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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드릴 때마다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느껴

김옥분 승사(1) / 소사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158

저는 1930년 강원도 철원군에서 6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화목하게 살던 저희 가족은 6·25 전쟁을 겪으며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이남으로 내려온 저는 결혼 후 전주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지어서는 안 되고 많은 사람이 쉽게하는
행동이라도 그것이 죄라면 절대 행하지 않아야 한다`
그 말씀이 귀에 쏙 들어와 그 말씀대로 살고 싶어져

1957년 10월, 저는 이웃집 오 권사님의 권유를 받아 전주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전주전도관은 큰 공장 건물을 예배실로 꾸민 곳이었는데, 제가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박태선 장로님께서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예배가 있기 며칠 전부터 교인들은 청소를 하고 여러 가지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박태선 장로님은 서울 남산 집회며 한강 모래사장 집회같이 큰 집회를 많이 여신 분이라고 했는데, 저는 ‘그렇게 유명하신 분은 어떤 분일까?’ 하고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오시는 날, 전주제단은 사람들로 가득 차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저는 맨 앞자리에서 기도드리다가 어느 순간 눈을 떠 보니 박 장로님께서 단상에 나오셔서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진심을 다해 기도하시는 그 모습이 보통 사람과는 달라 보였고,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신 차림이 무척이나 깨끗하고 단정하셨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하는 찬송을 힘 있게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잘 모르는 찬송가였지만 따라 부르는 동안 그 내용이 마음에 와 닿으면서 참 좋았습니다. 박 장로님은 예배실에 빼곡히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다니시며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키가 크신 분이 가볍고 빠르게 움직이시며 한 사람도 빼 놓지 않고 다 안수하시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주제단에 계속 다니면서 저는 설교 시간에 듣는 말씀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지어서는 안 되며,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하는 행동이라도 그것이 죄라면 절대 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이 제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그 말씀대로 정말 작은 죄라도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제단에서 예배드릴 때마다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여기는 진짜 좋은 곳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형편이 어려웠던 저는 집도 없이 아는 사람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나라 전체가 가난에 허덕이던 그 시절, 저는 바느질을 해서 겨우 연명하며 앞으로 살아갈 것이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 마음은 점점 춥고 어두워졌고, 따뜻한 고향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내던 때가 사무치게 그리웠습니다.
그러던 제가 전주제단에 다니면서 의지할 곳을 찾은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면 하나님이 내 옆에 계셔서 포근하고 아늑하게 보호해 주시는 느낌이 제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계신다는 생각이 들면서 춥고 어둡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렇게 기쁘고 평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저의 처지를 염려하며 도와주려고 애쓰는 전주제단 교인들을 만날 때면 고향을 다시 찾은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 즈음 네 살이던 아들 경섭이가 백일해에 걸려 기침이 그치지 않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습니다. 기침 때문에 목이 아팠던지 경섭이는 자기 목을 가리키면서 “여기 아파. 여기 아파.”라고 했습니다. 병원에 갈 형편이 안 되어 걱정하고 있을 때, 관장님이 경섭이에게 생명물을 먹이고 예배를 드리자고 하셨습니다. 관장님과 권사님 몇 분이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경섭이 옆에 생명물을 한 컵 놓아두었더니, 찬송을 부르는 중에 경섭이가 컵에 있는 생명물을 다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목을 가리키면서 “여기 안 아파. 안 아파.”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경섭이는 이내 기침을 멈추고 가쁘던 숨도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백일해가 깨끗이 낫게 되었습니다.
그해 11월, 소사신앙촌이 건설되어 여러 가지 제품이 나오면서,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이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소비조합들이 성심껏 사람들을 대하며 부지런하게 사는 모습이 참 좋아 보여서 ‘나도 언젠가는 소비조합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 후 전주제단에 다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노송동에 대지를 마련해 제단 건물을 신축하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이 터를 닦고 모래 나르는 일을 할 때 저도 공사 현장에 나가 작은 힘이나마 도왔습니다. 완공된 전주제단은 시내에서 그만 한 건물을 찾기 어려울 만큼 웅장한 규모였고,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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