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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 탐구 <20> 유해를 숭배하는 자들에 대하여

세계 종교 탐구 <20>
발행일 발행호수 2614

<사진1> 불지(佛指)사리의 모습
불교에서는 불지사리를 ‘부처의 손가락뼈’라며 최고의 성물로 여긴다. (출처: 월간조선)

몸에서 사리가 나오겠다는 말이 있다. 사리는 ‘시신’을 가리키는 인도 고전어 ‘사리라(sarira)’에서 비롯된 불교 용어로, 사람을 화장한 뒤 유해에서 발견되는 구슬 모양의 결정체를 말한다. 불교계에선 반드시 오랜 수행으로 공덕이 쌓인 고승에게만 나온다고 주장하는 종교적 성물(聖物)이다. 지난 2005년, 불교계 최고 성물인 중국 법문사의 ‘불지(佛指)사리’가 한국에 전시된 적이 있다.<사진1>

불지사리를 우리말로 풀어쓰면 석가모니의 손가락뼈 사리다. 불교계에 따르면 서기전 5세기경 석가모니가 죽은 후 그의 유해를 7일간 화장했더니 8만 4000여 개의 사리가 나왔는데, 그중에 손가락뼈 하나가 뼈의 형태를 유지한 채 발견됐다고 한다. 그가 남긴 사리들은 포교를 목적으로 서기전 240년 인도의 아소카 왕에 의해 세계 각지로 보내진다.<참고자료1: 세계 각지의 석가모니 유해들> 불지사리도 이때 중국에 전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당국에 따르면 이렇게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던 불지사리가 1987년 석가탄생일에 중국 법문사 지하궁에서 발견됐다는 것이다. 불지사리는 석가탄생일에 발견됐다고 하여 석가모니의 현신(現身)과도 같다고 여겨지며 직접 보게 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도 있어, 불지사리를 보기 위해 매년 수많은 순례객들이 법문사를 다녀가게 되었다. 이런 불지사리가 한국에 오자 조계종 장주 승려는 “미륵경을 보면 부처님은 56억 7000만년 만에 다시 오신다고 돼 있는데 그보다 훨씬 앞서 한국 땅에 오시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라며 “불지사리는 한국의 불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일부 종교에서는 죽은 자의 유물이나 유해를 성스럽게 여기며 숭배하곤 하는데, 이를 ‘유물 숭배’라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유물 숭배란 “죽은 사람의 영혼과 통한다고 믿고 그 영혼으로부터 복지(福祉)를 구하기 위하여, 성인·현인·순교자의 유물을 숭배하는 일. 미개인이나 천주교도에게서 볼 수 있으며, 불교에서 불사리(佛舍利)를 숭배하는 것도 그 한 예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유해를 숭배하는 행위는 고대에서부터 행해졌다. 이번『세계종교탐구』에서는 유해를 숭배하는 종교들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 고대의 유해 숭배

인도에서는 고대부터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화장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학문이나 덕이 높은 인물이 사망하면 그의 은혜나 덕을 기리기 위해 화장하고 남은 뼈를 나눠 가졌다. 이를 받아들인 것이 불교의 사리 신앙이다. 이처럼 이전에 널리 퍼져있던 풍습은 신생 종교의 교리에 흡수되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부터 그리스와 로마 제국까지 널리 유행했던 종교가 있었다. 이집트의 신 오시리스를 숭배하는 종교다. 오시리스는 농업의 신, 풍요의 신, 부활의 신, 저승의 신으로서 널리 숭배받았다. 이집트 토착 문헌들과 그리스 저술가들에 따르면 오시리스는 그를 질투한 동생 세트에게 죽임을 당하는데, 세트는 그의 시체를 14조각으로 토막내어 이집트 곳곳에 버렸다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이집트 전역에는 오시리스의 무덤이라고 주장하는 여러 성소(聖所)들이 있다.

이집트 덴데라 신전의 비문에는 오시리스의 무덤들이 목록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또 다른 비문에는 각 성소마다 신성한 유물로서 소장하고 있는 오시리스의 신체 부위가 적혀있다. 예를 들면 오시리스의 심장은 아트라비스에, 등뼈는 부시리스에, 목은 레토폴리스에, 머리는 멤피스에 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의 유해를 소장하고 있다는 도시가 너무 많았다. 그의 머리는 멤피스뿐만 아니라 아비도스에도 있었고, 그의 다리를 소장하고 있다는 도시는 그 몇 배에 달했다.

