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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벗으면 영생할 수 있다는 말씀에 ‘내 믿을 곳은 바로 이곳’

남삼호 관장(1) / 부산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329

제 고향은 경상남도 삼천포읍 실안리(현재 경남 사천시 실안동)입니다. 청정 해역인 남해안의 수평선이 눈앞에 펼쳐지는 동네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님이 토기 공장을 운영하셔서 인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살았는데 저희 삼 형제는 둘도 없는 친구요 형제로서 의좋게 지냈습니다. 그 후 육이오전쟁을 겪으며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워져서 저는 철공소에서 일하는 한편으로 야간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제 나이 열일곱 살 되던 1955년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원래 저희 가족은 아무런 종교를 믿지 않았는데 어머님이 “우리 마을에 중이 찾아와 사람들의 사주를 봐 준단다.” 하시며 저를 데리고 가셔서 사주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이 하는 말이 제가 20대에 죽을 것이라며 “절에 가서 도를 닦아야 하며 얼굴에 화상을 입혀 바깥 세상에 나오지 않아야 살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원래 무종교였는데
제가 열일곱 살 되던 때
지나던 중이 제 사주를 봐 준다며
20대에 죽을 것이라고 입산을 권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에 어머니와 저는 몹시 불쾌하여 더 이상 이야기를 듣지 않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은연중에 ‘정말 내가 일찍 죽는 게 아닐까?’ 하며 걱정하게 되었고, 한창 예민한 사춘기였던 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커지면서 ‘어떻게 사는 길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궁리 끝에 저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하고 부르던 모습을 생각하면서 ‘나도 하나님께 기도드려 보자.’라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신에게 의지하여 마음 깊은 곳의 두려움과 불안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생각날 때마다 ‘하나님!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이 저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커져
마음 속의 불안을 덜고 싶어
궁리 끝에 ‘나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보자’고 결심해

그렇게 몇 년이 지난 1958년 5월이었습니다. 이웃에 사는 친구 종남이의 어머님이 저희 집에 찾아와서 ‘전도관’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전도관은 박태선 장로님께서 세우신 교회로 전국 곳곳에 있으며, 이번에 아들 종남이가 서울에 있는 전도관에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종남이가 서울에서 예배드릴 때 문둥병이 낫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으며 꼽추가 등이 펴지는 등 놀라운 일을 많이 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너무 신기하여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어요?” 하고 거듭 물었더니 종남이 어머니는 “종남이가 이야기해 준 거니까 궁금하면 종남이한테 직접 물어보려무나.” 하셨습니다. 당장 그길로 종남이를 찾아가서 “네 모친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던데 정말이야?” 하고 물어봤는데, 종남이가 직접 본 사실이라고 분명하게 대답하는 것을 듣고 더욱 호기심이 생겨났습니다. “종남아, 나도 전도관에 가 볼 수 있을까?” 했더니 “물론이지!” 하며 삼천포에도 전도관이 있다면서 위치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전도관에 가면 예배를 드리고 있을 거라면서, 자신은 급한 일이 있으니 저한테 먼저 가 보라고 하여 저는 가르쳐 준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전도관에 나가 은혜를 받고
찬송하는 것이 마냥 기쁘고 즐거워
예배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매일 새벽예배 가는 것이 일과가 돼

삼천포전도관은 철로 옆 공터에 천막을 친 곳으로 학생들과 어른들이 모여서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저 혼자 들어가기가 쑥스러워 천막 옆에서 기웃거리며 안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등 뒤에서 아주 부드러운 음성으로 “어디서 오셨습니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돌아보니 젊은 청년 신사가 90도로 인사하며 악수를 청하는데, 너무도 정중하게 인사를 하여 저는 황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삼천포전도관의 전도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천막 안으로 친절히 안내해 주었습니다.

전도사님은 그날 설교 시간에 천국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은혜를 받아 마음의 천국을 이룬 사람들이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사람이 죄로 인해 죽게 되었는데 이슬 같은 은혜로 죄를 씻어서 죄와 상관없는 의인이 되면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죽음이 두려워서 고민하던 저는 그 말씀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이슬 같은 은혜’나 ‘의인’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정말 그 말씀대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내가 믿을 곳이 바로 여기구나.’라는 생각이 뿌리가 내리듯 마음 깊이 들어왔습니다.

전도관에 나가면서 하루하루가 즐거워 직장 생활에도 큰 활력소가 생겨
쇳물을 다루는 힘든 직업인데도 항상 웃으며 일하고
양심껏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했더니 직장에서도 큰 신용을 얻게 돼

그날부터 삼천포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한 저는 매일 새벽예배에 빠지지 않고 나갔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교인들 모두 새벽예배에 열심히 나오며 비바람이 몰아쳐도 예배에 빠지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다 함께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부르면 추위는 아랑곳없이 마냥 기쁘고 즐거워서 언제까지나 찬송만 부르고 싶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다 보면 아주 향긋한 냄새가 강하게 진동할 때도 있었는데, 교인 분들이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라고 이야기하여 저는 그 향기가 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예배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새벽에 일어나 제단에 달려가는 것이 저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전도관에 다닌 후로 ‘나는 살길도 찾았고 소망도 찾았으니 더 원할 것이 없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단에 나가면서 하루하루가 즐거워지니 직장 생활에도 큰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제가 일했던 삼광철공소 주물 공장은 해상 기계를 만드는 곳으로 쇳물을 다루는 힘든 작업이었는데, 항상 웃으면서 일하는 저를 보고 사장님과 종업원들이 “자네는 무엇이 좋아서 그렇게 웃고 사느냐?”라고 했습니다. 제단에서 ‘양심에 비추어 작은 죄라도 짓지 말라.’ 하시는 말씀을 들은 뒤로 양심껏 정직하게 일하고자 노력했더니 직장에서 신용을 얻게 되었고, 사장님이 외출할 때면 값비싼 부품이 있는 공장의 열쇠를 저한테 맡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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