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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상을 “탕!”하고 치시는 순간 안개 같은 것이 퍼져 나와

조경임 권사(1) / 서울 노량진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470

저는 1937년 전라북도 김제군 백구면 부용리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고향 마을은 과수원과 논밭이 펼쳐진 한적한 시골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어서 생계를 꾸렸던 저희 집은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형편이 몹시 어려워졌습니다. 신병을 앓으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면서 저는 서울로 올라가 큰집에서 생활하며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제 나이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큰어머니는 가족과 떨어진 저를 안쓰럽게 여기시며 따뜻하게 대해 주셨지만 사춘기였던 저는 식구들이 몹시 그리웠습니다. 밤마다 고향 생각에 눈물짓던 어느 날, 어릴 때 장로교회에 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렸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서울에서 교회에 다니면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외로운 마음에 위로가 될 것 같아서 저는 대방동에 있는 장로교회에 스스로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열 명 남짓한 교인들 중에 제 또래를 찾을 수 없어 실망이 되었습니다. 또 대방동 성당에 갔을 때는 저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낯설게 느껴졌고, 빵과 포도주를 먹는 미사 의식이 어색해서 다시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처음 전도관에서 열리는 집회에 가는데
연로하신 분들이 언덕길을 수월하게
올라가도록 학생들이 등을 밀어 드리는
뜻밖의 광경을 보고 정다운 마음이 들어

그 후 제 나이 스물한 살 되던 1957년이었습니다.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아가씨! 부흥집회에 안 갈래요?” 하시는데, 저는 부흥집회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다니고 싶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선뜻 아주머니를 따라나섰습니다.

당시는 전쟁 통에 끊어진 한강 다리가 복구되지 않아서 한강에 고무 다리가 놓여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고무 다리를 건너서 마포로 걸어갈 때 아주머니는 산언덕에 우뚝 솟은 커다란 교회를 가리키며 저기 보이는 전도관에서 집회가 열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언덕길을 올라가는 동안 저는 뜻밖의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길을 가득 메우며 전도관을 향해 가는 중에 연로하신 분들이 언덕길을 수월하게 올라가실 수 있도록 학생들이 등을 밀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도와 드리는 여학생과 미소를 띠며 학생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모습이 마치 친할머니와 손녀처럼 정답게 느껴졌습니다.

전도관(이만제단)은 그때까지 제가 본 건물 중에 가장 크고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그 큰 건물에 3층까지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으며 관악대가 힘차게 찬송을 연주했습니다. 잠시 후 키가 크신 신사 분이 단상에 올라오시자 아주머니는 저분이 박태선 장로님이시며 전도관을 세우신 분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마음 문 여세요.” 하신 후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하는 찬송을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찬송을 잘 몰랐지만 박 장로님의 인도에 따라 여러 번 부르는 동안 차츰 익히게 되었고, 힘차게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부르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찬송을 마치신 박 장로님께서는 단상에서 내려오셔서 예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발 하나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얼마나 가볍고 빠르게 다니시는지 ‘어쩌면 저렇게 하실 수 있을까?’ 하며 놀라웠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3층까지 다니시며 그 많은 사람을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안수하신 후 우렁찬 음성으로 설교 말씀을 하셨습니다.

설교 시간에 박 장로님께서 성신을 받으면 죄가 소멸되어 하늘의 향기를
맡는다고 하셨는데 한참 찬송을 부르고 있을 때 아주 좋은 향기 진동해
그 향기는 가슴속 깊이 스며들어 마음까지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아

예배를 드리는 동안 무척 기쁘고 즐거웠던 저는 마친 후에도 아쉬운 마음에 집에 가지 않고 머뭇거렸습니다. 그때 아주머니가 하는 말씀이, 부흥집회가 앞으로 열흘 정도 열리고 매일 새벽부터 예배를 드린다며 저에게 참석해 보라고 했습니다. 전도관에서 많은 사람이 철야 기도를 한 후 새벽예배를 드린다는 말에 저도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새벽예배를 드리고 싶어서 그 자리에 남았습니다. 옆자리의 어른 분들은 저를 보고 “아가씨는 처음 왔나 보죠?” 하시며 말을 건네시더니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전도관에 다니면 은혜를 받을 수 있다며 직접 은혜를 받은 체험을 이야기해 주셨는데, 저는 은혜가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듣다 보니 어느새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다음 날 새벽예배 시간에 박 장로님께서 설교 말씀을 하실 때였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강대상을 “탕!” 하고 치시는 순간 뽀얀 안개 같은 것이 뭉게뭉게 퍼져 나와 사람들에게로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잘못 본 줄 알고 눈을 비빈 후 다시 쳐다봤지만, 분명히 뽀얀 안개가 계속 퍼져 나와 바로 앞에 앉은 사람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었습니다.

발 하나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다니시며
안수를 해 주시는 박 장로님을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하실 수 있을까’ 놀라

저는 새벽예배를 마친 후 집에 들를 시간이 없어서 곧장 일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한숨도 자지 않고 식사를 못했는데도 웬일인지 힘이 나고 몸이 가벼워서 마포에서부터 직장이 있는 상도동까지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근무를 마친 후에는 저녁예배에 참석하려고 다시 이만제단으로 향했습니다. 한강의 고무다리를 바쁘게 건너갈 때 이만제단에서 음악종 소리가 은은히 울려 나와 저녁 하늘에 퍼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음악종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소리에 가슴이 뭉클해지며 어서 빨리 예배를 드리고 싶어서 있는 힘껏 이만제단으로 달려갔습니다.

설교 시간에 박 장로님께서는 지금 이 자리에 성신이 내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신을 받으면 자신의 죄가 소멸되어 죄 타는 냄새가 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향기를 맡기도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전날 밤에 어른 분들이 “예배 시간에 죄 타는 냄새가 아주 고약하게 나더라.” “좋은 향취가 진동하더라.” 하시던 이야기가 떠올라 그런 냄새를 맡는 사람이 많이 있나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찬송을 부르고 있을 때 갑자기 아주 좋은 향기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디서 나는 냄새인지 어리둥절하다가 ‘혹시 박 장로님께서 말씀하신 그 향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향기는 가슴속 깊이 스며들어 마음까지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조경임 권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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