<사진2> 이집트 아비도스의 오시리스 신전터
이집트 아비도스는 오시리스의 머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도시로, 본래 이름도 없는 도시였지만 오시리스 유해의 후광에 힘입어 고대 왕국의 끝 무렵부터 이집트의 가장 신성한 도시가 되었다. 아비도스에서 열리는 오시리스 축제는 이집트 최대 축제로서 순례자가 그치지 않았으며, 이집트인들은 사후 아비도스에 묻히거나 공양비를 세울 것을 원했는데, 국왕도 공양비를 세울 정도였다. (출처: https://www.thearchaeologist.org/)

도시들은 오시리스의 유해를 소장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신앙심 깊은 이집트인들의 소망은 죽은 뒤 영광의 오시리스 묘지 근처 성스러운 땅에 묻히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유해가 거룩한 묘지가 발산하는 축복의 힘을 입기를 열망했고, 신성한 도시에 자리할 묏자리 값과 미라를 옮길 재력이 부족했던 사람들은 유해를 성소까지 운반하여 잠시 머물게 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묻었다. 이런 경우 말고도 죽었다가 부활한 오시리스 무덤 근처에 기념비나 위패를 세워 그 부활의 축복을 나누어 받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덕분에 오시리스의 머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도시 아비도스는 본래 이름도 없는 곳에 지나지 않았으나, 오시리스 유해의 후광에 힘입어 고대 왕국의 끝 무렵부터 이집트의 가장 신성한 도시가 되었다.<사진2>

인도와 이집트뿐만 아니라 토막난 유해를 숭배하는 행위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도 성행했다. 오시리스와 유사한 설화, 즉 신왕(神王)이 죽은 후 유해가 각지에 보내지고 다시 부활하는 내용이 메소포타미아에도 탐무즈 또는 바알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고대 강대국이었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종교, 동양의 불교 등 세계적으로 성행했던 유물 숭배 풍습이 후대에 발생한 종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예시로 들었듯이 유물을 숭배하는 대표적인 종교로는 로마 가톨릭이 있다.

가톨릭 백과사전 12권 유물(relics) 항을 보면, 첫 문단부터 그리스도교 전파 이전에 유물 숭배가 이미 존재했고, 그리스도교 이외의 다른 여러 종교 체계와 관련이 있음을 시인하며 설명을 시작한다. 또한 유물 숭배는 어느 정도 원시적 본능이라며 유물 숭배가 기존 종교들의 흔한 풍습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 성인을 숭배하다

유물 숭배는 ‘성인·현인·순교자의 유물을 숭배하는 일’로 유물 숭배 이전에 성인 숭배가 전제되어야 한다. 성인은 ‘인격과 식견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은 인물’이라는 일반적인 뜻도 있으나 종교에서는 ‘타 신도들에게 모범이 되는 사람’을 말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생전 영웅적인 덕행을 행하거나 순교한 것을 모범적인 모습으로 삼는다. 가톨릭은 이러한 성인의 수가 만 명을 넘어가는데, 이들은 모두 숭배의 대상이 된다.

가톨릭에선 성인들과 순교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성인을 통해 기도하면 공덕이 부족한 일반 신도들도 성인의 공덕을 나누어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가톨릭에서는 여러 종류의 성인들을 지정해 놓았다.

가톨릭에는 직업별 수호성인이 있다. 예를 들면 배우의 수호성인은 성 게네시우스, 음악가는 성 세실리아, 요리사는 성 마르타, 목수는 성 요셉, 선원은 성 브렌단 등에 기도하라는 것이다. 의료 종사자 중에도 병원 관리인, 병원 진료기록 종사자, 의사, 치과의사, 약사, 간호사의 수호성인이 전부 다르며 주부, 거지, 노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세세하게 지정되어 있다.

