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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로님이 불같은 성신을 내리시는데 죄 타는 냄새가 났다

정순실 권사(1) / 안양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230

저는 1940년 황해도 은율군의 부유한 농가에서 1남 2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넓은 농토를 가진 시골 부자였던 저희 집은 대대로 정월 대보름이면 갖은 음식을 차려 놓고 신에게 복을 빌면서 크게 제를 올리곤 했습니다. 그러다 아버님이 지병으로 돌아가신 후 장남인 오빠가 장로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가족들을 전도하기 시작하였고, 그때부터 온 가족이 장로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1945년 8·15 해방이 되고 이북에 들어선 공산 정권이 지주를 탄압하면서 저희 집은 농토를 뺏긴 채 사리원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습니다. 그 후 육이오전쟁이 일어나 1·4 후퇴가 시작되면서 물밀듯이 내려오는 피난 행렬에 끼어 저희 가족들은 이남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삼팔선을 넘어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기나긴 피난길을 걸으면서 저는 차마 눈 뜨고는 보지 못할 전쟁의 처참한 광경을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귀청을 찢을 듯한 폭격기의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폭격이 시작되면 저마다 “하나님!” 하고 외치며 정신없이 숨을 곳을 찾았고, 폭격을 맞은 사람들이 처절하게 울부짖는 속에서 당시 열두 살이던 저는 두려움에 온몸을 떨었습니다. 살을 에일 듯이 추웠던 그때, 한 아기가 금방 숨을 거둔 엄마 품에 안겨서 젖을 먹는 것을 보면서 ‘저 아기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눈길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무참히 쓰러지는 피난길에서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돌볼 겨를 없이 오로지 살기 위해 남으로 남으로 밀려 내려왔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천만다행으로 저희 식구는 무사히 서울까지 오게 되었고, 저는 피난 중에 겪었던 일들이 잊혀지지 않아서 학교의 작문 시간이면 그 이야기를 쓰곤 했습니다.

친척 할머니는 남산집회에 다녀와서
`박장로님이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집회기간에는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는지 몰라`

그러던 1955년 제가 영등포여중 3학년에 재학 중일 때였습니다. 하루는 저희 집과 자주 왕래하시던 친척 할머님이 집에 오셨는데, 장로교인이신 할머니는 얼마 전에 남산 부흥집회에 참석했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집회에서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병자들을 수없이 고치시고 굉장한 은혜를 내리셨다.” 하시면서, 찬송하고 예배드리는 동안 얼마나 마음이 기쁘고 즐거웠는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 서울의 한 장로교회에서 박 장로님 집회가 열렸을 때는 어머니(故 황치연 권사)와 오빠(故 정동원 승사)가 다녀오셨는데, “박 장로님께서는 불 같은 성신을 내리시더라, 예배 시간에 무엇이 타는 듯한 고약한 냄새를 맡았는데 그것이 죄 타는 냄새라고 하더라.” 하며 그 집회에서 은혜를 받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기다리던 집회가 열린다는 포스터에, 다니던 장로교회 노목사는
`모두 박장로님 집회에 가서 은혜를 많이 받고 오라`고 광고해

그때부터 저는 ‘기회가 되면 박 장로님 집회에 꼭 가 봐야겠다.’ 하고 마음먹고 있던 참에, 영등포 거리를 지나다가 박 장로님의 집회 포스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여의도 비행장 주변의 모래사장에서 집회를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식이 반가워서 얼른 집에 달려와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도 집회 소식을 들었다고 하시며 오빠와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 주 일요일에는 저희 가족이 다니는 신광 장로교회의 노 목사가 집회에 대한 광고를 했습니다. “불의 사자 박 장로님 집회에서 저도 불 같은 성신을 받았습니다.” 하며 자신의 체험을 상세히 이야기하면서, “모두들 박 장로님 집회에 가셔서 은혜 많이 받고 오십시오.”라고 하여 신광교회 교인들 대다수가 영등포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남산집회에서 굉장한 은혜를 체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박장로님의 집회가 있기만 하면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 먹어
1955년 4월 27일 여의도 비행장 주변의 모래사장에서 열린 영등포집회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인도하시는 찬송 소리에 큰 감동을 받아

집회가 열리는 첫날인 4월 27일, 어머니와 오빠는 일찍부터 집회장에 가시고 저는 학교 수업을 마친 후 저희 반 반장인 화옥이와 친구 순복이와 함께 집회장으로 향했습니다. 조립식 천막을 연결 가설한 집회장에는 엄청난 인파가 계속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빼곡히 앉아 있었는데, 저와 친구들은 그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단상 위에 마련된 의자에는 윤치영 의원을 비롯한 인사들과 여러 목사들이 앉아 있었고, 어느새 해가 저물어 집회장이 어둑해지자 천막 안에 달린 수많은 전등에 전깃불이 환하게 들어왔습니다.

곧이어 키가 크신 박태선 장로님이 등단하시더니 잠시 기도를 하셨는데, 말쑥한 양복 차림에 단정하게 빗은 머리, 희게 빛나는 얼굴 모습을 뵈면서 ‘저분은 아주 귀하신 분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큰북을 어깨에 메시고 힘차게 북을 치며 찬송을 인도하실 때는 ‘저런 신사 분이 북을 다 치시는구나.’ 싶었습니다. 집회장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은 박 장로님의 인도에 따라 힘차게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불렀는데, 온 마음을 다해 간절하게 부르는 찬송 소리가 제 마음속 깊이 와 닿는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장로교회에 다니며 찬송을 불렀지만 여기서처럼 큰 감동을 느껴 본 적이 없었기에 ‘그동안 나는 형식적으로 찬송을 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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