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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받으면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겨

임정애 권사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530

저는 열아홉 살이던 1956년, 마산에서 열린 하나님 집회에 처음 참석했습니다. 그때 다니던 문창 장로교회에서 ‘박태선 장로님 집회’에 참석하라는 광고를 듣고 식구들이 다 같이 갔습니다. 커다란 천막이 세워진 집회장에는 사람들이 터져 나갈 듯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참 손뼉을 치며 찬송할 때였습니다. 아주 좋은 향기가 ‘삭-’ 하며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서 다시 맡으려고 숨을 들이쉬었지만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잠시 후 또 향기가 스치기에 얼른 맡아 보려 했지만 역시나 사라져 버렸습니다. 주변에는 화장한 사람도 없고 향기 날 만한 것이 없는데 찬송을 부르다 보면 어느새 향기가 바람처럼 날아와 맡아졌습니다. 그 향기가 너무 좋아서 순간 지나갈 때마다 ‘또 맡아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산에서 열린 하나님 집회에 처음 참석하여 손뼉을 치며 찬송할 때
주변에 향기 날만 한 것이 없는데 어느새 좋은 향기가 바람처럼 날아와 맡아져
하나님께서 강대상을 치시자 뽀얀 것이 뭉게뭉게 퍼져나와 사람들에게로 내려

또 박 장로님께서 설교 말씀하시며 강대상을 “탁! 탁!” 치시자 뽀얀 것이 팍팍 퍼져 나와서 저게 뭔가 하며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뽀얀 것이 뭉게뭉게 퍼지더니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로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볐지만 분명히 단상에 계신 박 장로님의 모습이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뽀얗게 내렸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성신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안개와 같이 내리기도 하고 좋은 향기로 맡아진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며 ‘그럼 나도 성신을 받은 건가?’ 하며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마산 집회는 엿새 동안 열린다고 했는데 갈수록 사람이 몰려와 이틀이 연장됐습니다. 옆 사람과 어깨가 닿을 정도로 빽빽하게 앉아 있어도 불편한 줄 몰랐고 은혜가 내리는 집회장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니 저희 식구는 자리가 없어질까 봐 철야를 하며 잠깐씩 집에 다녀오곤 했습니다. 그 후 마산집회가 끝나고 공장 2층 건물에 ‘마산전도관’이 마련되면서 전도관에 다니게 됐습니다. 성가대도 하고 반사 활동도 하면서 참 재미있었습니다. 예배드릴 때마다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그 기쁨은 말로 할 수가 없었고, 은혜 받고 싶은 마음에 새벽예배를 드리러 일찍부터 달려갔습니다. 얼마 후 장군동에 넓은 터를 마련해 전도관 건물을 지을 때는 벽돌을 나르며 신나게 일을 도왔습니다.

그 후 스물두 살에 결혼해 시집살이를 하면서 전도관에 열심히 다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독실한 장로교 집안인 시댁에는 목사와 장로, 권사들이 많았습니다. 한집에 사는 시누이는 주장이 강해 어른들도 꼼짝 못할 정도였는데 특히 시누이가 줄기차게 전도관을 반대하며 장로교회에 나오라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신앙만큼은 굽힐 수 없어서 장로교회에 가지 않았고 한 번씩 기회 될 때마다 전도관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 신앙촌을 세우셔서 신앙촌에서 만든 물건이 시중에서 판매됐는데, 그 물건만 봐도 ‘언제나 전도관에 갈 수 있을까!’ 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후 시댁에서 분가해 서울 쌍문동에 살 때였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미아리 산언덕에 크고 높은 전도관 건물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다음 날이 일요일이라 찾아갔더니 예배실이 꽉 차게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늘 그리던 전도관에 들어가 기도드릴 때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오랫동안 떨어졌던 어머니를 다시 만난 것처럼 예배드리는 동안 마음이 포근하고 편안해졌습니다. 다음 날부터 저는 집과 가까운 쌍문동전도관에 나가 새벽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드릴 때마다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그 기쁨은 말할 수 없고
은혜를 받고 싶은 마음에 새벽예배
드리려고 일찍부터 달려나가

그 즈음 시누이가 서울로 올라와 같이 살게 되면서 시누이에게 전도관에 나가 보자 했습니다. 전도관을 반대했던 시누이는 귓등으로 흘려버렸지만 제가 “전도관에 나오면 하나님 은혜를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어요.” 하고 설득하자 차츰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때 시누이는 건강이 나빠져서 직장을 그만둬야 했는데 전도관에서 은혜를 받아 병이 나은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에 솔깃해진 것 같았습니다. 마침 하나님께서 서울 5중앙 전도관에 오셔서 예배를 인도하신다고 하여 시누이와 같이 갔습니다.

