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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물을 마시는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시원해지는 느낌

박양순 권사(1) / 소사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362

저는 1939년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서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독실한 장로교인이셨던 부모님을 따라 저희 형제들도 모두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 후 저는 스물한 살 되던 해인 1959년에 경기도 양주군의 기독교 가정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동네에 있는 장로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시어머니는 서울 용산까지 예배를 드리러 다니셨습니다. 원래는 시어머니도 동네 장로교회에 다니시다가 박태선 장로님의 집회에 참석해 병이 나으신 후로 박 장로님께서 서울에 세우신 ‘전도관’이라는 곳에 다니신다고 했습니다.

서울전도관에서 특전대가 우리 시골 마을을 찾아와
당시에 보기 드문 관악기를 연주하며 거리 행진을 하는데
저녁에 있을 박태선 장로님의 부흥집회 소식을 알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전도관에서 특전대(특별전도대)라는 사람들이 저희 동네에 찾아왔습니다. 특전대원들은 당시 시골에서 보기 드물었던 관악기로 힘차게 찬송을 연주하며 거리를 행진하였고 저녁에 부흥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특전대에 큰 관심을 보이며 저녁 집회에도 많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그 후 저희 마을에는 전도관의 전도사님이 부임해 오셔서 임시로 가정집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집은 동네에서 유지로 손꼽히는 부유한 집안이었는데, 안주인인 이 집사님이 박태선 장로님의 집회에 참석해 은혜를 받고 중풍이 깨끗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이 집사님은 저희 시어머님과 같이 서울에 있는 전도관에 다니시다가 자신의 집 사랑방에 전도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시어머님은 저를 보고 그 집에 가서 같이 예배를 드리자고 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집안일과 농사일로 바빠서 장로교회에 나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며느리로서 시어머님의 말씀을 따라야 된다는 생각으로 그곳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장로교회에 다닐 때는 막연히 예배당에만 나오면 천국 가는 줄 알아
전도관에서는 `예배당에 오래 다닌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신의 은혜를 받아
죄를 씻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마음에 깊이 와 닿아
그 후로는 ‘성신의 은혜로 내 죄를 씻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 드려

그로부터 얼마 후에는 미금면 도농리에 있는 방앗간을 깨끗이 수리해 ‘도농제단’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부임해 오신 전도사님은 성경상의 ‘감람나무’에 대한 구절을 설명해 주시며 감람나무가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셔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전에 장로교회에 다녔던 저는 막연히 예배당에만 나오면 천국에 가는 줄 알았는데, 전도관에서는 “예배당에 오래 다닌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신의 은혜를 받아 죄를 씻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죄를 씻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그 말씀이 제 마음에 깊이 와 닿아 그 후로 저는 ‘성신의 은혜로 내 죄를 씻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960년 어느 날 소사신앙촌 오만제단에서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집회에 가서 처음으로 박태선 장로님을 뵙고 축복하신 생명물을 받아 오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소사신앙촌의 우물에 축복해 주셔서 그 물을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저의 죄를 씻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드린 후 생명물을 마시는데, 그 순간 시원한 것이 머리에서부터 손끝 발끝까지 통하며 온몸이 말할 수 없이 상쾌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왜 그리도 기쁘고 즐거운지 그 기쁨을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은혜를 받으면 시원하게 생수가 통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체험하며 ‘생명물이 참으로 귀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 전도를 위해 매일 기도 드린 후 교회에 가자고 했더니
선선히 따라 와 예배를 한 번 드린 후엔 골초였던 남편이
담배를 완전히 끊고 매일 새벽예배에도 참석해

예배 시간에 전도사님은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하는 찬송을 자주 부르시며 감람나무의 귀한 은혜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며 저는 가족을 전도하고 싶었습니다. 남편은 건축 기술이 있어 제단을 수리할 때 많이 도와주었으나 어쩐 일인지 예배는 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전도사님께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직 기도가 부족한가 봅니다.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만한 기도가 되어야 전도가 되지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으며 매일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후 어느 수요일 저녁에 남편에게 제단에 가자고 했더니 그날은 의외로 순순히 따라나섰습니다. 그런데 한 번 예배를 드리고 온 뒤로 골초였던 남편이 담배를 완전히 끊어 버리고 매일 새벽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이었습니다. 담배를 입에 대지도 않을 뿐 아니라 친구들이 찾아와서 담배를 피우려고 하면 냄새도 맡기 싫다며 절대로 피우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한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딱 끊어 버리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으며 제단에 열심히 다니게 되었습니다.

1962년 덕소신앙촌이 건설되고 얼마 후에는 하나님께서 도농제단으로 건설대원을 보내 주셔서 대로변에 터를 마련해 제단을 신축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건설하는 분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벽돌을 나르며 일을 도왔습니다. 농사일과 집안일을 하면서 제단 짓는 일까지 도우려니 하루해가 짧았지만 힘든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했습니다.

도농제단 교인 중에 제단 짓는 일을 열심히 돕는 남자 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 예배 시간에 그분이 제단에 나오게 된 동기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분은 폐병 3기로 각혈을 할 만큼 병세가 심각했을 때 전도관에 다니는 지인으로부터 박 장로님께 안수를 받으면 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오만제단에 가 보았는데, 노구산에 올라갈 때는 부축을 받아 겨우 올라갔으나 안수를 받고 돌아올 때는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서 뛰다시피 내려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안수를 받고 폐병이 씻은 듯이 나은 그분은 제단 일을 성심껏 도우며 제단에 열심히 다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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