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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려

2019 추수감사절 사진전시실
발행일 발행호수 2576
2019 추수감사절 사진전시실에는 1950년대 후반 소사신앙촌 포도밭에서 포도 재배하는 모습의 사진이 전시되어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모습을 소개한 본지 탐방 기사와 소사신앙촌 농장의 추억이 담긴 신앙체험기를 정리했습니다.

소사신앙촌 포도밭에서 포도 재배하는 모습(1950년대 후반)

첫 번째 신앙의 울타리, 소사신앙촌. 신앙촌은 1957년 하나님께서 소사신앙촌을 건설하시며 최초로 명명하신 것으로, 이후 백과사전을 비롯한 각종 문헌에서 천부교와 관련된 고유명사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이 끝난 후 온 나라가 빈곤에 허덕이던 1950년대 후반 하나님께서는 신앙촌을 건설하셨습니다. 오만제단을 비롯한 종교시설과 함께 주택과 생산공장을 건설하셔서 교인들에게 신앙의 터전일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삶의 기반을 만들어주셨습니다.

1960년 8월 22일자부터 10월 24일자 신앙신보에는 총 8회에 걸쳐 소사신앙촌 탐방 기사가 연재되어 당시 생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 1960년 10월 17일자 신앙신보에는 소사신앙촌 탐방기 농장편이 다음과 같이 실렸습니다.

1960년대 9월 26일자 신앙신보에 실린 소사신앙촌 탐방기

“「시온농장」―전답 합해 6만여 평의 광대한 지역에서 수확되는 양곡은 15만 신앙촌 주민들의 급식이 되고 있는바 사실상 신앙촌 건설에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1957년 2월경 처음 신앙촌 농장으로 화한 후 기계적인 특수재배 등 종전과는 현저한 수확을 보았는데 특히 포도원의 소득 양은 크다 하며 충해나 자연적인 피해 같은 것은 극히 적다고 한다. 다년간 농업에 종사하여 조예가 깊은 도일경(都日敬=중국인) 집사의 인솔하에 남녀 70여 명의 종업원이 종사하고 있는바 황소가 세 마리, 그 외에 기계화한 농구가 갖추어져 있다.

또한 농원 한쪽에는 양어장이 있는데, 순 금붕어만 해서 현재 2만여 마리를 기르고 있다. 약 5백 평의 논을 적당히 파 가지고 여러 종류의 고기를 따로 따로 분배해 놓았다. 3년 전에 처음 시작할 때는 겨우 200마리를 구해다 놓았었다고 하는데 그간 고충도 많았으나 지금은 순조롭게 되어가고 있어 어장 안의 고기들을 시가로 따지면 상당한 액수가 되리라고 한다.

이 농장에서는 또한 신앙촌 내 2구 제3직매소를 경영하고 있는데, 소위 신앙촌 안에서는 백화점이라는 곳으로 모든 농작물이 다 진열되어 있다. 장소는 다르지만 괴안리 산비탈에는 약 천여 평의 양계장이 있다. 신앙촌 공장에서 사용되는 달걀을 공급해 주고 있는 이 양계장에는 산란을 목적으로 하여 주로「레구옹」만 2000수를 기르고 있다.

앞으로 신앙촌이 확장됨에 따라 이 농장의 발전은 더욱 기대되고 있다 하는데 주민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지를 확보하는 것이 선결 문제로 현재 집약 농업에 있어 최대의 수확을 목표로 실험 연구한 바가 많다고 하는바 내다보이는 경인 간의 넓은 평야를 바라볼 때 농장의 발전이 더욱 기대된다.”

◆ ‘어떻게 이런 곳에 심나?’

1957년에 소사에서 여청 총무로 일을 할 때인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정문 밖에 배추를 심으라.” 하셔서 나가 살펴보니, 완전히 자갈밭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심나?’ 하고 당혹스러웠지만, ‘심으라 하셨으니 심자.’ 하고 배추, 무, 고구마 등을 심었다. 거의 돌을 들고 그 밑에 씨를 놓아 둔 것에 지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가을에 그 자갈밭에서 하나에 1관이 넘는 고구마, 배추, 그리고 손으로 뽑기 힘들 정도의 무를 수확했습니다.

그 다음 하나님께서 옥중에 계실 때인 1959년에도 심었는데, 그때는 배추가 3포기쯤 나오다가 말라 죽고, 고구마는 씨도 못 건졌습니다. 옥중에서 나오신 하나님께서 “금년에도 많이 뽑아 먹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 축복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하려고 그러신 거라고 하셨습니다.

