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다수결의 원칙
최창렬 / 용인대학교 정치학 교수현대정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정치형태는 대의민주주의이다. 그러나 간접민주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는 대의민주주의가 민의(民意)와 거리가 먼 정책을 결정하거나,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중우(衆愚)정치로 흐르는 경향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참여민주주의나 심의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시민사회단체의 연대가 활성화 되고, 시민들의 정치참여가 증대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진전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대정치의 주된 형태는 간접민주주의일 수 밖에 없다. 최선과 차선은 못되지만 가장 나쁜 제도는 면한 차악(次惡)이 대의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다수결의 원칙이다. 의회에서 여야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이나 정책적으로 계층의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법안에 대해 극단적인 대립을 보일 때 결국은 표결을 통한 결정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여야가 부단한 타협과 조정을 통해 절충하고 양보함으로써 합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정치(real politik)와 권력정치(power politics)에서 여야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것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극단적으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 할 경우에 물리적 충돌이나 장외투쟁으로 정치가 실종되고 민주주의의 정신이 마비되는 것이 다반사인 경우가 한국정치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다수가 인내를 가지고 소수와 반대세력을 설득해 내고 포용함으로써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가능의 예술인 정치의 본령이다. 그러나 반대세력이 타협과 절충을 외면하고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면 의회내에서의 의사결정은 다수결에 의한 표결로 갈 수 밖에 없다. 모든 사안의 결정에 여야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면 현대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선거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다수결이라는 게임의 룰을 따르고 이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를 다음 선거에서 받는 것이 민주주의의 메카니즘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야의 대립과 갈등은 급기야 불법, 폭력이 얼룩진 난장판 국회로 국민의 지탄과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당은 논의조차 거부하는 야당을 반의회주의라고 비판하고, 야당은 여야의 합의를 거치지 않고 속도전으로 밀어붙인다고 여당을 비난한다. 이렇게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서는 표결을 거쳐 의사를 결정해야 하며, 결과에 대해서는 승복하는 것이 사회정치적으로 합의한 약속이다. 직접민주주의의 요소가 도입되고 국민의 참여가 획기적으로 증진된다 해도 의회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결만을 믿고 다수의 횡포가 용인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소수의 존재를 인정하며 받아들이고, 소수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토론과 타협에 임하되,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땐 다수결에 동의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인 다수결을 부정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