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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윤 전직 관장 편 ② 특별 안찰을 받고 하늘을 날듯 가벼웠던 발걸음

특별 안찰을 받고 하늘을 날듯 가벼웠던 발걸음
발행일 발행호수 2295

서울 중앙 전도관 모습

얼마 후 원효로 3가 구제단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의 집이 원효로 2가에 있었기에 매일 새벽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안찰을 받았습니다. 좀 아팠습니다. 두 번째 안찰 받을 적에는 하나님께서 가슴을 50번 정도 쳐 주셨는데 손이 아파 손을 비비시고 한참 흔드신 다음 또 쳐주셨습니다.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수고로우심이 너무나 크신 것을 보고 제 가슴이 매우 아팠습니다. 안찰 받은 가슴이 노란색으로 변하여 일주일정도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특별 안찰을 받은 다음부터 발걸음이 왜 그렇게도 가벼운지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전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같은 과에 다니는 친구에게 제단 나올 것을 권했습니다. 친구는 선뜻 허락을 하였습니다. 그 친구가 우연히 안찰을 받게 되었는데 안찰을 받는 동안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거의 죽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안찰을 받은 친구는 머리와 이마에 도깨비 방망이 같은 혹이 여러 개가 튀어 나왔습니다. 겨우 일으켜 세워 가지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교회 다니냐고 물어보았더니 통○교회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통○교회가 영적으로 무서운 단체인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 무서운 악령인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주일학교 반사를 하며 점점 은혜에 빠져
어느 날 하나님 얼굴 주위에 광채가 빛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게 돼

저는 구제단에서 주일학교 반사 일을 보면서 은혜에 점점 빠져 들게 되었습니다. 어느 새벽예배 때의 일입니다. 정말 은혜스러운 예배시간이었습니다. 영광 돌리고 예배가 끝날 때였습니다. 제가 단상을 쳐다보았을 때 하나님의 얼굴 주위에 30센티 이상의 광채가 빛나 영광으로 드리워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도 기이하고 놀라워서 사택으로 들어가실 때까지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영광을 본 후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장로님이라는 명칭으로 불렀는데 너무나 어설프고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때도 다른 영광스러운 존함이 있어야 할 텐데 하고 아쉬워하였습니다. 구제단은 식구가 차고 넘쳐서 주일예배는 밖에까지 앉아서 예배를 드릴 정도였습니다. 그 후 이만제단이 건립되었고 그 때부터 영모님으로 존함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만제단이 건축된 이후 가장 큰 장로 장립식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슬 같은 은혜가 폭포수와 같이 내렸습니다. 여태까지 그런 큰 은혜를 내린 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 윤재춘관장님이 7번째 교역자로, 저는 8번째 교역자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발령을 받고 1957년 6월 10일자로 경기도 안성에 부임하였습니다. 식구는 15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예배드리는 첫날부터 은혜가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일마다 식구가 늘어서 2달 만에 거의 40여명이 되었습니다. 식구들끼리 서로 화목하게 지내도록 하며 전도에 힘썼습니다. 그렇게 2달이 지났는데 순천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식구들과 헤어지기를 아쉬워하면서 순천으로 향하였습니다. 순천은 하나님께서 순회하시는 예정에 들어가 있는 큰 전도관이었습니다. 순천 땅은 하나님께서 지방 순회집회를 하실 때 그렇게 극렬하게 반대하지 않은 곳이기도 합니다. 순천은 조용한 교육도시였던 것입니다.

그때 순천읍내 중앙 사거리에 나가면 어떤 미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서서 히죽히죽 웃으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기도 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웃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을 믿는 내가 그 옆으로 지나가면 어떤 반응이 나오나 하고 옆으로 가까이 지나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계속해서 뒤로 물러서며 저를 보면서 멀리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제 생각에 ‘내 속에 성신이 함께하시는구나’하고 몹시 기뻐하였습니다.

순천역을 떠나는 기차가 모퉁이를 돌아 교인들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 흔들어 주시던
하나님 모습에 눈물 글썽이던 그 시절 생각나

하나님께서는 순천에 오셔서 많은 사람들을 안찰하시고 그 다음날 순천제단에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때는 무더운 삼복더위였습니다. 온몸이 땀으로 젖으신 하나님께서는 옷을 갈아 입으시고 곧 기차로 서울로 향하시곤 했습니다. 저는 기차역까지 하나님을 배웅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맨 뒷칸으로 나오셔서 기차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눈물을 글썽이며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실 때까지 손을 흔들었습니다.

지금은 순천 서울 기차 시간이 3시간대이지만 그때는 보통 10시간정도 이상 타야 했습니다. 한번 기차를 타면 얼굴에는 석탄재로 새카맣게 되곤 했습니다. 요즈음과 달리 당시에는 서울에서 순천을 왕복하는 교통편마저 너무도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말씀을 전파하시고 새 생명을 부어 주시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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