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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지켜서 그 세계 같이 가자 하신 인애한 하나님 음성

김영희 권사(3)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173

<지난호에 이어서>

소사신앙촌에 큰 우물을 건설할 때, 새벽예배를 마친 후 돌 하나씩을 이고 우물 짓는 곳으로 가져가면 하나님께서 인자한 얼굴로 맞아 주시며 안수해 주셨습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하나도 빼놓지 않으시고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안수해 주시던 하나님. 저는 돌을 여러 개 챙겨 놓았다가 이고 가서 안수를 여러 번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희생과 수고는 까맣게 모르고 은혜 받는 기쁨에 좋아했던 철없는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죄송할 뿐이지만 그때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영어의 몸이 되신 후에도 오히려 가지들을 염려하시며
매일 머리맡에 물을 떠 놓으면 축복해 주시던 하나님
그때 내 영혼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절실히 깨달아

소사신앙촌에서 살면서 저는 ‘하나님을 놓치지 말고 꼭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처절한 6·25 전쟁으로 황폐해진 속에서 끼니를 잇기도 어려웠는데, 신앙촌에서는 여러 제품을 활발하게 생산해 의식주를 해결한 것은 물론이고 날마다 허락해 주시는 은혜 속에서 기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토록 큰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따라야겠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생활하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이 되셨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완전한 의지처인 하나님께서 옥에 가신 후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지들을 염려하신 하나님께서는 매일 머리맡에 물을 떠 놓으라 하시며 그 물에 영적으로 축복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축복하신 생명물을 마시면서 “영적 엄마 감람나무 언제 오시나~” 하는 찬송을 목이 메게 불렀습니다. 당시는 하나님을 영적인 어머니라는 뜻에서 영모님이라고 했는데, 그때 비로소 나의 영혼을 지켜 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분이심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의 옥고를 치르신 하나님께서는 1962년 영어에서 돌아오시자마자 덕소신앙촌 건설을 시작하셨습니다. 소사신앙촌에서부터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며 소비조합을 했던 저는, 덕소에 1차로 입주한 후에도 소비조합을 계속했습니다. 덕소신앙촌은 맑고 푸른 한강 줄기를 따라 세련된 양옥들이 늘어서 참 아름다운 풍경이었고, 가끔씩 한강에 소풍 나온 사람들이 “저기가 별장이냐?”며 묻기도 했습니다.
웅대한 규모의 덕소 제단을 지을 때는 덕소신앙촌 사람들이 건축에 필요한 자갈을 한강에서 모으는 작업을 했습니다. 두 반으로 나누어 서로 경쟁하며 자갈을 모았는데 이긴 반에게는 하나님께서 안찰을 해 주셨습니다. 돌아보면 신앙촌의 모든 건설을 하나님께서 다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은혜를 무슨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하루는 하나님과 함께 배를 타고 자갈이 있는 곳까지 가는데 하나님께서 “신앙촌이 참 좋지?” 하고 물으셨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이 경쟁이라도 하는 듯이 “네!” 하고 앞 다투어 대답하자, 하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그 세계에 가면 비교할 수 없이 좋아.”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저희들은 “꼭 가야지요!” 하면서 어린애들처럼 기뻐하며 좋아했습니다. 항상 천국의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덕소신앙촌에서 계속 살면서 저는 장례반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입관예배를 드릴 때 다른 장례반 분들과 함께 생명물로 시신을 씻기고 수의를 입혀 입관하는 일이었습니다. 20년 가까이 장례반을 하면서 뻣뻣하게 굳고 흉하게 된 시신이 생명물로 씻긴 후 노긋노긋 부드러워지고 뽀얗게 피어나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특히 입술과 볼에 발갛게 핏기가 감돌며 생긋 미소를 머금은 시신을 볼 때면 저도 따라서 빙긋이 웃곤 했습니다. 편안하게 잠을 자는 듯한 모습으로 아름답게 핀 시신을 입관할 때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드렸습니다.
1983년에는 덕소신앙촌에서 저와 함께 사셨던 어머니(故 강귀남)가 82세를 일기로 돌아가셔서 제가 시신을 씻겨 드렸습니다. 굳어 있던 시신은 생명물로 씻긴 후 전신이 부드럽게 움직여서 생전에 옷을 입혀 드릴 때와 똑같이 팔다리를 움직여 수의를 입혔으며, 누런빛을 띠던 피부색 또한 뽀얗고 곱게 피었습니다. 어머니와 이별하는 그때, 저는 예쁘게 핀 모습을 보면서 평안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보내 드릴 수 있었습니다.
2003년에 기장신앙촌에 입주한 저는 양로원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깨끗하고 따뜻한 양로원에는 신앙촌의 젊은이들이 자주 와서 갖가지 행사를 하는데, 그때마다 할머니와 젊은이들 모두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즐거워합니다. 조용히 산책하는 시간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신앙촌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신앙촌에서 살아온 제가 얼마나 크나큰 복을 누리고 있는지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오늘도 가슴 깊이 되새기며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꼭 지키고 따라서 그 세계 같이 가자 하시던 하나님. 그 인애하신 음성이 한없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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