5중앙 전도관은 3층까지 사람들이 꽉 차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저는 시누이와 함께 2층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등단하시길 기다리며 기도드릴 때 갑자기 향취가 진동하는데 마치 향기 덩어리를 코에다 팍 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진한 향취에 깜짝 놀라 “어머나!” 하고 눈을 뜨니 하나님께서 단상에 올라오고 계셨습니다. 그때부터 예배드리는 내내 향취가 진동하며 온몸이 가볍고 시원해서 ‘귀한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며 감사드렸습니다.

그날 전도관에 다녀온 후 시누이에게 새벽예배를 드리러 가자 했더니 선뜻 따라나섰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제단에서 새벽예배를 드리고 생명물을 한 컵씩 마시면서 건강이 점점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시작했는데 바쁘게 다니며 부지런하고 활기차게 지냈습니다. 완고하고 자존심이 강한 성격도 몰라보게 부드러워져서 새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성경에 이슬 같은 은혜 내리는 분이
감람나무라 돼 있고 하나님께서
은혜 내리시는 것을 직접 체험했기에
믿고 따른다 하니 고개를 끄덕여

한번은 집안 행사로 시댁 식구가 모였을 때 시아주버니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시아주버니는 치과 의사이자 장로교회 장로였는데, 시누이가 전도관에 나가게 되니 전도관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 했습니다. 시아주버니가 “왜 박태선 장로님을 보고 감람나무라 하는가?” 하고 물어서 저는 전도관에서 배운 성경 구절을 이야기했습니다. 호세아서에 보면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리는 분이 감람나무라고 돼 있는데, 박 장로님께서 그 은혜를 내리시는 것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감람나무이신 것을 믿고 따른다 했습니다. 백만이 넘는 사람이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과 제가 직접 체험한 은혜를 이야기하자 시아주버니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 봤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시누이가 전도관에 다니며 밝게 생활하자 집안 반대가 많이 수그러져서 마음 편히 제단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저희 친정에서는 어머니와 막내 동생이 마산제단에 다녔습니다. 넷째 동생은 제단에 다니지 않았지만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전도관식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저는 연락을 늦게 받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넷째 동생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눈을 감으신 후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머리를 들면 허리까지 따라 들리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도관 교인들이 생명물로 시신을 씻기자 언제 굳었냐는 듯 온몸이 부드러워졌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몸을 다 씻기고 머리를 감길 때는 살아 계신 분처럼 앉혀 놓고 머리를 감겼다며 무척 놀라워했습니다. 어머니는 달게 주무시는 분처럼 양 볼에 발그스름한 홍조를 띠었고, 장례식에 왔던 친척들은 어머니가 생전보다 곱고 예쁘시다며 신기해했다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귀한 은혜를 주셨구나!’ 하며 마음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생명물로 시신을 씻기면 굳었던 몸이
부드러워지고 시커멓던 피부가 환해져
홍조를 띠고 주무시는 것 같은 고인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려

그 후 저는 1983년 무렵 다시 마산에 내려와 마산제단에 다니게 됐습니다. 당시는 매주 축복일이 있어서 한 달에 네 번씩 신앙촌에 갔는데 축복일예배를 드릴 때마다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또 마산제단에 다녔던 교인들이 신앙촌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귀한 곳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마음으로 신앙촌을 그리며 지내다가 1992년 신앙촌 양말공장에서 일할 기회가 되어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10년 넘게 근무하면서 힘을 다해 일하는 것이 참 즐겁고 보람되었습니다.

2003년부터는 장례반으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생명물로 시신을 씻기면 굳었던 몸이 차츰차츰 부드러워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고, 시커멓던 피부색이 점점 뽀얗고 환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생명물로 씻기고 나자 고인의 얼굴이 아기 피부처럼 곱고 환하게 핀 데다 수건으로 닦아 줘도 이슬방울이 유난히 계속 맺혀서 신기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입관을 마친 후 발그스름하게 홍조를 띠고 주무시는 것처럼 편안한 고인을 볼 때마다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장례반에서 7년 정도 일했던 저는 은퇴해 편안히 지내고 있습니다. 매일 잠자리에 들 때면 ‘귀한 곳에 불러서 보살펴 주시는구나!’ 하며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은혜를 받으면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지며 말씀대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 은혜를 마음에 간직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복되고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귀한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루하루 죄를 멀리하며 맑게 살기 위해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임정애 권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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