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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같이 넓은 천막집회장 안에 뽀얗게 이슬성신이 내려

김인안권사(1)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253

저는 1922년 평안남도 순천군 사인면 사인리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독실한 장로교인이셨던 할아버지는 사인리 장로교회의 장로로 재직하시면서 종종 미국인 선교사들을 저희 집에 모셔 와 정성껏 대접하곤 하셨습니다. 저는 열아홉 살 되던 해에 장로교인과 결혼했으며 해방 후에는 이남으로 내려와 서울 돈암동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1950년 육이오전쟁이 일어났을 때 저희 가족은 평택으로 피난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미처 서울도 빠져나가기 전에 폭격이 심하게 퍼부어 잠시 남산으로 몸을 피했는데, 저와 아이들이 먼저 굴속에 들어가고 아직 남편이 굴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 남편 가까이에서 폭탄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 사고로 남편은 청력을 잃고 정신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아 그때부터 완전히 생활력을 잃어버렸으며, 남편을 대신해 제가 일곱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손에 잡히는 대로 채소와 빵을 팔고 삯빨래 등을 하면서 오늘은 어떻게 끼니를 해결할까 하는 걱정이 떠나는 날이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고달프게 일한 후 영등포 피난민촌의 단칸방에 몸을 누이면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근심이 밀려들었습니다. 이북에서 내려와 아무런 생활의 기반이 없는 데다가 남편마저 병들어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5남매 아이들을 키우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제 마음은 무겁고 답답한 한숨뿐이었습니다.

그러던 1955년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당시 저희 이웃에는 저와 같이 영등포 장로교회에 다니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한강 모래사장에서 집회가 열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부흥강사는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으로, 그분이 집회하시는 곳마다 은혜가 내려 수많은 불치병자들의 병이 낫는 등 엄청난 기사이적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훌륭하신 분이라면 집회에 꼭 가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한강 모래사장의 집회 장소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집회장에 도착한 저는 수많은 천막이 바다처럼 펼쳐진 것을 보면서 ‘세상에! 이 넓은 곳에 사람들이 다 채워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천막 안에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서 발 하나 넣을 자리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인파였습니다. 서로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빽빽하게 앉은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 중간쯤에 앉았더니, 잠시 후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등단하셨습니다. 저는 장로님이라고 하여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 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박 장로님은 단정한 양복 차림의 30대 청년이셨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마음 문 여세요.” 하신 후 찬송을 인도하실 때, 한 소절 한 소절 혼신의 힘을 다해 찬송하시는 모습이 제 마음에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간절하게 찬송을 인도하시는 박 장로님을 따라 저도 찬송을 부르면서 ‘나는 그동안 교회에서 형식에 얽매여 겉치레로 찬송을 부른 것이 아닌가.’ 하고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십 번씩 연거푸 찬송을 부르는데도 지루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오히려 자꾸만 더 부르고 싶었습니다.

찬송을 마치신 박 장로님께서는 우렁찬 음성으로 설교를 하셨는데, 설교 시간 처음부터 끝까지 죄에서 떠난 생활을 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이전에는 미처 죄인지 몰랐으나 양심에 어긋나는 죄를 하나하나 분명하게 지적하시는 말씀이 제 마음을 두드려 ‘나는 이제껏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추한 죄 가운데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수십 년 장로교회에 다니고 부흥집회에도 종종 참석했었지만 그런 말씀은 어디서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구나! 하나님을 믿으려면 이렇게 믿어야겠다.’ 하면서 앞으로 죄와 상관없이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 박 장로님께서 안수를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에게 안수를 하시나.’ 하면서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한 사람씩 머리 위에 안수를 하시며 비좁게 앉아 있는 사이를 어쩌면 그리도 빨리 다니시는지, 키가 크신 분이 마치 나비가 훌훌 날아가는 것처럼 가벼워 보여서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땀을 비 오듯 흘리시며 수만 군중에게 안수를 하신 박 장로님께서는 다시 단상에 오르셔서 “은혜를 받아 병이 나은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하고 외치셨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일어나 꼽추가 펴졌다, 벙어리가 말을 한다 하면서 삽시간에 떠들썩해졌고, 그 사람들이 단상에 올라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는 군중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로 집회장이 떠나갈 것 같았습니다.

집회장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향기를 맡았다, 뽀얗게 내리는 이슬은혜를 보았다, 불성신을 받았다 하며 은혜 받은 이야기를 했는데, 저도 그런 은혜를 받아 보고 싶어서 다음 날도 집회장에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집회장이 초만원이라 빈자리가 없었지만, 그날은 꼭 앞자리에 앉고 싶어서 다른 분들에게 양해를 구해 앞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모든 잡념을 내려놓은 후 ‘저에게도 은혜를 주시옵소서.’ 하며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곧이어 찬송을 부를 때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 닿으면서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까지 근심과 걱정으로 거친 풍랑에 시달려 왔던 제 마음이 차츰차츰 잦아들며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눈을 들어 단상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니, 집회장이 새벽안개가 낀 것처럼 온통 뽀얗게 되어 하나님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천막 안에 웬 안개일까? 내 눈이 이상한가?’ 하며 얼른 두 눈을 비비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뽀얀 안개에 가려서 바로 앞사람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설교를 하실 때 단상을 “탁! 탁!” 하며 내리치시자 거기서 화로만 한 불덩어리가 튀어나오더니 사람들에게로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제야 뽀얗게 내리는 이슬은혜와 불성신에 대해 들었던 것이 떠오르면서 ‘내가 본 것이 바로 이슬은혜와 불성신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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