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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6) 용산 군인교회 집회

군인교회에서 열렸던 '국군장병 심령부흥대회'
발행일 발행호수 2145

①윤재춘전직관장(왼쪽)이 청년들과 함께 용산 군인교회 집회가 열렸던 광장 자리를 찾았다. 오른쪽 뒤에 보이는 건물이 국군중앙교회이고 그때의 광장 자리에는 국방부가 들어서 있다 ②용산 군인교회 집회광경 ③1955년 6월 2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광고

“아~아~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6·25의 노래 시작부이다. 1950년에 발발하여 남북한 인구 600만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남기고 전국토의 80%이상을 파괴하였던 6·25 전쟁은 발발 3년 뒤인 1953년 7월에 휴전이 되어 지금에까지 이르고있다.1955년 6월은 6·25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때이다. 1955년 6월 25일에는 6·25 발발 다섯돌을 맞아 국민대회가 폭우를 무릎쓰고 진행되었다고 당시 일간지들은 보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1955년 6월 9일부터 16일까지 대구집회를 마치고 일주일 뒤인 6월 23일부터 30일까지 용산 군인교회에서 집회를 가지셨다. 신문에 나간 ‘국군 장병 심령 대부흥회’란 광고나 ‘하나님 편의 백만 정의군은 천만 불의병을 격멸한다’란 문구나 6월 25일이 포함된 집회 기간이나, 여섯번째 집회인 용산 군인교회 집회는 전쟁으로 인해 지친 이나라 이민족, 특히 국군장병들을 위한 집회이기도 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지금까지 육군본부 집회라고도 하였고, 군인교회 집회라고도 하여 군인교회가 육군본부 내에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6월 24일 그 자리를 찾아갔다. 50년전 그 자리를 찾아가보니 50년전에는 3층이었다는 용산우체국이 이제는 5층 건물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우체국 왼쪽 길로 들어가니 막다른 길 끝에는 군인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 오른쪽 언덕배기에 위치한 군인교회는 그 자리에서 몇차례에 걸친 증축을 하였는지 부속건물들이 많이 들어섰고, 집회가 열렸던 교회 옆 광장엔 국방부가 들어서 군인교회 앞으로 후문이 나있었다. 아까 군인이 지키던 문이 바로 국방부 후문이다. 용산 군인교회는 그 자리에 국군중앙교회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군인교회 집회이기는 하나 군인만 대상으로 한 집회는 아니었을 것이다. 광고에도 보이지만 ‘민간인 참석도 환영’한다는 문구는 누구에게라도 열린 집회였을 것이다.
군인교회 집회 첫날인 23일 저녁집회부터 참가를 하며 많은 은혜를 받고 집회 기간 내내 참석을 했다는 정봉학승사(79. 기장신앙촌)는 집회장에서 손원일 국방장관의 부인인 홍은혜여사가 나와서 독창을 하고, 윤치영 장관이 나와 간증을 하는 것을 보고 “저런 분들이 나와서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무언가 있긴 있는가보다.”하는 맘이 들면서 더욱 마음이 열렸다고 했다.
새벽집회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면 단에 서신 하나님께서 간단한 말씀을 하시고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일일히 안수를 하시고 다시 단에 서신 후에 본격적인 집회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집회로 치면 둘째날이죠. 처음 안수를 받고나니 온 몸에 전기가 오듯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단에 서신 후에 하시는 말씀이 ‘가지 각색으로 은혜를 체험했을 것입니다. 전기가 오듯 한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하시자 이건 내 이야기다 싶어서 손을 번쩍 들었어요. 안수를 받고나니 한없이 눈물이 흐르면서 회개가 되는데 군복을 입은 한 여자군인이 또 그렇게 우는 것을 보았어요.”라고 했다.
정승사가 50년 전에 보았던 그 여군은 바로 김경숙(73)퇴임관장이었다. 김관장은 당시 육군본부 정훈감실에 근무하는 현역 소위였는데 하나님의 집회를 알리는 포스터를 직접 그리고 곳곳에 내다 붙였다. 그리고 집회 내내 참석하며 많은 은혜를 받았다.
“제가 정훈장교 3기 출신입니다. 당시 임관하면 중위계급을 준다고 해서 지원했었죠. 그 때 집회에서 비를 맞아 다 젖었는데도 안수를 받고 나니 몸이 불덩이 같이 뜨거웠던 기억과 향취가 진동을 하고, 입안이 시원해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몸이 나르는 것 같이 기쁨이 넘치는 시간이었었죠. 그 때에 군인들도 신앙에 열심쟁이들이 많았어요.” 라며 은혜를 한없이 부어주시니 꼬박 밤을 새우며 철야를 했어도 피곤함을 몰랐다고 했다.

전쟁에 상처받은 민족과 국군 장병들을 위해
6.25 5주년에 열려 하늘의 은혜와 위로를 주셨던 집회
단상에만 천막을 치는 등 다른 집회때와는 다른 특징
바로 그 포스터를 보고 집회에 찾아간 이가 윤재춘(72)전직관장이다. “그 때 우리 집이 한강로 2가에 있어서 군인교회하고는 불과 2~300m 거리였어요.” 1년 반 전부터 시작된 축농증으로 심하게 고생을 하고 있던 차였다. “감기로 시작한 콧병은 시간이 갈수록 축농증으로 화해 고질병이 되었어요. 코에서 악취가 나고 코가 막혀 숨을 쉴 수도 없고 숨도 입으로 쉬지 않으면 안되었어요. 두통으로 인해 머리는 항상 무거웠고 정신은 희미하여 기억력이 떨어지고 심하면 눈과 코로 고름이 나왔어요. 병원은 물론 한의원에 가서 침도 수없이 맞아보았지만 날이 갈수록 병은 더 심해지고만 있었어요.”
꿈 많던 대학생 윤재춘 전직관장은  ‘이건 나의 병을 고치려고 오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집회에 참석한지 3일째 되던 날 하나님께 안수를 받고 1년 반이나 고생하던 축농증을 깨끗이 고쳤다. “막혔던 코가 열리고 코로 숨을 쉴 수 있으니 얼마나 기뻤던지,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증거하기에 바빴어요.” 그리고는 군인교회 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다.
용산 군인교회 집회는 전체 천막을 치지 않고 단상에만 천막을 쳤다는 것과 새벽과 저녁집회만 했다는 것 등 1955년도의 다른 천막집회와는 다른 몇가지 특이점이 있었다. 다른 집회는 하루 종일 그 장소에서 찬송을 하며 계속되었는데 이곳에서도 그렇기는 했지만 그것은 전체적이지 않고 소수였다고 했다.
송혜영기자news-song@theweek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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