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민 전직 관장 편 ② 이슬성신의 주인공이신 감람나무를 깨닫다
2. 군산 집회의 기억몰려오는 교인들 때문에 방이 좁아 부득이 집회장소를 옮겨야 하겠기에 대책을 논의한 끝에 새 제단을 신축하기로 합의한 후 대지 물색에 들어갔습니다. 한 달 후에 모아진 헌금으로 제가 다니던 교회당 맞은편 산등에 부지 200평을 구입하고 새 제단 신축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군산 집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성교회에서 나온 식구 모두 찾아가 참석을 했습니다. 그날 밤 집회를 마친 후에 사택에서 안찰을 해주신다 하기에 들어가 제가 영산포 교회 전도사 출신이라는 신분을 밝히고 인사를 드린 후 처음 누워서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산포교회 전도사에서
전향한 후 군산집회 참석
처음으로 안찰을 받는데
송곳으로 찌르는 듯 아파
하나님의 손이 내 양 눈에 닿자마자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으며 통증이 좀 덜 해 질 무
렵 배에 손이 닿자 불쑥 대항하는 힘이 치솟는 것을 느낄 때 “이곳은 혈기, 이곳은 고집, 이곳은 정욕”하고 죄의 소재를 지적 하시는데 칼로 째는 듯이 아팠습니다.
그러자 “이제 소멸된다. 소멸된다”하고 말씀하시는 순간 그렇게 아프던 통증은 사라지고 시원함을 느끼는데 손을 떼시며 “앞으로 세 번만 더 받으면 완전 소멸될 겁니다” 하시며 “일어나라” 하시는데 너무 아파 엉금 엉금 기어 나왔습니다.
이렇게 확실한 은혜의 체험을 하고나니 마음에는 평화가 넘쳐 나고 입술에는 찬송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참 목자의 손
성경 사도행전 8장을 읽어보면 기독교 초창기 때 베드로와 요한이 “손으로 무리에게 안찰함에 즉시 성신을 받은지라”라고 한 성구를 읽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체험은 하지 못하고 전할 뿐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의
죄를 지적하시고 또
소멸해 주시는
감람나무의 권능
그러자 ‘불의 사자’가 나타나시어 손으로 직접 안찰 하시면서 처음 본 사람의 죄를 지적하시고 그 죄를 소멸해 주신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보니 그 분이 곧 우리 죄의 병을 안아맡아 치료하실 수 있는 영적 의사임을 깨달았습니다.
구약 성경의 주인으로 자처한 예수도 죄를 구분하지 못했으며 죄 사하는 방법도 몰랐고 덮어 놓고 자기만 믿으면 구원 얻는다고 하다가 당시 유태교의 입장에서 볼 때 교리에 맞지 않는 이단의 괴수이기에 십자가 형틀에 못 박아 사형시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향취와 이슬성신의 근거
집회 때 많은 사람들이 ‘향취’ 체험을 하고 천막 안에 안개와 같이 자욱이 내리는 ‘이슬성신’을 육안으로 보고 직접 사진기로 촬영하였을 때 본 그대로 나타난 영상을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단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집회 때 체험한 향취와 이슬 같은 은혜를 미리 예언해 놓은 성경구절이 있다”고 하시며 그 말씀의 주인공이 곧 이사야 41장의 ‘동방의 의인’이며, ‘감람나무’와 같은 사람이며 그분을 통해 내리는 은혜가 이슬성신임이 호세아 14장에 기록돼 있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참 목자를 찾는 길
이 두 곳 예언서의 주인공이 한반도에 나타나실 것을 “내가 한 사람을 북방에서 일으켜 오매 저는 해 돋는 곳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자라”하였고, 이 동방의 의인이 나타나 증거 하실 때 향취를 맡게 될 것을 ‘그 향취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라고 하시며 “이런 일을 누가 지혜가 있어 깨닫겠느냐. 오직 그 주인공이 나타나시어 증거 하실 때 체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다시 풀이하면 ‘이스라엘’은 ‘이긴자’를 상징하고 ‘감람나무에게 임하는 이슬과 같은 성신’은 곧 ‘하나님의 신’인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슬성신을 내리는 감람나무는 곧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암시하셨지만 그 때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부르던 찬송가 64장 2절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길도 없이 거친 넓은 들에서 갈 길 못 찾아 애쓰며 이리 저리로 헤매는 내 모양 저 원수 조롱하도다.” 이 찬송가 가사를 놓고 우리의 선한 목자께서 고쳐 부르라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향취와 이슬성신 은혜의
주인공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동방의 의인이요
감람나무이심을 밝혀주셔
지금 기성교회 교인들은 영적으로 소경된 삯꾼 목자를 따라가기에 내 길의 원근을 분명히 몰라 이리 저리로 헤매이지만 우리는 구원의 길을 분명히 찾았고 알고 가는 중이니 ‘헤매는 내 모양’이 아니라 ‘헤매는 저 모양’으로 고쳐 부르라 하셨기에 고쳐 불렀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 구절도 부르지 않습니다.
또 찬송가 511장 4절 “내 길의 원근을 분명히 아오니 내주여 길 다 가도록 날 함께 합소서”의 가사 중 ‘분명히 아오니’는 원래는 ‘분명히 모르니’로 기록되어 불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거짓 목자 따라가면 천국에 가는 길을 분명히 모르기에 모른다고 찬송하지만 우리는 참 목자를 통해 은혜 받아 죄씻음 받은 후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고로 분명히 알겠지요?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가사를 ‘분명히 아오니’로 고쳐 부르세요”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