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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의 집회, 꼽추의 등이 “두-두-둑”하며 똑바로 펴져

안진옥(1)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49

1955년 한강모래사장 집회(아래)

저는 1936년 황해도 송화군 연방면 연교리에서 6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장로교를 믿으셔서 저는 어릴 적부터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저희 집은 농업학교 출신이신 아버지가 큰 과수원을 하셔서 부족한 것 없이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이북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공산 정권을 반대했던 아버지에게 반동분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고 재산을 전부 뺏기고 말았습니다. 6·25 전쟁 때 아버지가 이남으로 내려간 후로는 가족들에 대한 감시와 괴롭힘이 더욱 심해졌고, 열다섯 살이었던 저는 집을 떠나 송화군 진풍면에서 강제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교인들이 하는 말이 한강모래사장에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집회를
하시는데 신기한 은혜가 내리고
병이 낫는 사람이 많다고 해

진풍면은 국군과 인민군이 대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시로 총알이 날아오고 폭탄이 떨어지는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한 달 정도 지냈을 때 국군이 기습적으로 구출 작전을 해서 사람들을 구해 주었습니다. 총알이 비 오듯 쏟아지는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배에 타고 보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위기에서 구출해 준 국군 중 한 사람이 이제 자유로운 이남에서 마음 놓고 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군산을 거쳐 청주에서 지내는 동안 계속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 수소문한 끝에 아버지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경기도 평택에 있는 과수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아버지와 함께 평택에서 살게 되었고, 저도 과수원 일을 도우며 생활이 조금씩 안정되었습니다.

들것에 실려 왔던 중환자가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볍다면서
펄펄 뛰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그저 놀랍고 신기하게 느껴져

평택에서 저는 집과 가까운 서정리 감리교회에 다녔습니다. 어느 날 교인들이 하는 말이, 한강 모래사장에서 큰 부흥집회가 열린다며 여러 명이 그 집회에 간다고 했습니다.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집회를 하시는데 그분의 집회에서는 병이 낫는 사람도 많고 신기한 은혜가 내린다고 했습니다. 저는 은혜가 어떤 것인지 궁금한 마음에 그분들을 따라 집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1955년 7월, 제 나이 스무 살 때였습니다.

한강 모래사장에는 천막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고,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들것에 실려 온 환자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자 키가 크신 신사 분이 단상에 올라오셨는데, 그분이 박태선 장로님이라고 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64장 “나의 기쁨 되신 주” 찬송을 하자고 하시며 환자들도 힘차게 찬송을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한참 찬송하는 중에 박 장로님께서 강대상을 “탕!” 하고 내려치시자 거기서 불덩어리 같은 것이 확 하고 튀어나왔습니다. 저는 ‘저게 뭘까? 내가 잘못 봤나?’ 하며 어리둥절했는데, 그 순간 박 장로님께서 강대상을 한 번 더 치시자 활활 타는 불덩어리가 또 튀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찬송하는 중에 박 장로님께서 강대상을 탕 하고 내려치시자
불덩어리 같은 것이 확 하고 튀어나와 ‘내가 잘못 봤나?’ 내 눈을 의심
박 장로님이 “병 나은 사람은 일어나 뛰라!”하고 외치시자 많은 사람이 뛰어

박 장로님께서 찬송을 멈추시고 “병 나은 사람은 일어나 뛰라!” 하고 외치시자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제 오른편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아저씨 한 분이 일어서 있었는데, 그 주변 사람들은 “꼽추가 등이 펴졌어요!” “저도 봤어요!” 하며 떠들썩했습니다. 옆에서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 박 장로님께서 일어나라고 외치시는 순간 꼽추였던 아저씨의 등이 “두-두-둑” 하며 똑바로 펴지더라고 했습니다.

단상에는 30대로 보이는 여자 분이 올라갔는데 원래 벙어리였던 그분은 말문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마이크를 대 주시며 어머니를 불러 보라고 하시자 그분은 어눌한 발음으로 “어-머-이-” 하며 따라 했습니다. 또 들것에 실려 왔던 중환자가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볍다면서 펄펄 뛰며 기뻐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저는 그 모든 일들이 놀랍고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단상에는 원래 벙어리였던 사람이
말문이 열렸는데 박장로님께서
마이크를 대 주시며 어머니를 불러
보라고 하자 “어-머-이-”하고 따라해

찬송을 마친 후에는 박 장로님께서 단상에서 내려오셔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빠른 속도로 안수를 하시며 지나가셨는데,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을 안수하시느라 온몸이 땀에 젖으셨습니다. 저는 안수를 받은 후로 왠지 모르게 기쁘고 즐거워서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하는 찬송이 입가에 계속 맴돌았습니다. 한강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집회 때 생각을 하면서 찬송을 부르곤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11월이었습니다. 부산에 사시는 친척 할머니가 저희 집에 오셨는데, 할머니는 부산에서 박태선 장로님 집회에 참석했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박 장로님 이야기를 듣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할머니는 서울에 있는 박 장로님 댁의 기도실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가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니가 저에게 같이 가자고 하셔서 저는 선뜻 할머니를 따라나섰습니다.

(안진옥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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