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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사제단의 위선

박효종 / 서울대 윤리학과 초빙교수
발행일 발행호수 2447

요즈음 천주교의 일부 성직자들의 행태를 보면서 떠오르는 화두가 있다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바치고 신의 것은 신에게 바치라”는 바이블의 구절이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유데아 지역이 로마에 의해 정복되어 통치를 받고 있을 때 유대 민족주의자들은 이민족의 통치에 분개했고 어떻게 하면 그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하며 절치부심하고 있었다.

당연히 로마에 세금을 내는 문제는 격렬한 쟁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치는 정치인에게 사제들은 사제의 일을 하면 된다.

한때 성직자의 ‘로만 칼라’가 판사의 법복보다 엄숙하고 품위있게 보이던 시대가 있었다. 그때는 경찰도, 검찰도, 법원도, 언론도 못 믿는 시대였다. 그 만큼 불신과 불의가 판을 치던 시대였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어 제 궤도에 올라선 지금은 아니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교체가 된 것만 해도 두 번이다. 여당에서 여당으로 정권이 넘어간 것이 아니라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이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넘어갔다고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가를 보여준 것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도 대한민국을 몇 년째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 즉 “풀 테모크라시(full democracy)”로 분류해놓았다.

그런데 왜 천주교의 정의구현사제단만은 세상을 거꾸로 읽고 있는 것인가. 성직자의 ‘로만 칼라’에서 엄숙함이나 비장함보다 경박함이나 얄팍함이 묻어나오는 것은 비극이다. 지금 사제단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사명감이 아니라 건전한 상식이다.

진실과 허위가 무엇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눈이다. 신자들에게 진실을 받아들이고 진실에 순종하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진실이 불편하다고 하여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왜 KAL기 폭파가 북한에 의해 자행된 것을 인정치 않고 있으며, 진짜 김현희를 가짜 김현희라고 고집하고 있는 것인가. 또 왜 대통령선거는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가.

인터넷시대에 살면서 전자개표를 믿지 못하면,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사제단 스스로의 손으로 개표를 해야 비로소 믿겠다는 것인가. 또 NLL을 지키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의 숭고한 도리임을 왜 깨닫지 못하는가.

도대체 자유와 평등의 나라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인가. 또 세계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위하여 왜 말 한마디 못하는가.

이 땅의 돌과 풀들조차 들고 일어나 큰 소리로 증언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정의구현사제단의 행태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비열한 위선이다.

비둘기의 순진함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뱀의 약삭빠름만 보인다는 것, 이 어찌 사제단의 비극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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