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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성신의 역사를 돌아보다

64년 전 오늘, 인천에서 성료된 하나님의 첫 번째 천막집회
발행일 발행호수 2572
1955년 9월 16일부터 22일까지 인천 동산중학교 운동장에서 하나님 집회가 열렸다. 인천에서 개최된 첫 번째 천막집회였다. 당시 동산중학교 운동장은 인천에서 가장 넓은 공터(10,760평)로 현재 잠실 야구장의 1.3배에 이를 정도였다. 이곳에 인파가 입추의 여지 없이 운집해 예배를 드렸다. 집회 중에 때 아닌 폭우가 내렸으나 아랑곳없이 더 많은 참석자가 몰려왔고 5일 예정이었던 집회는 일주일로 연장됐다.

인천 동산중학교 집회(1955. 9. 16.~ 22.) 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의 모습

◆ 인천 동산중학교 집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이었습니다.

1955년 9월 동산중학교 집회장에 가 보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마니를 깔고 앉아 있었습니다. 비가 와서 땅이 질척질척한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기도에만 열중하는데 저는 축축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무척이나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찬송을 부를 때 사람들이 힘차게 손뼉을 치는데, 저는 교회에 다녔어도 찬송을 부르면서 손뼉을 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너무도 어색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데가 있나. 예배 시간에 요란스럽게 손뼉을 치다니.’ 저는 저녁예배만 끝나면 얼른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찬송을 한창 부를 때였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단상을 “쾅!” 하고 내려치시자, 거기서 불덩어리가 번쩍번쩍하며 튀어나와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로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란 나머지 “어머! 단상에서 불이 나와요!” 하고 소리쳤는데, 그때 앞자리의 할머님이 저를 보시더니 “새댁이 은혜를 받네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마음 문 여세요. 마음 문을 열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시면서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하는 찬송을 힘차게 인도하셨습니다. 찬송을 하던 어느 순간 아주 향긋하고 좋은 냄새가 머리 위에서 들이붓는 것처럼 진하게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이 어떻게나 기쁜지 마치 커다란 기쁨이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기쁘고 좋았던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져서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었고, 그대로 훨훨 날아서 구름 위에라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녁예배를 마친 후에도 사람들은 집회장에 그대로 남아서 밤을 새웠습니다. 저는 집회장에서 철야를 하는 동안에도 자꾸만 마음속에 기쁨이 샘솟아 나서, ‘나만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빨리 집에 가서 어머니도 오시게 해야겠다.’ 하며 새벽 4시에 통행금지가 풀리자마자 집회장을 빠져나왔습니다.

논현동에 있는 저희 집까지는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렸는데, 아직 버스나 기차가 다니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얼른 집에 가야 된다는 생각에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기찻길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빠를 것 같아서 집으로 향하는 기찻길을 따라 송도역에서 소래역까지 있는 힘껏 뛰었습니다. 찬송을 부르며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달리는데도 전혀 숨이 차지 않았고 새처럼 훨훨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그 기쁨과 즐거움은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채은주 권사

1956. 12. 28. 인천 숭의동에 완공된 인천전도관의 모습. 산억덕의 웅장한 전도관은 인천 시내 어디에서나 한눈에 보였다.

◆ 인천전도관, 은혜를 직접 체험하며 참길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25세이던 1955년 목사가 되기 위해 인천에서 성경학교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하루는 목사가 전날 동산중학교에서 열린 부흥집회에 갔던 학생들을 일으켜 세우며 “박태선 장로는 자기 집회 때 죄 타는 냄새가 난다는데, 죄가 어떻게 탈 수 있다는 말이냐? 그러니까 박태선 장로는 거짓이야.”라고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는 박태선 장로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 목사의 눈을 피해 밤에 몰래 집회 장소에 갔습니다. 박태선 장로님의 설교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놀라웠고 저의 마음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로 새벽예배는 인천전도관에, 일요일 오전예배는 인천 장로교회에 나가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6개월 동안 계속 갈등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도관 예배 시간에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나는데 어찌나 지독하고 고약한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호흡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어서 참다못해 밖으로 뛰쳐나가는 순간 ‘이것이 죄가 타는 냄새, 내 죄가 타는 냄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에 목사가 했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온전히 인천전도관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인천 숭의동에 전도관이 신축된 후에는 대예배 때 준비 찬송을 인도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준비 찬송을 할 때마다 마치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향취가 맡아지면서 점점 진해졌습니다. 그때부터 2-3분이 지나면 어김없이 하나님께서 등단하시곤 하였습니다. 이런 신기한 체험은 제가 준비 찬송을 인도했던 몇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하루는 저희 구역장인 정신도 권사가 심방을 같이 가자고 하였습니다. 따라나섰더니 철길 옆 움막집으로 들어갔는데 방 안에 50대 남자 분이 누워 있었습니다. 모습을 살펴보니 하체를 전혀 쓰지 못하는 반신불수였습니다. 우리는 간절히 찬송을 부르며 예배드린 후 신앙촌 캐러멜과 생명물을 건네주면서 먹어 보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정신도 권사를 만났더니 어제 심방 갔던 반신불수 남성이 일어섰다는 것입니다. 신앙촌 캐러멜을 먹고 생명물을 마신 후 하체에 점점 힘이 오르더니 일어나 걷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워 어디에다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몰라 캐러멜 곽을 벽에 붙여 놓고 경배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 후 그분이 인천전도관 예배에 참석해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수많은 교인들이 함께 놀라고 감탄했습니다.

