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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선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어

<신앙체험기 501회 홍제교회 선동순 권사>
발행일 발행호수 2631

소사신앙촌 오만제단 신축 부지에서 열린, 연인원 70만 명의 대 군중이 참석한 노구산집회.(1958.6.30.~7.5.) 이날을 기록한 신앙신보 장근수(張根洙) 취재기자는 “참석자들의 찬송은 드높았고, 얼굴엔 흐뭇한 은혜의 표정이 깊었다. 할렐루야 영광을 돌릴 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힘 있었고 우렁찼다. 새벽예배
가 오전 10시, 11시까지 계속되어도 지루함보다는 즐거움이, 그리고 아쉬움이 남았던 것이다. 정말 체험해 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슬성신의 은혜이다. 나는 취재기자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은혜에 젖어갔다”라고 기록했다.

(지난 호에 이어)

이후 소사신앙촌이 건설되고 노구산 집회가 열렸습니다. 1958년 6월 30일, 노구산 정상에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도 하나님 모습은 또렷이 보였고, 설교하시는 목소리도 아주 잘 들렸다는 것입니다. 또한 집회하는 동안 매우 많은 양의 비가 내렸는데,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계속되던 시기에 내린 단비여서 사람들이 무척이나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집회 이후 노구산에는 오만제단이 지어졌으며, 그즈음 저는 소사신앙촌에서 눈이나 배 안찰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처음 안찰을 받을 때는 하나님의 손이 살짝만 닿아도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안찰을 받고 조금 지나면 몸이 날아갈 듯이 가볍고, 마음이 너무나 기쁘고 즐거워져서 ‘은혜를 받으면 이렇게 기쁘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홍제동으로 이사를 했는데 아직 전도관이 지어지기 전이어서 임시로 저희 집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천장에서 비가 새서 남동생에게 지붕 수리를 부탁했는데, 지붕에 올라간 남동생이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남동생은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며 몹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남동생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저희 집에 오신 관장님께서는 택시를 불러 동생을 태우고 급히 덕소신앙촌으로 가셨습니다.

몇 시간 후 남동생이 집에 돌아왔는데 멀쩡하게 걸어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덕소신앙촌에 도착해 너무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을 바로 뵐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생의 다친 부위를 손으로 탁 쳐주셨는데, 처음에는 너무나 고통스럽더니 아픔이 점점 가시는 것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조심스럽게 일어나 움직여 보니 바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제 발로 걸어서 집에 왔다고 하였습니다. 이미 여러 번 목격하였지만 다시 봐도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남동생은 그 일로 전도되어 덕소신앙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홍제전도관에 다닐 때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청주에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이웃집 아저씨 한 분을 전도하였는데, 그분은 간암에 걸려 복수가 차오르고 몸이 계속해서 아픈 상황이었습니다. 관장님께서는 고통스러워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안타까우셨는지 하나님께 안찰을 받게 해야겠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뒤 우연히 이웃집 아저씨를 만났는데 복수가 차서 불룩했던 배가 사라지고 안색도 매우 좋아 보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저씨는 밝은 목소리로 이제 몸이 아프지 않다고 기뻐하며, 하나님께서 한 번 더 안찰 받으러 오라 하셨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몸이 다 나았다고 생각한 아저씨는 하나님께 안찰을 받으러 가지 않았고, 얼마 뒤 갑작스럽게 병세가 악화되어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웃집 아저씨의 부고 소식을 들은 홍제전도관 교인들은 생명물을 적신 수건으로 고인의 몸을 깨끗하게 닦고, 입에도 생명물을 넣어드렸는데 그렇게 환하게 잘 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고인을 모신 방 안에서 향취가 강하게 진동하여, 집 밖에서까지 향취를 맡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교인들은 몹시 감동하였고, 하나님께 깊이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사망 확인을 하러 온 의사가 방안에 들어와 아저씨의 얼굴을 손으로 잡고 이리저리 돌려보고 돌아갔는데, 의사가 손을 댄 부분이 새카맣게 되면서 시신이 뻣뻣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의사는 기성교회에서 장로로 활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놀란 교인들이 까매진 부위에 생명물을 바르고 계속해서 찬송을 부르자, 잠시 후 새까매졌던 얼굴이 다시 뽀얗게 피어나서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생명물의 권능은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다시 한번 체험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저로 인해 전도되셨는데, 처음에는 어머니가 교회 다니는 걸 반대하시던 아버지도 전보다 더욱 온유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변화한 어머니를 보시고는 “얘, 너도 믿으려면 네 어머니처럼 믿어라”라고 하실 정도로 성실하게 하나님 말씀을 따르며 신앙생활을 하신 분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 눈에 생명물을 넣어달라고 하신 뒤 주무시는 듯 편하게 생을 마감하셨는데, 입관 예배를 마친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도 편안하고 환해 보여서 저는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은혜로 지켜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1970년대 기장신앙촌이 건설된 후에도 하나님은 감람나무 가지들에게 계속해서 안찰을 해주셨는데, 지금까지도 제 가슴에 깊이 남은 일화가 있습니다. 기장신앙촌에서 하나님께 줄지어 안찰을 받고 있었는데, 저를 축복해 주시던 하나님께서 다정한 목소리로 “은혜를 좀 더 부어줄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죄송한 마음이 앞서서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네!”라고 대답하지 못한 것이 참 죄송스럽고 아쉽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은혜를 주시려던 하나님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 음성은 제 가슴에 깊이 새겨져 지금까지도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 뒤로도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며 2010년에는 꿈에 그리던 신앙촌상회도 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따로 신앙촌 양말을 판매하는 정도였는데 번듯한 매장을 열고 나니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품질 좋은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재미로 살던 저는 현재 일선에서 물러나 감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홍제교회 선동순 권사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아는 것이 별로 없었던 제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원효로 제단에 다닌 이후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귀한 성신의 은혜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 옳지 못한 생각과 마음을 분별할 수 있도록 양심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또한 합당하지 못한 곳에는 하나님의 신이 거할 수 없음을 보여주셨기에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도 정직하고 바르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곁에서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추악한 세상에서도 선한 마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바른 방향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 남은 시간 또한 하나님 앞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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