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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다시 보는 신앙체험기> 김영환 승사
발행일 발행호수 2630

20여 년간 장로교회 교리에 빠져 천당 가기로 예정 받은 사람인 양 자부하며 살다가
1955년 11월 광주 공원 집회에 참석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받은 후로 장로교 신앙의 뿌리 흔들려
집회 인도하러 오신 하나님 가까이서 ‘소위 동방의 의인, 감람나무가 정말 이 분이신가?’ 의심하자,
“소위 동방의 의인이요 감람나무”라고 하시며 “아무래도 자격이 없는 것 같지요?”라고 되물으셔
그 이후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삶 살고자 해

1955년 11월 광주공원 집회 모습

저는 전남 광산군 삼도면에서 태어났습니다. 1933년에 장로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여 전도관에 나오기까지 영산포 장로교회에 다니며 장로 일을 보았습니다. 20여 년간 장로교회 교리에 푹 빠져 지금 죽어도 천당 가기로 이미 예정 받은 사람인 양 자부하고 살아왔습니다.

뿌리 깊은 고목처럼 흔들리지 않던 저의 잘못된 신앙의 뿌리를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뽑아 주신 분은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으로, 그분을 처음 만나 뵙게 된 것은 1955년 11월 광주공원 집회였습니다.

당시 교계엔 여러 부흥집회가 성행하던 때였기에 박태선 장로님의 집회 소식은 불붙듯 퍼져 나갔습니다. 특히 집회 때 나타난 기사 이적의 소식은 당시 기성교계에 큰 화제였으며, 호기심에 가보고 싶은 마음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때마침 광주공원 집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교우들과 함께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넓은 공원을 뒤덮은 대형 천막 안에는 어디서 왔는지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첫날부터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북소리에 맞춰 손뼉 치고 찬송 부르는 모습이 경건치 않아 보여 첫날은 구경하듯 뒷좌석에 앉아 ‘불의 사자’의 등단만을 기다리던 차, 드디어 단상에 나타나신 모습은 30대를 갓 넘어 보이는 날씬한 미남 신사였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신 후 찬송 인도하시는 그 모습은 극히 자연스러웠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때 부르시던 찬송을 연속해서 따라 부르는데 갑자기 코를 스치고 지나가는 향기가 맡아졌습니다. 그 향기는 백합꽃 향기와도 같았고, 고급 포마드(머릿기름) 냄새와도 같기에 사방을 둘러보며 그 냄새의 소재를 찾았습니다. 그러자 그 향기는 사라지고 잠시 후엔 시체 썩는 악취가 나는데 역겨움이 지속되면서 토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강한 향기가 맡아졌습니다. 그 후 설교 말씀을 듣고, 시체 썩는 악취가 맡아지는 것은 사람 속의 죄를 태우는 냄새이고 다시 향취가 나는 것은 은혜의 연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후 처음 느낀 이 체험으로, 굳게 닫힌 마음 문이 열리며 눈물 한 방울 없던 강퍅한 마음이 눈 녹듯 녹아 감격의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습니다. 또한, 지은 죄가 떠올라 가슴이 아프도록 후회하며 깊이 뉘우치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단상에서 외치시는 설교 말씀은 뭇 심령을 건지시기 위해 생명을 내걸고 부르짖으신 권능의 말씀이었기에 깊은 감화를 주셨고 깨달음과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창세 전에 이미 천당 가기로 정해진 것으로 믿고 있던 저는 이 권능의 말씀에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어 스스로 깨닫고 돌이켜 생명길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어느새 한 주일이 지나고 집회가 끝나는 날 아침, 정든 교우들과 헤어지려는데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이제 집에 돌아가면 받은 은혜 잘 간직하고 은혜받은 목사님 받들어 전도 많이 하세요.” 말씀하셨습니다.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며칠 후 주일날 다니고 있던 교회에 나가 낮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우리 교회 강 목사도 하나님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받은 간증설교를 하며 얼굴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장로교 총회가 소집되어 거기에서 결의한 통고문이 왔는데
“박 장로는 사이비 종파의 이단이다. 그러므로 그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모조리 파면 조치하여 출교시킨다”라는 금족령이 내려왔습니다.

이러한 통고문을 받은 강 목사는 돌변하여 단에서 의도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마침내 깡패를 동원시켜 강제로 광주 공원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몰아냈습니다. 그때 우리는 궁궐이나 초막이나 주 하나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임을 알았기에, 받은 바 은혜 쏟지 않으려고 그들과 싸우지 않고 빈손으로 나와서 저의 집에 모여 따로 예배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영산포 교회의 시작이었고, 그때가 1956년 10월 7일이었습니다.