상황별 수호성인도 있다. 예를 들면 자녀를 갖게 하는 성인, 남편을 얻게 하는 성인, 부인을 얻게 하는 성인, 도둑을 체포하는 성인, 잃은 물건을 찾게 하는 성인 등이다. 또 질병에 따라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성인이 지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관절염은 성 야고보, 개에 물렸을 땐 성 후베르트, 두통에는 성 데니스 등이다.<사진3> 가축을 수호하는 성인도 있어, 지난 1월 멕시코에서는 성 안토니 축일을 맞아 성당에 가축들을 데려와 개, 닭, 새들에게 성수를 뿌리는 일도 있었다.<사진4>

<사진3>두통을 앓는 자들의 수호성인 성 데니스
프랑스 파리의 초대 주교이자 순교자 성 데니스는 도끼로 머리가 잘려 죽었는데, 바로 죽지 않고 자신의 잘린 머리를 두 손으로 든 채 북쪽으로 8000보를 걸어간 후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프랑스에는 잘린 목을 들고 있는 성 데니스의 성스러운 그림과 동상이 여러 곳에 있다. (출처: 브리태니커)
<사진4>가톨릭교회 사제가 닭한테 성수를 뿌리고 있다.
지난 1월 17일, 멕시코 시티의 한 성당에서는 가축의 수호성인 성 안토니의 축일을 기념해 개, 닭, 새들에게 성수를 뿌리는 축복 행사를 열었다. (출처: MBC 뉴스 영상 캡처)

여러 종류의 성인을 믿는 것은 여러 종류의 신을 믿는 다신교 사상과 유사하다. 그리스도교 발생 이전에 존재했던 고대 다수의 종교들은 여러 명의 신을 섬겼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의 목록이 새겨진 점토판이 발견됐는데, 기록된 것만 해도 신의 수가 약 3000명이 넘었다. 메소포타미아 신 목록에 의하면 하늘, 바다, 불, 태양, 달, 구원, 정의, 아름다움, 부활의 신 등 다신교에서 기본적으로 존재했던 신 외에도 소의 신, 양의 신, 뱀의 신, 맥주의 신, 역병의 신, 농부의 신, 양치기의 신, 선원의 신 등 다양한 신들이 존재했다. 이러한 다신교 사상은 그리스를 거쳐 로마 제국까지 전해졌는데, 다신교적 문화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가 유입 됐을 때 예수 숭배보다 성인 숭배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가톨릭 백과사전에도 같은 이유로 다신 숭배와 성인 숭배가 유사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전설은 그리스도교 이전 종교의 설화에서 발견되는 사상을 반복한다. (…) 전설은 그리스도교화 되었을 뿐이다. (…) 고대인들이 영웅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개념은 그리스도교의 순교자로 전이되기 쉬웠다. 이러한 전이로 그리스도교 성인들은 지역 신의 후계자가 되고, 그리스도교 숭배가 고대 지역 숭배를 대체하게 되었다. 이것은 고대의 신과 성인 사이의 수많은 유사점을 설명한다.”

▣ 유해를 토막 내다

성인들은 죽어서도 그 유해나 유품까지 숭배되었다. 성인의 신체 일부나 생전에 성인이 애용하던 물건을 ‘성유물’이라 하는데, 당시 사람들은 특히 성인의 시신을 선호했다. 가톨릭에서는 거룩한 순교자들의 시체를 숭상하면 그 시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많은 복이 부여된다고 가르치는데, 이 때문에 성인들의 시체는 도난당하거나 토막나기 일쑤였다. 옷을 찢어가거나 머리카락을 뽑는 것은 물론이며, 심지어 머리와 팔과 다리까지 잘라가기도 했다.<참고자료2: 가톨릭 성인의 토막난 유해들>
조각난 유골도 온전한 유골과 같은 효험이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역사가 그레고로비우스는 “로마는 죽은 시체를 탐욕스럽게 파내려고 하이에나 떼가 울부짖고 싸우는 부패한 공동묘지”라고 묘사할 정도였다.

