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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민 전직 관장 편 ② 이슬성신의 주인공이신 감람나무를 깨닫다

2. 군산 집회의 기억
발행일 발행호수 2315

1956년 군산 천막집회가 있었던 개복동 야산에는 지금 현재 영광학원이 들어서 있다. 지금도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야 하는데 왼쪽 아래 방향에 교문이 있다.

몰려오는 교인들 때문에 방이 좁아 부득이 집회장소를 옮겨야 하겠기에 대책을 논의한 끝에 새 제단을 신축하기로 합의한 후 대지 물색에 들어갔습니다. 한 달 후에 모아진 헌금으로 제가 다니던 교회당 맞은편 산등에 부지 200평을 구입하고 새 제단 신축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군산 집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성교회에서 나온 식구 모두 찾아가 참석을 했습니다. 그날 밤 집회를 마친 후에 사택에서 안찰을 해주신다 하기에 들어가 제가 영산포 교회 전도사 출신이라는 신분을 밝히고 인사를 드린 후 처음 누워서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산포교회 전도사에서
전향한 후 군산집회 참석
처음으로 안찰을 받는데
송곳으로 찌르는 듯 아파

하나님의 손이 내 양 눈에 닿자마자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으며 통증이 좀 덜 해 질 무
렵 배에 손이 닿자 불쑥 대항하는 힘이 치솟는 것을 느낄 때 “이곳은 혈기, 이곳은 고집, 이곳은 정욕”하고 죄의 소재를 지적 하시는데 칼로 째는 듯이 아팠습니다.

그러자 “이제 소멸된다. 소멸된다”하고 말씀하시는 순간 그렇게 아프던 통증은 사라지고 시원함을 느끼는데 손을 떼시며 “앞으로 세 번만 더 받으면 완전 소멸될 겁니다” 하시며 “일어나라” 하시는데 너무 아파 엉금 엉금 기어 나왔습니다.
이렇게 확실한 은혜의 체험을 하고나니 마음에는 평화가 넘쳐 나고 입술에는 찬송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참 목자의 손
성경 사도행전 8장을 읽어보면 기독교 초창기 때 베드로와 요한이 “손으로 무리에게 안찰함에 즉시 성신을 받은지라”라고 한 성구를 읽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체험은 하지 못하고 전할 뿐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의
죄를 지적하시고 또
소멸해 주시는
감람나무의 권능

그러자 ‘불의 사자’가 나타나시어 손으로 직접 안찰 하시면서 처음 본 사람의 죄를 지적하시고 그 죄를 소멸해 주신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보니 그 분이 곧 우리 죄의 병을 안아맡아 치료하실 수 있는 영적 의사임을 깨달았습니다.

구약 성경의 주인으로 자처한 예수도 죄를 구분하지 못했으며 죄 사하는 방법도 몰랐고 덮어 놓고 자기만 믿으면 구원 얻는다고 하다가 당시 유태교의 입장에서 볼 때 교리에 맞지 않는 이단의 괴수이기에 십자가 형틀에 못 박아 사형시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향취와 이슬성신의 근거
집회 때 많은 사람들이 ‘향취’ 체험을 하고 천막 안에 안개와 같이 자욱이 내리는 ‘이슬성신’을 육안으로 보고 직접 사진기로 촬영하였을 때 본 그대로 나타난 영상을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단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집회 때 체험한 향취와 이슬 같은 은혜를 미리 예언해 놓은 성경구절이 있다”고 하시며 그 말씀의 주인공이 곧 이사야 41장의 ‘동방의 의인’이며, ‘감람나무’와 같은 사람이며 그분을 통해 내리는 은혜가 이슬성신임이 호세아 14장에 기록돼 있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참 목자를 찾는 길
이 두 곳 예언서의 주인공이 한반도에 나타나실 것을 “내가 한 사람을 북방에서 일으켜 오매 저는 해 돋는 곳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자라”하였고, 이 동방의 의인이 나타나 증거 하실 때 향취를 맡게 될 것을 ‘그 향취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라고 하시며 “이런 일을 누가 지혜가 있어 깨닫겠느냐. 오직 그 주인공이 나타나시어 증거 하실 때 체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다시 풀이하면 ‘이스라엘’은 ‘이긴자’를 상징하고 ‘감람나무에게 임하는 이슬과 같은 성신’은 곧 ‘하나님의 신’인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슬성신을 내리는 감람나무는 곧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암시하셨지만 그 때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부르던 찬송가 64장 2절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길도 없이 거친 넓은 들에서 갈 길 못 찾아 애쓰며 이리 저리로 헤매는 내 모양 저 원수 조롱하도다.” 이 찬송가 가사를 놓고 우리의 선한 목자께서 고쳐 부르라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향취와 이슬성신 은혜의
주인공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동방의 의인이요
감람나무이심을 밝혀주셔

지금 기성교회 교인들은 영적으로 소경된 삯꾼 목자를 따라가기에 내 길의 원근을 분명히 몰라 이리 저리로 헤매이지만 우리는 구원의 길을 분명히 찾았고 알고 가는 중이니 ‘헤매는 내 모양’이 아니라 ‘헤매는 저 모양’으로 고쳐 부르라 하셨기에 고쳐 불렀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 구절도 부르지 않습니다.

또 찬송가 511장 4절 “내 길의 원근을 분명히 아오니 내주여 길 다 가도록 날 함께 합소서”의 가사 중 ‘분명히 아오니’는 원래는 ‘분명히 모르니’로 기록되어 불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거짓 목자 따라가면 천국에 가는 길을 분명히 모르기에 모른다고 찬송하지만 우리는 참 목자를 통해 은혜 받아 죄씻음 받은 후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고로 분명히 알겠지요?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가사를 ‘분명히 아오니’로 고쳐 부르세요”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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