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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기쁨과 견줄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을 내려주셔”

발행일 발행호수 2620

<494회> 박창성 권사/청주교회

1938년 충북 보은 산외면 원평리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저는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집 바로 옆에는 장로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흘러나오는 찬송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던지 교회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엄격한 불교 집안인 저희 집에서 제가 교회 다니는 것을 허락해줄 리가 만무했기에, 가끔 부모님의 눈을 피해 친구들과 몰래 교회에 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자유롭게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은 17살에 독립하여 청주에 취직한 이후부터였습니다.

청주 제일미용실에서 일하게 된 저는 미용실과 가까운 중앙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1955년의 어느 날은 미용실 원장님이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유명한 분이 인도하는 집회에 가자고 하시길래 흔쾌히 따라나섰습니다. 원장님과 함께 간 곳은 청주의 한 목화공장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대규모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이 별로 없다 보니 천막을 치거나 공장을 빌려 집회를 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집회장 안에는 많은 인파가 가마니를 깔고 앉아 있었고, 콩나물시루같이 빽빽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앉아있으니 잠시 후 박태선 장로님이 단상에 오르셔서 찬송을 인도하셨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찬송가 ‘나의 기쁨, 나의 소망’을 부르시는데, 맑고 힘찬 그분의 음성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서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찬송을 따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찬송을 부르던 도중 어디선가 좋은 향기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그 향기는 박하 냄새와도 비슷했지만 그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조금 지나자 이번에는 꿀처럼 단물이 목으로 넘어가면서 마음에 기쁨이 점점 차올랐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뻐서 더욱 힘차게 박수를 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더욱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분명 길을 걷고 있는데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 없고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몸의 무게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서 집에 훌훌 날아온 기분이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나’ 신기해하면서도 그것이 은혜인 줄 모르고 마냥 기뻐하기만 했습니다.

그 뒤 저는 1956년 4월 23일에는 대전집회에도 참석하였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집회가 끝난 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안수를 해주셨는데, 그 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시며 양쪽으로 머리를 짚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안수를 받고 집으로 가는 길에 청주 목화공장에서 진동했던 향취가 다시 맡아졌습니다. 신기하게도 걸음을 멈추면 향취는 사라졌고, 다시 몇 발자국 걸으면 코끝에 향취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목화공장에서 그랬던것처럼 향취를 맡으면 몸이 날아갈 듯 개운하고 기쁨이 샘솟았습니다. 나중에 예배시간에 들은 말씀이 은혜를 받으면 향취가 맡아지고 마음의 기쁨이 넘친다고 해 제가 받은 것이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도 은혜를 주셨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저를 포함해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더 이상 다른 교회에는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받아 본 적 없는 은혜를 내려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혜받은 사람들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고, 힘을 모아 전도관도 신축하였습니다. 특히 박 장로님께서 집회를 열어주셨던 청주 외덕교회 여청들이 전도관을 건축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흙과 모래를 나르며 지은 전도관은 지역명을 따서 청주 수동전도관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 후에 많은 사람들이 전도되어 주일마다 힘찬 찬송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 후 소사신앙촌이 건설되면서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시골에서 초가집만 보고 살던 제 눈에는 딴 세상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당시 소사신앙촌에서는 캐러멜, 카스텔라, 속치마, 엑스란 치마, 내복 등 다양한 제품이 생산돼 큰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훌륭한 제품들을 보니 신앙촌 소비조합을 하면 참 즐겁고 보람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용실을 그만두고 소비조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판매에 서툴렀던 초보 소비조합이었지만 품질이 뛰어난 신앙촌 제품들을 가지고 나가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고급 품목이었던 밍크 담요는 사람들이 계를 조직해서 살 정도여서 고객들을 만나며 제품을 설명하고 판매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청주 목화 공장에서 열린 하나님 집회에 참석했을 때 어디선가 박하향이 진하게 맡아지고 마음에 기쁨이 샘솟아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온몸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아
입관예배 때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을 보고 천부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감탄해

어느 날은 매일 보던 이웃집 아주머니가 며칠 동안 통 보이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촌 제품을 좋아하셔서 자주 구입해가시던 분이었는데 계속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 되어 집으로 찾아가 보았습니다. 문을 두드리자 핼쑥한 얼굴로 아주머니가 나오셨습니다. 아주머니는 심한 몸살에 걸려 도통 밖에 나가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안타까운 마음에 가지고 있던 신앙촌 캐러멜을 드리며 끓여서 드셔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일을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이웃집 아주머니가 저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나가보니 어제와 달리 안색이 맑고 눈빛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아주머니는 제 말대로 신앙촌 캐러멜을 끓여서 마시니까 몸이 싹 나았다며, 어떻게 그렇게 신기한 일이 다 있냐며 기뻐했습니다.

1975년 7월에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이마를 어딘가에 부딪쳐서 혹이 크게 나 있었고, 얼굴에 검버섯도 많으셨습니다. 수동전도관의 장례반 권사님들이 수저로 생명물을 떠서 시어머니 입에 넣어드렸는데 목으로 술술 잘 넘어갔습니다. 또 생명물을 묻힌 수건으로 얼굴부터 몸 전체를 깨끗이 닦아드리자 시어머니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습니다. 이마에 있던 혹과 얼굴의 검버섯도 간데없이 사라지고 피부도 뽀얗게 피어나 생전보다 더욱 예뻐 보였습니다. 장례에 참석했던 동네 사람들은 살아있는 것 아니냐며 무척이나 놀라워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예배시간에 들은 박 장로님의 설교 말씀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려 노력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동방의 한 사람이 이 땅에 나타날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자가 감람나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박 장로님의 집회에서 충만히 내렸던 은혜를 떠올리며 그분이 진짜 감람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구원을 줄 수 있는 분이 아니라면 하실 수 없는 말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81년도에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을 때도 저는 ‘옳다! 옳다!’ 하며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1990년 7월에는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가족들에게 어머니 장례를 천부교식으로 치르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집안의 대종손인 큰오빠는 우리 집안은 대대로 불교를 믿어왔기 때문에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며 단호하게 제 말을 잘랐습니다. 그때 6촌 친척 오빠가 나서서 동생이 저렇게 간절하게 말하는데 소원을 들어주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큰오빠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럼 천부교식으로 장례를 치른 뒤 다시 불교식으로 한 번 더 장례를 치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마저도 너무나 기뻐서 관장님과 장례반 권사님들을 모시고 와서 어머니의 입관예배를 드렸습니다. 장례반 권사님들은 생명물로 정성껏 머리도 감겨드리고, 수건에 생명물을 묻혀 몸도 깨끗이 닦아드렸습니다. 저는 옆에서 생명물을 수저로 떠서 어머니 입에 넣어드렸습니다. 그러자 쭈글쭈글하던 어머니 얼굴의 주름이 사라지고 피부가 뽀얗게 피어났습니다. 너무나 환하게 피어나서 지켜보던 가족들도 깜짝 놀라며 신기한 일이라고 감탄했습니다. 큰오빠도 아름답게 피어난 어머니 모습을 보더니 불교식으로 장례를 다시 치르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날 어머니께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현재 저는 청주에서 신앙촌상회를 운영하며 활기차게 일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릴 일이 많습니다. 처음 하나님 집회에 참석했던 그날 받은 은혜의 기쁨은 세상의 어떤 기쁨과도 견줄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저는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그렇게 귀한 은혜를 한없이 허락해주시고 지금까지 이 길을 따라올 수 있게 보호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무척 애쓰고 노력해 달라’하신 말씀대로 바른 양심을 지키고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끝까지 노력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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