김도삼 승사

◆ 하루하루가 기쁘고 감사해

저는 1962년경 소사신앙촌에 입주하여 농장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촌은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신앙인의 마을이었습니다. 노구산 정상에는 오만제단이 있었고 학교와 주택, 공장까지 갖춰져 있었습니다. 늘 그리던 신앙촌에서 살게 되니 하루하루가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지게를 져도 하나도 무겁지 않아서 훌훌 날듯이 뛰어다니며 ‘지게가 아니라 날개구나.’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과수원에서 일했던 저는 농장에서 하는 일이 익숙했지만 신앙촌에서 하는 일은 의미가 달랐습니다. 이 일을 하며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세상의 어떤 일보다 소중하게 느껴졌으며, 남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일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무거운 지게를 먼저 지려고 하고 힘든 일을 서로 하려고 했습니다.

안진옥/기장신앙촌

1958년 가을 소사신앙촌 농장에서 무 수확하는 모습

◆ 찬송가를 부르며 힘차게 일해

1956년경 당시 제가 일하던 농가의 주인아저씨는 도일경이라는 중국인으로, 어려서 한국으로 이주해 한국인과 다름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일도 잘하고 건강하던 그분이 어느 날부터 이상하게 속에서 열이 올라온다고 했는데, 평소에 멀쩡하다가도 어느 순간 계란만 한 불덩어리가 가슴에서 목구멍까지 치받는다며 그때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어떡하든 고쳐 보려고 여기저기 병원을 다녔지만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니 더욱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저는 전도관에서 하나님께 안찰을 받고 병이 나은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거동을 못해 들것에 실려 올 정도로 상태가 중했던 환자들이 안찰을 받은 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정상인과 다름없이 된 것을 많이 보았던 것입니다. 주인아저씨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며 안찰을 받아 보라고 권유했더니 선뜻 가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그다음 주 일요일예배에 참석해 안찰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슴과 배에 살짝 손을 대시며 안찰하셨을 뿐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안찰하신 부위에는 시커먼 손자국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병원을 여러 곳 다녀도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했던 아저씨의 증상은 안찰을 받은 후부터 깨끗하게 없어져 완전히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 후 주인아저씨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소사신앙촌 내의 농장 책임자로 임명받았으며, 소사신앙촌이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전인 1957년 2월경 농장이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1957년 당시는 전국 방방곡곡에 전도관이 개관되던 때로, 제가 살고 있는 평택에도 전도관이 세워져 저는 아이들과 함께 평택전도관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늘 소망하던 소사신앙촌에 입주해 농장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농장은 농작물 재배, 양계장과 양어장 운영 등 다양한 일을 하며 농작물만 해도 각종 곡류와 채소, 과일까지 재배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땅에서 뽑기 힘들 정도의 튼실한 무와 배추, 팔뚝보다 굵은 고구마 등 보기 드문 대풍을 이루어, 신앙신보에 “대풍 이룬 농작물”이라는 기사가 실린 적도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찬송 소리가 울리는 신앙촌에서 농장 직원들은 찬송가를 부르며 힘차게 괭이질을 했습니다. 가을날 잘 익은 벼 이삭을 바라볼 때면 만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가슴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이지수 집사/기장신앙촌

◆ ‘신앙인이 사는 곳은 다르구나!’

1957년 당시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이 건설되면서 많은 교인들이 입주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동창이 소사신앙촌에 있어서 주말이면 친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신앙촌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가 아주 달고 맛있어서 친구와 실컷 먹었던 일과 주인 없는 상점에서 물건을 샀던 일이 기억에 선합니다. 주인 없는 상점에서 나간 물건과 들어온 돈을 맞춰 보면 꼭꼭 맞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깥에는 주인이 있어도 물건을 집어 가는데 역시 신앙인이 사는 곳이라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한번은 소사신앙촌 오만제단 예배에 참석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길가에 떨어진 못이라도 자기 집에 가져가 박지 마세요. 회사에서 받은 출장비가 남아 부지불식간에 1원이라도 주머니에 넣으면 도적죄가 됩니다.” 하셨습니다. 큰 것만이 죄가 아니라 양심의 법을 지켜서 작은 죄라도 멀리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 마음 깊이 와 닿았습니다.

손정숙 권사/기장신앙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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