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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향기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정수길 승사(1)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275

저는 1939년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8·15 해방이 되고 월남한 저희 가족은 육이오전쟁 중에 피난 생활을 하다 서울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저는 서울사대부고 2학년 때 휴학을 하고 잠시 부산에서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부산 영락교회를 스스로 찾아 나갔습니다. 사춘기 시절에 전쟁의 혼란과 고달픈 피난 생활을 겪었던 저는 종교를 통해 심적으로 의지할 곳을 찾고 싶었습니다.

부산에서 생활하던 어느 날, 길거리를 지나다가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 부흥집회” 포스터가 전신주에 붙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포스터를 보고 호기심이 생긴 저는 집회 장소인 ‘부산전도관’을 찾아갔는데,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장로교회에서 찬송을 부를 때 한 번도 손뼉을 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광경이 너무나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1시간 후면 박태선 장로님께서 도착하신다고 했으나 저는 그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한강변에 솟은 이만제단의 위용과 수만의 군중이
입추의 여지 없이 모여있는 장관을 보고
부정적 소문만 들었던 나는 크게 놀라

그 후 1959년에 저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과 친구인 재환(故 오재환 권사)이는 전도관에 열심히 다니는 학생으로 저와 자주 신앙 토론을 하곤 했습니다. 재환이는 기회가 될 때마다 전도관의 교리를 설명하며 전도하려고 했지만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가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때 세광 장로교회에 다니고 있었던 저는 “전도관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단이다.” “생수는 박 장로가 손 씻은 물, 발 씻은 물이다.”라는 등의 험한 이야기를 많이 들은 데다가, 당시 신문 지상에서 매일같이 전도관을 부정적으로 다루는 기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친구와 토론을 계속하면서 ‘동방의 일인’과 ‘감람나무’ 등의 전도관 교리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친구의 간곡한 권유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당시 저희 과는 수업과 관련해 야외 현장 학습을 자주 다녔는데, 1960년 어느 일요일에 재환이와 함께 관악산으로 지질 조사를 하러 갔습니다. 관악산에서 저는 재환이가 건네준 신앙촌 캐러멜 한 알을 입에 넣고는 산길을 올라갔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아주 향긋하고 좋은 냄새가 풍기는 것이었습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봤지만 꽃도 없고 그런 향기가 날 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재환이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런 향기를 전혀 맡지 못했다고 하여, 저는 ‘참 이상한 일이군. 분명히 향기가 났는데…….’ 하며 속으로 의아스러웠습니다.

야외 학습을 마친 후 돌아오는 길에 재환이가 청암동에 있는 이만제단으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한강 변 언덕에 우뚝 세워진 이만제단의 위용은 실로 대단했으며, 그곳에 수만 군중이 입추의 여지도 없이 모여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전도관에 대해 부정적인 소문만 들었던 저는 마음 한편으로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눈과 배에 두 손을 살짝 얹으시는 안찰을
내 차례가 되어 처음으로 받는데 고집이 센 내 성품을 지적하셔서 놀라
받고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지고 화가 전혀 올라오지 않아

그날 저는 처음으로 전도관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박태선 장로님께서 설교하실 때 주의를 기울여 들어 봤지만 그 말씀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장로님께서는 쉽게 설명하시는 것 같았으나 저는 단지 말소리가 들릴 뿐 내용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고, 모두들 말씀에 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저 혼자만 아무런 느낌도 없이 맹숭맹숭했습니다. 그렇게 이만제단 예배에 참석한 후로 재환이는 계속 전도관에 다니자며 더욱 적극적으로 전도를 했습니다.

저는 친구의 권유대로 전도관에 가야 할지, 아니면 다니던 장로교회에 계속 가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세광교회에서 밤새워 기도하는 한편으로 목사와 장로를 찾아가 저의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그들은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한다.”라며 전도관에 휩쓸리지 말고 교회나 열심히 다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덮어놓고 전도관은 나쁜 곳이니 가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는 더 이상 속 시원한 해답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계속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안찰을 받아 보라는 재환이의 권유에 못 이겨 저는 재환이와 함께 중구 갑구 제단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제단에 들어서면서 보니 현관 양옆에 물통들이 줄지어 있는데, 거기서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강하게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향기는 전에 신앙촌 캐러멜을 먹었을 때 맡았던 향기였으며 그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관에 놓인 그 물은 박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이었습니다. 예배실 안에 들어가서도 좋은 향기가 계속 진동하여 재환이에게 이야기했더니, 재환이는 그 향기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라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그 향기를 두 번이나 맡았으며 친구의 설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도관에 대해 험한 소리를 많이 들어서인지 여전히 마음 한구석의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도관에서는 향수를 뿌려 놓고 사람들을 미혹한다던데 혹시 향수를 뿌렸나?’ 하며 예배실을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향수를 뿌린다 한들 그렇게 코에 쏟아 붓는 것처럼 진동할 수는 없을 것 같았고, 그 좋은 향기는 여느 향수와는 분명히 차원이 다른 냄새였습니다.

생명물을 실제로 축복 하시는 광경을 직접 보고 나니
기성교회서 ‘발 씻은 물’이라며 중상모략하던 것이
얼마나 악랄한 비방이었나 하는것을 깨달아

그날 중구 갑구 제단에는 안찰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줄을 서서 한 사람씩 안찰을 받는 가운데 안찰하시는 모습을 살펴보니 박 장로님께서는 사람들의 눈과 배 위에 두 손을 살짝 얹었다가 놓으셨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을 때 박 장로님께서는 안찰하시면서 저의 고집이 센 것을 지적하셨으며 “성경을 지독히 파는군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곁에서 보신 것처럼 다 알고 말씀하시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안찰을 받은 후로 저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예전 같으면 화를 냈을 만한 일이 생겨도 속에서 화가 전혀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재환이와 함께 경기도 부천의 소사신앙촌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신앙촌 전경과 거리를 다니는 신앙촌 사람들의 환하고 밝은 표정, 그리고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저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또한 주인 없는 상점이 운영되는 것을 보면서 ‘이곳이야말로 죄를 멀리하는 생활을 하는 곳이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전도관에 대해 알면 알수록 기성교회와 언론에서 말하는 전도관과 실제 전도관은 180°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손 씻은 물, 발 씻은 물’ 운운하던 생명물이 실제는 물통을 향해 “쉭! 쉭!” 하고 축복하시는 것임을 직접 목격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악의적이고 허무맹랑한 비방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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