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말씀
신앙체험기
기획
특집
피플&스토리
오피니언
주니어

죄가 상관없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그 음성 지금도 가슴에 울려

남정용 권사(2)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300

그렇게 전도관에 계속 다니던 어느 날, 저를 전도한 박세환 씨가 하는 말이 “나 이제 전도관에 그만 다닐까 보네.”라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이유를 물었더니 “전에 다녔던 모랫말교회 목사가 그러는데 이제 전도관이 다 없어질 거라네.”라고 했습니다. “아니, 이 사람아. 전도관이 왜 없어지겠나. 그런 소리 일절 듣지 말게.”라고 했으나 박세환 씨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저는 ‘왜 목사가 그런 말을 할까? 기성교인들이 전도관으로 몰려가니까 그걸 막으려고 중상모략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랫말 교회 목사가 “앞으로 전도관은 다 없어질거야”라고,
저는 목사가 그런 말 하는 것은 기성교인이 전도관으로
몰려오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이라 생각

그해 12월에 저희 가족은 경기도 부천의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입주한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화장실에 방수 공사가 제대로 안 되었는지 화장실에서 쿠린 물이 새어 나와 주변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그길로 건설과에 달려가서 방수 공사를 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며 일단 화장실을 청소해 두면 방수 공사를 하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저로서는 방수 공사가 무척 다급했으나 신앙촌의 건물을 손보느라 한시가 바쁜 건설과의 입장도 이해가 되어서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집에 돌아와 화장실을 청소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악취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너무나도 좋은 향취가 한없이 밀려오는 것이었습니다. 화장실 청소를 다 마칠 때까지 쿠린내는 조금도 나지 않고 형용할 수 없이 좋은 향취가 계속 진동하니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내가 건설과와 다투거나 화를 냈더라면 은혜를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마음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타고 가던 자전거가 트럭에 받히는 사고가 나 병원에서 엑스레이 찍으니
갈비뼈가 아홉 대나 부러졌다고 진단, 생명물을 마시자 통증이 없어져
계속 생명물 마시고 2주 후 다시 찍으니 뼈가 모두 붙어있어 의사가 놀라

제가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고 얼마 안 되어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이 되셨습니다. 초창기부터 계속되는 핍박과 비방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르게 되자, 이에 위기감을 느낀 기성 종교계와 이러한 종교계를 등에 업은 정치인들이 결탁해 터무니없는 혐의를 씌워 하나님을 구속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옥에 가신 후 모략과 중상이 점점 심해지는 속에서 저는 ‘세상이 무어라 한들 이 길이 분명한 참길이다.’라고 생각하며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이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서울에서 살 때 멸치와 오징어 등을 상점에 판매했던 저는 소사에 입주한 후부터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전거에 빵을 싣고 부평 일대의 상점을 다녔더니 좋은 원료를 써서 만든 신앙촌 빵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맛을 본 사람들이 먼저 알아주었습니다. 상점 주인들은 신앙촌 빵만큼 맛있는 빵을 보지 못했다며 서로 공급해 달라고 아우성이었으며, 어느새 소문이 퍼져서 점점 많은 가게에서 주문이 밀려들었습니다. 계속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공급하기 위해 매일 자전거로 바쁘게 달려도 항상 하루해가 짧게 느껴졌습니다.

좋은 원료로 만든 신앙촌 빵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맛을 본 사람들이 먼저 알아줘
“신앙촌 빵만큼 맛있는 빵 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가게에 들어갔더니 빵을 사러 온 손님이 생수 빵을 보고 “이거 박 장로가 손 씻은 물, 발 씻은 물로 만든 거지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습니까?” 하고 물어보니 “우리 교회 목사님이 그러던데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터무니없는 비방에 울분이 솟았지만 애써 억누르며 손님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보세요, 세상에 그런 물로 빵을 만들 사람이 어디 있고 그런 빵을 먹을 사람은 또 어디 있습니까? 지금 신앙촌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제 말이 옳다고 생각되면 목사한테 가서 따지고 물어보십시오.”라고 하자 그 사람은 더 이상 아무런 이야기도 못 했습니다.