성인의 수는 한정돼 있는데 비해 성유물을 원하는 사람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게 되자, 곳곳에서 모조품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결국 모조 성유물도 진짜와 같은 효력이 있다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고, 성유물 모조품 산업은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성인이 수십 개의 팔과 다리를 갖게 된 것도 이 즈음의 일이었으며 서로 자신의 성유물이 진짜라고 우기며 다투기도 했다. 가짜 성유물 논란에 대해 가톨릭 백과사전에서는 “유물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솔직히 긍정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히면서도 “완전히 가짜라고 입증되기 전까지는 모두 진품으로 간주해야 하며, 가품 의심 유물의 숭배 행위를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심지어 가짜라 하더라도 선의에 의한 실수였기 때문에 신에게 불명예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은 왜 성유물을 소장하는데 혈안이 되었을까?

미국의 중세 역사가 패트릭 J. 기어리의 저서 『거룩한 도둑질』에 의하면 성인의 유골은 순례자들을 끌어들여 재정적 도움을 주는 자금 조달자 역할을 했다. 성인에게 바치는 헌금은 가외 수입이 아니라 주요 수입원이 될 정도였다. 종교 건축물의 개축이나 신축 같은 토목공사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경우에 특히 그러했다. 따라서 10세기 말에는 건축비를 조달하기 위해 성유골을 갖고 지역을 순회하는 관행이 등장하기도 했다.

<사진5>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를 풍자한 삽화
교황이 면죄부를 미끼 삼아 낚시질로 사람들을 꾀어내는 모습. 오늘날 면죄부 판매는 희대의 종교 사기 사건으로 불릴 만큼, 이를 순수히 신앙적인 동기로 행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중세 성유물 도둑질에 관한 책『거룩한 도둑질』의 저자는 성유물 숭배를 순수한 신앙심의 발로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성인의 유물은 교회의 자금 조달자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출처: 스코틀랜드 국립 박물관)

저자는 성유물 숭배를 순수한 신앙심의 발로로 받아들여
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어떤 일을 행하는 동기는 복합적이기에, 예술품 수집을 재테크와는 전혀 무관하게 순수한 심미적 욕구의 충족으로만 보는 것처럼 순진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순수히 종교적인 동기로만 이해한다면 죄를 사해준다던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가 희대의 종교 사기 사건으로 불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사진5>

▣ 현대에도 계속되는 유해 숭배

유해를 숭배하는 행위는 중세에서만 일어났던 기이한 현상이 아니다. 현재에도 수많은 성인의 유해들이 성당에 모셔져 많은 순례객과 교인들을 모으고 있다. 또한 유럽의 독실한 가톨릭 국가만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103명의 성인이 있으며 유명한 성인의 유해는 여러 성당에 모셔져 많은 순례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최초의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의 척추뼈가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매물로 올라와 논란이 되고 있다.<사진6> 이 일이 언론에 알려지자 가톨릭계에선 거룩한 유해를 개인이 판매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지만, 네티즌들은 사람의 유해를 조각내어 모신다는 사실에 끔찍하고 미개하다며 충격을 금치 못했다.

<사진6> 번개장터에 매물로 나온 김대건 신부 척추뼈
지난 3월 26일 우리나라 최초의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의 척추뼈가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매물로 나왔다. 사람의 유해가 나눠져 보관되고 있다는 사실에 네티즌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성인의 유해를 나누어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사제나 수녀가 나눠 갖는 것은 가톨릭의 오랜 전통이자 관행이며, 교회법으로는 거룩한 유해를 매매할 수 없다는 입장문을 밝혔다. (출처: 연합뉴스)

1996년 발간된「성 김대건 신부 유해 현황」자료집에는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이장·조사·개봉·밀봉·분배 일지가 기록되어 있다. 유해 분배일지는 김 신부의 유골을 잘라 분배한 기록으로 김대건 신부의 턱뼈, 슬개골, 척추뼈, 발뼈, 머리카락, 옷자락 등이 총 209곳에 수령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집에 의하면 유해 분배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장복희 수녀는 “나는 더 이상 유해 보관 및 분배 작업을 맡고 싶지 않다. 이유는 성인의 뼈를 조금씩 자른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너무 잔인한 짓이고, 못 할 짓으로 여겨지고, 정서에 맞지도 않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유해를 파낸 후 잘라서 나눠 가지는 것은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분묘발굴죄, 사체유기죄 또는 영득죄, 사체손괴죄에 해당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종교의 성스러운 유해는 여전히 거룩한 존재로서 숭배될 것이다.