전 교인의 과반수가 갈라져 나와 저의 집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데, 온 방 안에는 향취가 가득했고 이슬 같은 은혜가 내렸습니다. 이렇게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새 제단을 짓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전국을 누비며 집회하시는 하나님을 따라다니며 은혜받는 기쁨만을 기다렸습니다.

그 후 광주에서 개관집회가 있다 하여 찾아가, 은혜받고 돌아온 후로는 합심하여 새 부지를 마련하고 50여 평의 아담한 제단을 신축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개관집회를 갖는 아침 특별 안수를 받을 때, 하나님의 손이 제 머리 위에 와닿자마자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불의 성신을 받고 나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한없는 기쁨이 솟구쳐 입이 달고 감사의 찬송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불같은 성신을 체험하고 나니 이젠 더욱 간절한 마음이 솟구쳐 군산 개관집회에도 참석하게 됐습니다. 거기서 생명물 축복을 받은 후 예배를 드리는데, 3일간 계속해서 단상에 이슬성신이 내리는 것을 그때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확실한 성신의 은혜를 체험하고 따르기까지는 혹시 잘못될까 봐 야무지게 돌다리를 두드리듯 의심나면 따져 캐묻는 성격이 한몫했습니다. 확신이 설 때 받아들였기 때문에, 우리 식구들로부터 차돌 장로란 별명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차돌같이 매끈매끈하고 굳어 쉽게 깨어지지 않으니, 차돌이라고 놀림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어느 집회 시 특별 안찰 받던 날 제 차례가 되어 누웠더니 제 이마를 여러 번 치시며 “도대체 이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기에 의심이 많아 안 깨지나, 이 차돌 장로…….”라고 말씀하신 후부터 저는 차돌 장로로 별명이 굳어졌습니다.

그렇게 의심이 많아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확인하고 따져보고 캐물었던 신앙 자세가 완전히 바뀌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다. 영산포 개관집회 전날 하나님께서 집회 인도하시러 오셔서 잠시 쉬시는데, 인사드리려고 다과상을 들고 방 안에 들어가 “과일 좀 드시지요.” 하고 다과상을 앞에 놓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소위 동방의 의인이요 감람나무라 하는 분이 정말 이분이신가?’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격이 의심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한참 동안 저를 쳐다보시더니 크게 웃으시며 내가 속으로 의심했던 생각 그대로 “소위 동방의 의인이요 감람나무”라 하며 저의 마음속 생각을 그대로 말씀하시며 “아무래도 자격이 없는 것 같지요?” 하고 되물으시기에 저는 깜짝 놀라 홍당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자리에 죄송하여 계속 앉아 있을 수 없어 곧바로 문밖으로 나와 생각하니,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성신 앞에 큰 실수를 저지른 죄책감과 하나님을 새롭게 인식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더욱 하나님 앞에 서기가 두려워지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우러러보게 되었으며 늘 낮은 자세로 살기를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구원 얻는 데 도움이 되고 보람된 여생을 마감하기 위해선 받은 은혜를 간직하며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이 가장 보람된 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을 다짐하며 하나님께 특별 안찰을 받고 1957년 4월 8일 전남 남평교회 전도사 임명을 받았습니다.

교역생활 가운데 많은 체험과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 일은 제가 목포교회에 시무할 때 일입니다. 목포에서 130리 밖에 사시는 저의 부친께서, 평소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을 말씀드렸는데 도저히 믿지 않으시고, 겨울에 낙상하여 큰 부상을 입어 수술도 못 하게 되자 저를 찾아왔습니다. 마침 그때 하나님께서 목포에 오셨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안찰 받기를 청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말씀드려 안찰을 받게 해 드렸는데, 즉시 일어나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신 일도 있었고, 저 또한 군산 교회에서 시무할 때 맹장염에 걸려 5일 동안 고생하다가, 축복일에 하나님께 안찰 받고 완치되어서 재발 없이 건강을 되찾은 일도 있었습니다.

육신의 병마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도 귀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과제는 어떻게 하나님 뜻대로 사느냐가 저에게는 더 큰 문제라고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1984년 4월 10일 27년의 교역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하였습니다. 올해 88세의 고령이지만 주신 은혜로 지금까지 건강함을 잃지 않고, 또한 여생을 깨끗이 살다 구원의 은총을 받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1999년 3월 14일 자 신앙신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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