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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나무가 곧 하나님’ 발표하실 때 ‘과연 하나님’ 깨달아

정국모 전직 관장(3)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306

영월제단이 완공된 후에는 한창 자라나는 고등학생들이 많이 전도되었습니다. 저는 설교 시간마다 감람나무에 대한 성경 구절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학생들은 그런 이야기를 무척 생소하고 어렵게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말씀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일단 학생들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먼저 인간적으로 친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딱딱한 설교보다는 편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간단한 성경 구절을 풀어 주었더니 차츰차츰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동강을 굽어보는 영월제단에는 학생들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넘쳐흘렀습니다.

그 후 부산 영도제단에 발령을 받아 갔을 때는 제단을 신축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영도제단의 이 장로님이 “전도사님! 준비가 잘되고 있으니 건축 허가를 신청해 주십시오.”라고 하여 부산시청을 찾아갔더니 담당 직원이 아주 친절하게 맞아 주며 일주일 만에 건축 허가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건설을 진행하는데 이 장로님이 건축 자재를 마련하고 인부들과 함께 공사를 진행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일을 도와서 일사천리로 깨끗한 제단이 완공되었습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영월에서 한 고비를 넘겼더니 이렇게 도와주시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며 하나님께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안찰을 받고 나왔는데
온몸이 솜털처럼 가벼워지며
두 발이 땅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한강 위로 훨훨 날아 오를 것 같아

1968년경에 제가 서울 4중앙 산하의 당산제단에서 시무할 때였습니다. 당시 서울 4중앙은 웅장한 제단을 완공하고 신축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모을 때여서 저도 성심껏 그 일을 도왔습니다. 그러던 중 덕소신앙촌에서 하나님을 뵙게 되었을 때 안찰을 해 주시며 “열심히 일해.” 하고 당부하셨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나와 걸어가는데 온몸이 솜털처럼 가벼워서 두 발이 땅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둥둥 떠오르는 느낌이었고, 덕소신앙촌 주변을 흐르는 한강 위로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느낌이 너무도 분명하고 생생하여 ‘이렇게 귀한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69년 저는 서울 제1중앙인 이만제단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듬해인 1970년에 서울 7중앙과 12중앙이 이만제단에서 분리하여 새롭게 발족되면서 저는 전도에 더욱 힘을 쏟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구역별로 조장을 임명하여 그 조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전도해 나갔습니다. 또한 1중앙 산하 제단의 전도사님들과 협력하여 전도를 하였으며, 특히 제단에 나왔다가 쉬고 있는 교인들 집을 지속적으로 방문하여 다시금 제단에 나올 수 있도록 애를 썼습니다.

매 주 기장을 출발 서울의 11개 전도관을 순회 하시는 초인적 강행군
하나님께서 혼신의 힘을 다해 설교하신 후 단상에서 내려오시는데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그 모습은 차마 두 눈으로 바라볼 수 없어
많은 사람을 구원코자 그토록 희생하셨던 하나님

당시 기장신앙촌에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일요일마다 소사와 덕소신앙촌을 비롯해 서울 시내의 열한 개 전도관을 순회하시며 주일예배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매 주일 새벽에 기장신앙촌을 출발하여 천리 길을 달려서 각 제단을 순회하시는 초인적인 강행군이었습니다. 이만제단에는 오전 11시 50분경에 오셨는데 저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다리며 제단 안팎을 깨끗이 단장하였습니다. 어느 날인가 하나님께서 혼신의 힘을 다해 설교하신 후 단상에서 내려오시는데, 몸 전체가 땀으로 흠뻑 젖어서 그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따스한 음성으로 “괜찮아.” 하시며 다음 제단인 4중앙을 향해 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부어 주시고자 그토록 희생하셨던 하나님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1981년에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을 때 저는 초창기 때부터 변함없는 은혜와 말씀을 상기하면서 과연 하나님이심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없었던 황무지에 1, 2, 3 신앙촌을 건설하시고 수천 리를 달려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습니다. ‘시골에 자그마한 제단 하나 세우는 것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수많은 교인들이 살아가는 신앙촌을 건설하시는 것은 어떠하셨겠는가?’라는 생각이 그때 비로소 가슴에 사무쳐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걸어오신 길을 생각하며 ‘진정 구원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하실 수 없는 일이구나!’ 하는 것을 마음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명물을 손 씻은 물 발 씻은 물이라고 비방하는 것을 듣고
그런 터무니 없는 비방이 아직도 떠도는 것이 속상해
이 진리를 바르게 알려야겠다 결심

그 후 1982년으로 기억되는데 예전부터 안면이 있던 언론인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생명물을 두고 ‘박 장로가 손 씻은 물, 발 씻은 물이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초창기에 떠돌던 터무니없는 비방을 다시 들으니 울분이 솟아올랐지만 간신히 억누르며 답변을 했습니다. “지금 전국에 전도관이 몇 개 있으며 교인들이 몇 십만 명이 되는 줄 아십니까? 그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물을 주려면 하루 종일 손을 씻어도 모자라겠습니다. 그 물을 먹일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고 받아먹을 사람은 또 누가 있습니까? 그런 엉터리 비방을 하는 사람은 상식 이하의 인간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할 뿐입니다.” 처음에는 언성을 높여 전도관을 비방하던 그 사람은 차츰차츰 제 이야기에 수긍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비방이 지금까지 떠돌고 있다니! 이런 속에서 이 역사를 이끌고 오셨구나!’ 하는 생각에 참으로 속상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등줄기에 시원한 폭포수가 쏟아지는 느낌이 들면서 온몸이 너무나 상쾌하고 시원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며 이 진리를 바르게 알려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1988년에 교역자에서 퇴임한 저는 그 후 3년 정도 시온합섬의 판매 관리부 이사로 근무했으며 소사신앙촌을 재개발 할 때는 감사로 임명받아 일을 했습니다. 제 나이 83세인 올해 기장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어 참으로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공기 맑고 아름다운 신앙촌에서 하루하루 기쁘게 지내며 자유율법대로 죄에서 떠나는 생활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구원의 참길을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리면서 허락해 주시는 시간 동안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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