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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부인해도 부인할 수 없는 은혜를 나는 받았기에

김병희권사(2) / 덕소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154

<지난 호에 이어서>

이웃 한영순 권사님 집에 하나님께서 심방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장사도 나가지 않고 가 보니, 벌써 사람들이 집 입구까지 꽉 차서 들어가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집 안에 있던 몇 사람에게만 안수를 해 주시고 가셨는데, 저는 안찰을 못 받은 것이 너무나 아쉬워 집에 와서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하나님께서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배 속에 병이 있습니다. 한 권사님 집에 오셨을 때 안찰을 받으려고 했는데, 받지 못해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하고 말씀을 드리니, 하나님께서 제 배를 안찰해 주셨는데, 배 속에 있는 덩어리가 조각조각 떼어지는 것같이 너무나 아픈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잠을 깨 보니 배가 시원하면서도 화끈화끈하고 몸이 날아갈 듯 가뿐하였습니다. 저는 너무나 감사해서 그 자리에 엎드려 한참을 울었습니다.

안찰 못받은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 했는데
그날 밤 꿈에 오신 하나님께 안찰을 받아
꿈 중에도 몹시 아파 깨어보니 몸은 날아갈 듯 가벼워

다음 날 장사를 다니는데, 만나는 아주머니들이 저를 보고 “이렇게 추운 날 장사를 나왔네.”, “어떻게 추운 기색이 하나도 없어?” 하고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저는 꿈에 안찰받은 얘기를 들려주며 몸이 계속 후끈거려 춥지도 않고 날아갈 것같이 가볍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후로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해 오던 화병 증세가 말끔히 나았습니다.
안찰을 받은 후 제 마음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 전 제 스웨터를 짜 주겠다고 실을 가져가서 계속 소식도 없이 얼굴도 안 비치는 이웃 사람이 있었는데, 저는 그 사람이 괘씸해 한번 만나면 큰소리를 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꿈에 안찰을 받은 후로는 그 사람을 만나도 언제 미워했었나 싶을 정도로 마음속이 편안하고 기쁘기만 하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기쁜 마음과 가벼운 몸으로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세 살 난 막내딸이 백일기침으로 고생을 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전에 아들아이가 백일기침을 앓다 죽었기 때문에, 저는 막내딸마저 잃는 것이 아닌가 겁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막내의 기침이 점점 심해지던 어느 날, 이만제단 예배를 마친 후 안수받을 기회가 생겨 막내가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소사신앙촌 하나님 댁에서 한 번 더 안수를 받은 후 아이는 언제 아팠었냐는 듯 기침이 가라앉고 백일기침이 완전히 나았습니다. 그 시절은 변변한 약도 없고 병원에 가도 치료가 잘되지 않아 아이들을 키우기 참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전도관에 다니면서부터 아이들이 아플 때면 하나님 은혜로 거뜬히 나았기에, 저는 늘 든든한 마음으로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습니다.
1958년 저희 가족은 소사신앙촌에 입주를 하였습니다. 소사신앙촌에서 큰딸은 시온중학교에 들어가고, 아들은 시온초등학교에, 딸 둘은 시온유치원에 다니며 모두 신앙촌 안에서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포목 장사를 그만두고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은혜가 담긴 물건을 전한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생활하면서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이 되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워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옥중에서도 교인들을 염려하셔서 영적으로 축복해 줄 테니 자기 전 머리맡에 물 두 그릇을 떠 놓고 그중 한 그릇에는 수건을 담가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물 한 그릇은 생명물로 마시고 수건을 담가 놓은 생명물로는 생수 마찰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고 장사를 나가면 배 속까지 시원하면서 하루 종일 든든하고 몸이 훨훨 날 것같이 가벼웠습니다.
그 후 1962년 7월부터 덕소신앙촌 건설을 시작하셨습니다. 저희 가족은 메리야스 공장과 1아파트만 지어졌을 무렵 일찍 덕소신앙촌에 입주했는데,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소비조합을 했던 신숙녀 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보았습니다. 고인은 폐병을 앓다 가서인지 모습이 좋지 않았고, 피부색은 어둡고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모이자 힘차게 찬송을 부르면서 장례반 권사님이 시신을 생명물로 씻겼는데, 굳어 있던 온몸이 점점 노긋노긋 부드러워지면서 어둡던 피부색도 뽀얗게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몸이 자유롭게 움직여지니 수의도 수월하게 입히고 살아 있을 때보다 더 고운 모습으로 입관을 하였습니다. 이후 몇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 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덕소신앙촌에서도 소비조합 활동을 계속했는데, 제품 품질이 월등해 가져가는 대로 팔리곤 했습니다. 특히 엑슬란 속치마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고객들이 주문한 대로 물건을 다 사지 못해 공장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기다린 적도 있었습니다. 한 보따리씩 이고 나가도 물건이 금방 동날 정도로 잘 팔렸습니다. 당시 남편은 믿는 것을 반대는 안 했지만 덕소에 입주하지 않고 영등포에서 작은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생활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이렇게 소비조합을 하면서 남편의 도움 없이도 딸 셋, 아들 하나 4남매 모두 대학 공부까지 시킬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남편도 신앙촌에 들어와 믿음의 길을 걷다가 1982년경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곱게 피어서 갔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연히 떠오르는 것은 저희에게 은혜를 주시던 하나님의 모습과 은혜 받던 때의 일들입니다. 이만제단에서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설교 말씀을 하시던 하나님. 다친 몸을 안찰해 주실 때 “믿고 나가세요.” 하며 힘 있게 말씀해 주시던 모습. 세상 어느 누가 부인한다 해도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은혜를 받았기에 지금도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한없는 은혜 가운데 이 길을 따라오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항상 붙잡아 주시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저의 자녀들도 하나님 은혜 가운데 늘 살기를 바라며, 제게 남은 시간 동안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서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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