1960년 12월 10일은 동아일보 사건이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당시 전도관과 신앙촌에 대해 편향적인 비방 기사를 계속해서 싣던 동아일보가 급기야 ‘이슬성신이 찍힌 사진이 조작되었다.’라고 보도한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갖은 비방에도 참고 참아왔으나 수백만의 사람들이 직접 보고 체험한 이슬성신이 조작되었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날 교인들이 정정 보도를 요구하기 위해 동아일보사 앞에 모였다가 경찰이 마구잡이로 진압하면서 사건이 악화되었고, 저는 다른 교인들과 함께 체포되어 40일 동안 구금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수감 중에 면회 온 사람들로부터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영어의 몸이 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보에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죄도 없이 두 번이나 옥고를 치르셨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편이 저려 옵니다.

1962년 경기도 덕소에 덕소신앙촌이 건설되면서 저희 가족도 입주를 했습니다. 당시 제과 공장에서 생산하는 캐러멜이 큰 인기를 끌어 남자 소비조합원들의 자전거 부대가 바쁘게 다니며 캐러멜을 판매했습니다. 날로 늘어가는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질 못하여 일부 상점에는 캐러멜을 주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어떤 가게 주인은 “신앙촌 캐러멜이 없으면 손님이 가게에 오질 않아요.”라며 다른 상점에서 캐러멜을 사서라도 자신의 가게에 들여놓곤 했습니다. 하루는 자전거에 캐러멜을 가득 실은 소비조합들이 덕소신앙촌에서 나와 고갯길을 올라갈 때 마침 서울에 나가시던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전거로 고개를 올라가는 것이 힘들겠다고 하시며, 다음 날부터 고개 너머까지 차량으로 캐러멜을 실어다 주게 하셨습니다. 매일 아침 자전거에 캐러멜을 가득 싣고 신나게 달려가던 소비조합들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게 떠오릅니다.

덕소신앙촌에서 생산한 캐러멜이 큰 인기
남자 소비조합 자전거 부대가 바쁘게
다니며 캐러멜을 판매해도 공급이 딸려
그때 함께 달리던 소비조합 모습이 선해

1970년경에 기장신앙촌에 입주한 저는 염산가리 공장과 슈퍼마켓 등에서 근무하다가 다시 소비조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전거에 간장을 싣고 다니며 기장신앙촌 인근 지역에 판매했는데, 신앙촌 간장을 한번 맛본 사람들은 계속 신앙촌 간장만 찾아서 단골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좌천시장에 다녀오던 길이었습니다. 좌천교를 건넌 후 좌천 삼거리에서 기장 방향 도로를 가던 중에 큰 트럭이 저의 자전거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고 직후 저는 꼼짝도 할 수 없이 아파서 부축을 받아 겨우겨우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기장역 근처의 남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어 본 결과 갈비뼈가 아홉 대나 부러졌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남외과에서는 8주 동안 입원해야 된다고 했으나, 저는 차츰 통증이 가라앉는 것 같아서 일단 집으로 돌아와 생명물을 마셨더니 그때부터 통증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매일 생명물을 마셨으며 2주 후에 남외과에 다시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봤더니 의사는 뼈가 제대로 붙었다며 놀라워했습니다. 3주가 지나면서부터 예전과 다름없이 신앙촌 간장을 자전거에 싣고 다니며 판매할 수 있었고, 아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한 번도 후유증이 나타나거나 아픈 적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젊은이 못지않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판매부에서 신앙촌 내에 제품을 배달하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제 나이가 되면 집에서 쉬는 것이 보통인데 이렇게 건강을 허락해 주셔서 작은 일이나마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50여 년 전 하나님을 처음 뵈었을 때 죄와는 상관없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외치시던 음성이 지금도 제 가슴에 울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죄를 멀리하는 맑은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면서 하루하루 저의 생활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