥집회에 같이 가자고 하기에 저는 부흥집회가 어떻게 하는 건지 물었습니다. 언니는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이라고 하면서, 특히 그날 집회를 하시는 박태선 장로님은 은혜를 많이 내리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은혜가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더니 언니는 가 보면 알게 된다고 대답했고, 그 말에 ‘은혜가 무엇일까? 진짜 볼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겨서 그길로 언니를 따라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박장로님께서는 설교 시간마다 죄 짓지말라고 강조하셨는데
처음엔 ‘우리가 무슨 죄를 많이 짓는다고 그러시나?’의아 했지만
이전에 죄라고 생각지 못했던 것도 자유율법에선 죄가 됨을 깨달아

초량역 부근에 커다랗게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깔아 놓은 집회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엄청난 인파가 무릎이 닿을 정도로 빽빽하게 앉아 있는 모습은 말 그대로 진풍경이었으며, 그런 모습을 처음 봤던 저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어 박태선 장로님의 인도에 따라 손뼉을 치면서 힘차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그냥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찬송하는 것 같았고, 그 모습을 보며 저도 그렇게 불러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따라 부르는데 박 장로님께서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하는 찬송을 인도하셨습니다. 그 찬송이 제 마음을 깊이 울리는 느낌에 오랫동안 반복해 불러도 자꾸만 더 부르고 싶었고, 가사 내용이 완전히 머릿속에 들어와 어느새 다 외우게 되었습니다. 찬송을 부르는 동안 가슴 가득히 기쁨이 차오르며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습니다.
당시 저는 가슴과 팔다리에 고질적인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스물일곱 살 때 갑작스런 사고로 남편을 잃어 큰 충격을 받은 저는, 그 후부터 가슴이 무겁고 답답하며 팔다리가 항상 뻐근해 기운을 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몇 년 동안 병원 치료를 받고 유명한 한약방에서 침을 맞아도 끈질기게 계속되던 그 증상은,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하는 동안 언제 사라졌는지 간 곳이 없었습니다. 제가 아팠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채 오직 예배에만 마음을 쏟게 되었습니다.
밤이 되어 소순 언니가 집에 가자고 했지만 저는 집회장에 계속 있고 싶었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그곳에서 떠나고 싶지 않아서 집회가 열리는 6일 동안 계속 철야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집회장에서 철야하며 기도를 드리고 찬송도 불렀습니다.
집회 중 하루는 박 장로님께서 설교하실 때 눈송이처럼 하얗고 동글동글한 것이 계속해서 쏟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광경을 본 순간 “어머! 눈이 온다!”고 탄성을 질렀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계절이 가을인 데다 천막 안에 눈이 올 리도 없기에 참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제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무슨 눈이 온다고 그래요?” 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보자, 소순 언니가 그게 바로 은혜라면서 제가 본 것이 이슬과 같이 내리는 성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눈으로 목격한 광경이 너무나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설교 시간마다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우리가 무슨 죄를 많이 짓는다고, 자꾸 죄짓지 말라고 그러시나?’ 하며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되어 구원을 얻으라는 그 말씀은 참으로 간곡하고 진실하게 들렸습니다. 집회에 계속 참석하면서 저는 이전에 죄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하나님의 법에서는 죄가 된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혼신의 힘을 다해 쏟아 내시는 그 말씀은 제 귀에 들어와 울리는 것 같았고, 꼭 말씀대로 살아서 구원을 얻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회 중 어느 날 박 장로님께서 “병 나은 자는 다 일어나라!”고 외치시자,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무슨 병이 나았다며 기쁨에 차서 이야기했습니다. 저 또한 언제 아팠었나 싶게 몸이 가벼워졌기 때문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저도 병이 나았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단상 바로 아래에는 열두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일어나 있었는데, 벙어리였던 소년이 이 집회에서 말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단상에 있던 마이크를 소년에게 대 주시자 “하-나-님- 감-사-함-다.” 하고 한마디 한마디 말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저 아이가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기쁠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평생 벙어리로 살아야 하는 아픔을 씻어 주신 하나님. 말문이 열린 아이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하나님을 부르던 그 순간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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