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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받아 죄 씻어야 구원얻는다는 설교 듣고

박명식권사(1) / 대전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129

1937년 충남 대덕에서 태어난 저는 결혼 후 장로교인인 남편을 따라 장로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충북 옥천에 있는 군소 장로교회에서 전도사로 잠시 시무하는 동안에 저도 그 교회에 다니긴 했지만 제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의문들이 있었습니다. 부흥집회에서 통성기도 시간이 되면 어떤 사람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이상한 말을 하고, 어떤 이는 바닥에 쓰러져 사지를 허우적거리는데 집회장이 온통 아수라장 같았고, 그런 모습들이 제 눈에는 너무나 추하게 보였습니다. 저렇게 하는 것이 정말 은혜를 받는 것인지 그런 은혜라면 저는 받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또 교회에서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데 구원을 얻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항상 제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67년 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 저희 둘째 딸이 인천에 있는 아주버님 댁에서 몇 달간 있었는데 저는 그 딸을 데리고 오려고 아주버님 댁에 갔습니다. 당시 아주버님은 인천 도화동전도관의 전도사로 시무하면서 저와 남편을 전도하고 싶어하셨습니다. 제가 그 댁에 가니 아주버님이 하는 말씀이, 다음 날이 마침 덕소신앙촌 축복일이니 함께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장로교회에 다니면서 전도관에 절대 가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아주버님의 말씀을 거절하기도 어렵고 신앙촌이 어떤 곳인지 궁금한 생각도 들어 덕소신앙촌에 가게 되었습니다.

덕소신앙촌의 웅장한 교회 건물 안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예배실에 들어오지 못해 바깥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눈 안찰을 해 주신다기에 저도 눈 안찰을 받았더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좋은 느낌을 뭐라고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기쁨으로 충만해져서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기분이었습니다. 전도사인 아주버님의 안내를 받아 덕소신앙촌 곳곳을 둘러보았는데, 그 아름다운 풍경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푸르른 녹음에 둘러싸인 신앙촌, 풀잎 하나가 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리는 모습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고, 각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종업원들이 하나같이 예쁘고 깨끗하게 보여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덕소신앙촌에 다녀온 후로 왠지 모르게 전도관에 한번 가 보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었습니다. 당시 대전 선화동 저희 집 가까이에 대전전도관이 있어 오며 가며 대전전도관을 보았던 저는 어느 날 스스로 대전전도관을 찾아갔습니다. 찾아간 그때 마침 예배 시간이 되어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관장님의 설교 말씀이 저에게만 들려주는 말씀같이 귀에 쏙쏙 들어오며 그토록 감화를 줄 수가 없었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이 그저 믿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죄를 씻어야만 가능하다는 말씀을 들을 때, 저는 그동안 가졌던 의문이 풀리며 ‘여기가 참이다!’ 하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진짜를 알았으니 이제 다른 곳에 눈 돌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저는 그날 이후로 장로교회에 발길을 끊고 전도관에 다니며 새벽예배에도 빠짐없이 나갔습니다.

당시 저는 산후 신경통으로 손목과 무릎을 잘 쓰지 못해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잘 걸을 수도 없었습니다. 의사는 무거운 것을 들지 말고 평생 조심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고 했고 저 또한 완전히 낫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대전전도관에 다니고부터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생명물을 수건에 적셔서 손목에 찜질을 했습니다.

그렇게 생명물로 찜질을 한 지 이틀이 지났을 때 꿈에 하나님께서 제 손목을 안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꿈에서 깨자마자 머리에서 불덩이처럼 후끈후끈한 것이 내려오더니 아픈 손목과 무릎에 가서 그 불덩이가 더욱 뜨거워진 후 발끝으로 쑥 빠져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제단에 가서 새벽예배를 드릴 때는 앞쪽에서부터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좋은 향기가 바람처럼 불어왔습니다. 그 향기를 한껏 들이마셨더니 입 안 가득 달콤한 물이 고이는데 그 맛은 꼭 어렸을 적 따 먹었던 호박꽃의 꿀맛 같았습니다. 그 물을 삼키면 또 다시 입 안 가득 생겨나고 삼키면 또 생겨나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너무나 기쁘고 좋았습니다. 그렇게 머리부터 온몸이 뜨거워지고 향취가 맡아지는 것이 일주일 동안 계속되더니 손목과 무릎이 언제 아팠나 할 정도로 말끔히 나았습니다. 손목에 힘이 없어 밥공기 하나도 제대로 들지 못했던 제가 무거운 것을 들어도 전혀 이상이 없었고 몸이 둥실 떠오를 것처럼 가벼웠습니다.

은혜를 받고 나니 누가 전도를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사람이 두 명, 세 명만 모여 있으면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며 전도를 했습니다. 이웃집 사람들을 전도해 새벽예배에 같이 다닐 때는 마음이 그렇게 흐뭇하고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1971년경으로 기억되는데, 대전제단에 다니던 여자 집사님의 어린 아들이 숨을 거둔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황 권사님이라는 분과 함께 시신을 씻기려고 그 집에 갔더니, 백일이 갓 지난 아기는 숨을 거둔 지 3시간 정도 지나 뻣뻣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저와 황 권사님은 찬송을 부르며 생명물로 시신을 씻기기 시작했는데, 생명물이 닿는 곳마다 보들보들해지며 뽀얀 빛깔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씻기는 대로 노긋노긋하고 곱게 피어나니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볼은 연지를 찍어 놓은 것처럼 볼그스름한 핏기가 감돌며 꼭 살아 있는 아기가 쌔근쌔근 자는 것 같았습니다. 제단에 다니지 않았던 아이 아버지는 아이가 곱게 핀 모습을 보고 전도되어 대전제단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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