참고자료1

세계 각지의 석가모니(부처) 유해들

불교계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사망한 뒤 제자들은 그를 7일간 화장하였는데, 화장 후 두개골과 치아, 가운데 손가락 뼈 등을 포함해 8만 4000여 개의 사리가 나왔고, 후에 이 사리들은 불교 포교를 위해 세계 각지로 보내졌다고 한다. 현재 세계 각지의 불교 사원에서는 일반적인 진주 모양 사리를 비롯해 부처의 것이라 주장하는 여러가지 뼛조각과 손톱, 머리카락, 치아 등을 모시고 있다. 다음은 부처의 것이라 주장하는 각 나라의 유해들이다.

(왼쪽부터 차례로) 중국 불정사(佛頂寺)의 정수리뼈 사리(출처:주간불교), 한국 건봉사(乾鳳寺)의 치아 사리 (출처:한국문화유산채널), 스리랑카 강가라마야 사원의 머리카락 (출처:위키피디아)

■ 싱가포르 불아사(佛牙寺)의 어금니 사리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에 있는 불아사(佛牙寺)에는 부처의 어금니라 주장하는 치아를 모시고 있다. 덕분에 이 절에는 2007년 기준 6만명의 신도들이 2천 9백만 달러와 27㎏의 황금을 시주했을 정도로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2007년, 멜버른 치과대학의 파멜라 크레이그 박사는 “사진만 보더라도 이 치아가 인간의 것일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잘라 말하며 “일반적인 소의 이빨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2명의 치아 전문 법의학자들을 포함해 4명의 치과 의사들도 박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조했다. 이와 관련, 영국 카디프 대학 구강생물학 및 법의학자 데이비드 위태커 교수도 “이 치아는 입의 뒷 부분에 있는 동물의 어금니”라고 확인했다.

이 절의 주지 쉬 파자오는 “치아사리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부처의 유해”라며 “과학자들이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는다. 당신이 진짜라고 믿는다면 그게 바로 진짜”라고 답했다. 사원 측은 또 성명서를 통해 “불교도들에게 있어 성스러운 부처의 유해를 검사한다는 발상은 용납되지 않는다”며 유전자(DNA) 검사 제안을 거절했다.


참고자료2

가톨릭성인의  토막난  유해들

■ 죽자마자 토막 내진 성 토마스 아퀴나스

생전에 위대한 가톨릭 신학자로 이름을 날렸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죽자마자 그의 유골을 탐낸 제자들에 의해 목이 잘리고 통째로 솥에 넣어져 삶아졌다. 시체를 삶은 것은 뼈를 보다 쉽게 추려내어 나눠 가지기 위한 것이었다.

(왼쪽부터 차례로)토마스 아퀴나스의 두개골
이탈리아 Priverno 성당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 ivarfjeld.com/2013/11/22/drama-around-skull-and-bones-of-thomas-aquinas/), 토마스 아퀴나스의 엄지 손가락뼈
이탈리아 Sant’Eustorgio 성당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출처: nobility.org/2014/01/st-thomas-aquinas/), 토마스 아퀴나스의 팔뼈
이탈리아 San Domenico Maggiore 성당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 atlasobscura.com/places/the-arm-of-st-thomas-aquinas-naples-italy)

■ 무덤에서 꺼내 토막 내진 김대건 신부

우리나라 최초의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는 1846년 참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처음 그의 사체는 온전한 상태였지만 1901년 뮈텔 주교의 명으로 처음 무덤에서 꺼내진 뒤, 그의 유해를 소장하고 싶다는 많은 요청에 의해 유해를 분배하여, 기록상으로는 1996년 기준 209곳에 나눠준 것으로 알려져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나눠주었으며 비공식적으로는 400여곳 이상에 분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부터 차례로) 김대건 신부의 아래턱뼈
경기도 용인시 미리내성지 성요셉성당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 blog.daum.net/sunghwa/13990404), 김대건 신부의 머리카락과 뼛조각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 성당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 cafe.daum.net/jmjCatholic/ZOea/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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