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떨어진 못이라도 자기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말라
황숙주 권사(3) / 덕소신앙촌이듬해인 1957년에는 서울 청암동에 큰 전도관이 세워졌습니다. 이만 명을 수용할 수 있어서 이만제단이라고 불렀는데 매 주일 이만제단이 꽉 차도록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부터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이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건설되는 신앙촌 소식을 들으며 저는 신앙인들이 함께 사는 마을에 들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단에 열심히 다니셨던 어머니도 신앙촌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 후 1958년 1월 드디어 어머니와 함께 소사신앙촌에 입주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젊으실 때부터 두통이 심해서 뇌신이라는 두통약을 자주 드셨습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고 하시며 약을 먹어야 그나마 견딜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소사신앙촌에 입주한 뒤로 어머니가 약을 안 드시는 것 같아서 여쭤 봤더니, 어머니는 신앙촌에 들어온 날부터 머리가 전혀 아프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통 때문에 뇌신이 꼭 필요한 상비약이었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다며 활짝 웃으셨습니다. 그 후로 어머니는 두통을 앓는 일이 없으셨습니다.
소사신앙촌의 주인 없는 상점에서는
하루 종일 판매한 후 나간 물건과
들어온 돈을 맞춰 보면 정확히 맞아
신앙촌 사람들은 자유율법 지키기 때문
소사신앙촌에는 주인 없는 상점이 있었습니다. 갖가지 물건을 진열해 놓은 후 돈을 받는 사람이 따로 없이 각자가 물건을 사고 물건 값을 지불하는 상점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판매한 후 나간 물건과 들어온 돈을 맞춰 보면 정확히 맞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길가에 떨어진 못이라도 자기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말라.” 하셨기 때문에 신앙촌 사람들은 그 말씀대로 살고자 했습니다.
신앙촌에 들어온 후로 저는 자유율법에 대한 하나님 말씀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도 자유율법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 신앙촌에 들어온 후로는 “생각과 마음으로도 죄를 짓지 말라.” 하시는 말씀이 가슴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행동뿐 아니라 마음과 생각까지 다스리는 자유율법은 세상의 어떤 법보다 차원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자유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유율법을 지켜서 죄를 짓지 않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생각과 마음으로도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생각과 마음으로도 죄를 짓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이 가슴 깊이 와 닿아
자유율법은 세상의 어떤 법보다 차원이 높고 그 법을 온전히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신 말씀대로 생각과 마음으로도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
1962년 덕소신앙촌이 건설되면서 저는 어머니와 함께 덕소신앙촌에 입주했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 줄기를 따라 건설된 덕소신앙촌은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파스텔 빛깔의 타일을 바른 2층 주택은 외국의 별장 같았고, 곳곳에 꽃들이 활짝 피어 꽃동산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덕소신앙촌의 시온국민학교에는 어린이 합창단이 있어서 합창단이 종종 화음을 맞춰 찬송을 부르곤 했습니다. 시원한 강바람에 아이들의 찬송 소리가 실려 오면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덕소에서 오랫동안 교사로 활동하면서 시온국민학교를 거쳐 시온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후 1981년 하나님께서는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습니다. 이슬 같은 은혜를 내려서 죄를 씻어 주시는 감람나무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그때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초창기 원효로제단에서 이슬 같은 은혜와 감람나무에 대해 설명하시던 하나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누구든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성경 구절을 쉽게 설명하시던 모습, 문답식으로 하나하나 묻고 답하며 가르치시던 모습, 그리고 ‘내가 바로 감람나무’라고 하시며 힘차게 외치시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습니다. 그동안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며 마냥 기쁘기만 했는데, 우리를 깨우치시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리신 하나님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없이 크고 넓다는 것을 그때 느끼게 되었습니다.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실 때
은혜를 받고 기뻐하기만 하던 우리를
깨우치시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리신
하나님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헤아려
지난 2002년에는 저희 어머니(故 김진옥 권사)가 92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남산집회에 참석하신 후로 평생 이 길을 걸으며 진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애쓰셨습니다. 어머니가 운명하신 후에는 덕소신앙촌 관장님과 교인들이 오셔서 입관예배를 드렸습니다. 찬송을 부르는 가운데 장례반 권사님들이 생명물로 시신을 깨끗이 닦아 주었습니다. 다 씻긴 후에 어머니를 보니 입술에 발그스름하게 혈색이 감돌고 온몸이 노긋노긋 부드러워서 살아 계신 분 같았습니다. 피부도 맑고 뽀얗게 피어나 90세가 넘은 어머니가 아주 젊고 예뻐 보였습니다. 저는 주무시는 것처럼 편안한 어머니 모습을 보며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남산의 기나긴 돌계단을 올라가 천막집회에 참석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여든이 넘는 나이가 되었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은 소망은 언제나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백합화같이 성결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자를 가장 귀하게 여기신다는 말씀을 오늘도 가슴에 새겨 봅니다. 죄를 멀리하며 맑고 성결한 자격을 갖추어서 그 아름다운 세계에 갈 수 있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황숙주 권사님 신앙체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