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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13) 광주공원집회

광주공원집회(1955.11.25~12.1)
발행일 발행호수 2162

광주공원집회(1955. 11. 25.~12. 1.)에 관해서는 원주집회와는 달리 참석자들도 많이 생존해 있었고, 다양한 내용의 체험기도 비교적 많이 남아있었다. 또 당시 신앙신보 지면의 1/2이 광주공원집회에 관한 보도를 하고 있어 남아있는 기록도 적은 분량이 아니다.

1955년 12월 19일자 신앙신보에는 “광주의 불”이란 제목으로 당시 집회 기사와 함께 사진 6컷이 실려있다. 단상에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2컷, 광주집회장 입구 모습, 집회장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 2컷, 그리고 ‘받은바 큰 은혜를 간증하는 윤치영선생’이란 사진 설명과 단상 위에 선 윤치영 선생의 사진 1컷이 실려있다.

기사에서도 보이지만 각계각층의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었다. 그리고 크나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다.

집회가 열렸던 장소인 광주공원은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의 신사가 있던 곳으로 집회 당시에는 아무런 건물이 없던 말그대로 광장이었는데, 1971년 시민회관이 들어섰다. 지금 시민회관이 있는 자리가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신 단상이 있던 방향이라고 참석자들은 증언을 해주었다. 광주시 남구 구동에 있으며,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천부교 광주 서동교회가 있다.

당시의 신앙신보 기사를 일부 인용하여 본다. “박태선 장로 호남에/ 소돔 같은 도시가 회개하다”란 제목의 기사에는 “광주는 남한의 유수의 교육도시이며 더욱이 상무대가 있는 곳으로 그곳 수많은 군인과의 접촉에 있어서 생겨지는 부도덕한 상태 등을 살필지라도 분명히 성령의 불길로 정화되어야 할 도시이다. 또한 그곳은 남한 보수진영 교회가 왕성한 곳이며 호남지방의 외국선교본부가 되기도 하는 곳이다.”라며 광주야말로 하나님의 집회가 절실히 요구되는 곳이었다고 적고있다.

신앙신보는 집회 첫날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25일 저녁 7시 수만명이 자리 잡을 수 있는 대천막 안에 광주시민은 만 여명이 참석하였다. 첫날 집회에는 이 화제의 인물인 박장로를 반신반의하며 모여든 교역자도 많았다.”

지방법원장, 경찰국장 등 기관장들 대거 참석
수많은 목사들도 반신반의하며 모여들고
광주숭일고교는 수업을 폐하고 전교생이 참석
철야기도를 하는 사람은 2만 명을 헤아려

바로 이부분에서 오성민전임관장(77.기장신앙촌)의 체험기는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목사가 되려는 저는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영산포 장로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할 때였습니다. ‘불의 사자 박태선장로 부흥집회’란 벽보를 보고 당회장인 강희석목사에게 보고를 하고 교인 감시차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집회장을 찾은 오성민 관장은 대형 천막을 쳐놓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마니에 앉아 손뼉을 치며 찬송을 하는 모습이 못마땅했으나 교인을 감시하기 위해 참고 앉아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단상에 서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향취를 맡고는 저절로 찬송이 나오고 손뼉이 쳐져 돌아오면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받은 바 은혜가 확실하고 말씀이 정확하므로 목사가 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집회에 계속 참여하며 철야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지병이던 코피를 쏟는 병도 완쾌가 되었음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또 신앙신보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있다. “광주 교역자들 철야/ 전무(前無)한 영력(靈力)에 다만 묵묵” 이 기사에 보면 “전남 노회장인 김재석 목사가 박장로에게 안찰을 받고 그 집회를 도우며 위하여 기도하였다.”고 적고 있다.

또한 “뜨거운 불의 감동/ 지방 장관부터 서민까지”라는 기사에는 철야기도를 하는 수가 1만명을 넘어 2만명을 헤아린다고 쓰고 있는데 “이러한 일은 세계의 부흥 역사에도 없는 일이다. 군중은 천막 밖에서 들어오지 못할 만큼 입추의 여지도 없이 꽉 차 있었고 또한 이 광주 집회에서의 놀라운 역사는 광주의 각 기관장의 심령을 사로 잡은 것이다.”

‘뜨거운 불의 감동, 지방장관부터 서민들까지’ 열렬한 호응
‘전무후무한 영력을 보고 목사들은 다만 묵묵할 뿐’

광주지방법원장, 전남경찰국장(지금은 경찰청장), 광주경찰서장 등이 참석했고, 광주숭일고등학교는 학교 전체가 수업을 폐지하고 집회에 참석을 했다고 적고 있다. 당시 광주숭일고등학교에는 앞의 기사에 언급된 김재석목사가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또한 김영예승사(77.부평교회)에 의하면 “집회 이틀째인 토요일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요일 예배를, 광주에 사는 교인들은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드리고 다른 지역에서 온 교인들은 지금 이 공원에서 드리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각 교회 목사들이 서로 하나님을 모셔가려고 했는데 결국 중앙교회 목사가 모셔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중앙교회는 정규오목사가 시무하고 있었는데 정목사는 광주 공원집회시에 하나님을 증거하였고, 김현준목사는 찬송인도를 했으며, 윤치영의원은 받은 바 은혜를 증거했었다.

“제가 그 때 중앙교회를 다녔으니까 정규오목사를 알지요. 천막집회 때 앞에 나와서 하나님께서 단상을 치시면 불이 나온다고 얼마나 간증을 했는데요.” 광주 시내 전역에 붙었던 벽보를 보고 광주공원집회에 참석했다는 송용자권사(73.광주서동교회)의 말이다.

또 그 당시 어머니와 함께 집회에 참석했다는 두 자매 노형옥권사(68.광주학동교회)와 노형심권사(66.광주학동교회)는 “그 때 윤치영씨가 나와서 부인이 배에 혹이 있었는데 하나님께 안찰받고 그 자리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간증을 했어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자리 뺏길가봐 교대로 자리를 지키면서 집회 기간 내내 참석했지요.”

한보금권사(83.기장신앙촌)는 중앙교회에 다니던 중 예배시간에 목사가 “광주공원에서 천막집회가 열리는데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유명한 부흥강사님이 오시니까, 우리 다 같이 가서 은혜 받읍시다.”하는 광고를 듣고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배시간마다 생전 처음 맡는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을 했고 또 어느 날에는 천막 안에 갑자기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비가 온다고 생각한 저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그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는데 밖에는 햇빛이 내리비치고 있었습니다. 빗방울은 계속 떨어지는데 옷도 머리도 전혀 젖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신기하여 혼잣말로 ‘비가 오는 줄 알았더니 비가 안오네’하고 중얼거렸더니, 옆에 사람이 제 얘기를 듣고 ‘그게 은혜야’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권사는 집회에서 여러 가지 은혜 체험을 한 후 세상사에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따라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광주공원집회에서 은혜를 체험한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어지는 순천집회, 목포집회에도 참석하게된다.
송혜영기자news-song@theweek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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