/정인화 권사

인천은 서울 원효로 구제단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전도관이 세워진 도시였다. 하나님 집회에서 은혜 받은 사람들이 전동의 공장 건물에 모여 예배드리기 시작했고, 날이 갈수록 그 수가 늘어나 불과 12개월 만인 1956년 12월 숭의동 산언덕에 웅장한 전도관 건물을 완공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인천 천부교회의 역사는 현재 중구 우현로와 자유공원로에 위치한 천부교회에서 이어지고 있다.

◆ 인천전도관, 이슬성신 은혜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인천여상에 재학 때부터 인천전도관에 다녔습니다. 매주일이면 하나님께서 인천전도관에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셨는데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 문 여세요.”하시고 교인들이 앉아 있는 곳을 향해 ‘쉭’하고 축복하시자 하나님의 입과 손가락 끝에서 뽀얀 것이 퍼져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어머, 손에서 뽀얀 게 나온다.” 하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연기 같기도 하고 하얀 구름 같은 것이 점점 예배실 전체에 퍼지면서 사람들을 덮었습니다.

예배 마칠 때는 할렐루야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서 단상에서 내려오시는데, 예배실 안이 안개가 덮힌 듯 이슬은혜로 뽀얗게 되니 하나님 모습도 보이지 않고 1m 앞에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가시는 모습을 뵈려고 사람들이 뛰어나가는 것을 보고, 안내하는 학생들은 나가서 질서 정리를 했습니다. 저도 사람들을 안내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지나가시면서 저희들을 향해 웃으시는 그 모습은 정말 온 세상의 어떤 미소를 다 모아도 그 아름다움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신 후 아쉬운 마음으로 예배실에 다시 들어오니 제단 안은 그때까지도 이슬성신 은혜가 가득했습니다.

/노정심

2019년 4월 21일 인천교회 여성회 전도의 날 예배 모습

◆ 인천 천부교회,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하시는 교회

2014년 인천교회 권사님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생명물로 시신이 뽀얗게 피었다’라는 이야기를 말로만 들어봤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전에도 장례예배가 몇 번 있어서 볼 기회가 있었지만 어쩐지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않았습니다. 그때도 두려운 마음에 하관예배에만 참석해야지 생각했는데, 제가 운영하는 신앙촌상회 3주년 행사가 마침 하관예배 날과 겹쳐서 고민 끝에 하관 대신 입관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입관예배 때 교인들이 찬송을 부르는 가운데 장례반 권사님들이 고인을 생명물로 씻겨드렸는데, 저는 고인이 보이지 않는 맨 뒷자리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맨 앞에서 예배드리던 분이 고인의 모습을 보시고는 “앉았어.” 하고 말하는 모습이 들렸습니다. 수의를 입혀드리기 위해 장례반 권사님들이 고인의 상체를 일으켜 세우자 몸이 얼마나 노긋노긋하고 부드러운지 살아 계신 분처럼 앉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호기심이 생겼지만 용기가 없어 주저하고 있는데 옆에 계시던 권사님 한 분이 제 손을 붙잡고 고인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고인의 얼굴은 뽀얀 빛을 띠었고 입술은 불그스름했으며 볼은 보기 좋은 홍조가 물들어 있었습니다. 더욱이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 계시니 도저히 돌아가신 분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천과 서울·경기도 지역에서 오신 교분들 모두 함께 그 모습을 보고 놀라워했습니다. 저는 무서운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더 가까이 데리고 가시는 권사님을 따라 코앞에서 고인을 보고 또 봤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한 권사님께 “저 왜 안 무섭죠?”라고 얘기했더니 권사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까 그렇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그 말의 뜻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김혜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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