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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같이 환하게 핀 얼굴로 찬송 부르며 일하던 그 시절 그리워

김복동 집사(4)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186

<지난호에 이어서>
공장이 완공되면서 저는 메리야스 공장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시중에서 찾기 어려울 만큼 좋은 원단과 예쁘고 튼튼한 바느질의 신앙촌 메리야스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날로 급증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종종 밤새워 일했는데, 작업 중에 어느 순간 향취가 진동해서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직원들에게 축복해 주고 계셨습니다.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하라.” 하시던 하나님. 그 은혜 속에서 밤샘 작업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배꽃처럼 환하게 피어 피곤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더욱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함께하시지 않은 때가 없습니다.

유호준 목사가 `사람이 사람의 죄를 사한다니 이단이다`하자
하나님께서 `성신을 받으면 뉘 죄든지 사하리라는 성경을 못 보셨습니까`
하시니 홍당무가 되어 황급히 도망치듯 퇴장해

그러던 1958년 12월,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이 되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가던 전도관과 신앙촌의 움직임에 위기감을 느낀 정계와 종교계가 결탁한 일임은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억울하고 원통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어 재판정을 찾아갔는데, 하나님을 한 번이라도 뵙고자 하는 교인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재판정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재판에 참관했을 때였습니다. 당시 증인으로 나왔던 유호준 목사(당시 한기련 총무)가 “박태선 장로는 사람인데, 사람이 사람의 죄를 사한다고 하니 이단입니다.”라고 발언하자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목사님, 성경에 ‘성신을 받으라, 성신을 받으면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지고 정하면 정하여지리라.’ 하는 구절을 못 보셨습니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 말씀에 기세 등등하던 유 목사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시뻘개지더니 단 한마디 답변도 못하고 도망치듯 퇴장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슬성신이 사진에 찍힌 축복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재판부에서 집회를 열도록 허가해 주고 카메라로 촬영하여 이슬성신이 내리는가 아닌가를 직접 확인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하시는 순간 재판정에 있던 검사와 판사, 목사들이 몹시 당황하여 수군수군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집회는 끝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사신앙촌에 하나님께서 오시는 꿈을 꾼 적이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영모님, 이제 다시는 가시지 마세요.” 하고 말씀드리니 “응. 내가 집집마다 축복을 해야 된다고.” 하시더니 급하게 발길을 돌려 주택을 향해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꿈을 깨고 보니 방 안에 백합화 향기 같은 향취가 진동하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도 저희 집에서 향취가 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연고 없는 옥고를 치르시며 하나님께서 당하신 고통이 너무나 크시건만 가지들을 위해 축복해 주셨던 그 일은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1962년 덕소신앙촌이 건설되면서 저는 아들과 함께 1차로 입주를 했습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광 속에 지어진 덕소신앙촌 주택은 당시로서 드물게 수도와 전기가 24시간 공급되는 문화 주택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C동 주택은 타일을 입힌 2층 양옥으로 주택가의 갖가지 꽃들이 한강과 어울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운치 있는 풍경을 이루었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신앙촌의 모습을 바라보면 어느새 마음이 잔잔한 강처럼 평안해졌습니다.
그 후 1970년 하나님께서 기장신앙촌을 건설하시면서 매일 덕소와 기장을 오가며 건설을 진두지휘하셨습니다. 건설 현장은 원래 갯벌이었던 데다가 계속해서 쏟아지는 비로 건물을 세우는 데 애로점이 많았는데, 그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직접 작업복을 입으시고 가장 힘든 일을 맡아 하셨다는 것을 나중에 듣게 되었습니다. 벽돌 하나, 기둥 하나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 있는 신앙촌. 그 사랑과 희생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1971년 3월, 기장신앙촌에 입주한 다음 날 저는 눈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양손을 살짝 눈에 대시기만 할 뿐인데 마치 돌로 누르는 것처럼 그 통증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으며, 안찰을 받은 후에는 그렇게 아프던 통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온몸이 시원하고 가벼워서 훨훨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기쁜 찬송을 부르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낌없이 은혜를 부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서른 살에 하나님을 뵙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열심히 일했던 시절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잡념 없이 맑은 생각으로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입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며 제품을 만들던 그때. 배꽃같이 환하게 핀 얼굴에 찬송을 부르며 일하는 사람들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라.” 하시던 하나님의 음성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어느 사이에 시간이 흘러 팔순이 넘는 나이가 되었지만 지금도 일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매일 새벽 무릎 꿇어 예배드릴 때면 늘 이끌어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그 은혜를 생각하며 흐르는 눈물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바라셨던 대로 죄 안 짓고 깨끗하게 살아서 그날에 그리운 하나님을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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