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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기숙학교의 또다른 이야기, 끔찍한 아동 성학대

발행일 발행호수 2641

100년 넘게 가톨릭 기숙학교 생활을 강요받으며 문화를 말살 당해 온 아메리카 원주민 어린이들이 성직자와 교사들에 의해 무자비한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연방 정부는 1819년부터 1969년까지 미국 전역의 500개가 넘는 기숙학교에 수만 명의 어린이를 보냈다. 이 정책은 원주민 토지를 압수하고 아메리카 원주민 세대의 정체성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결국 성학대로까지 이어진 사실이 워싱턴 포스트의 조사 결과 밝혀졌다.

1885년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칼라일 인디언 학교의 학생들. (출처=데일리메일)

전국 아메리카 원주민 기숙 학교 치유 연합의 대표인 데보라 파커는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인디언 기숙학교가 전국적인 범죄 현장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라고 했다.

500개가 넘는 기숙학교의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아메리카 원주민 아이들의 문화를 제거하도록 설계되었다. 교사와 사제들은 아이들이 영어 대신 모국어를 사용하면 구타하고, 긴 머리를 강제로 자르며 굴욕감을 주는 등의 처벌을 가했다. 1900년에는 학령기 원주민 어린이 5명 중 1명이 기숙학교에 다닐 정도로 가학적이었던 이 정책은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는데, 최근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가톨릭교회와 그 분파가 운영하는 80개가 넘는 기숙학교에서 발생한 조직 내 소아성애는 끔찍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워싱턴 포스트 조사에 따르면 22개 기숙학교의 최소 122명의 사제와 목사들이 아메리카 원주민 어린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됐다. 충격적이게도 이 중 18개 학교에서는 성학대 혐의를 받고 있는 사제나 목사를 고용한 것이 밝혀졌다. 특히 1950년대와 1960년대 연방 기숙 프로그램의 마지막 해에 있었던 학대는 가족에게서 쫓겨난 1,000명 이상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자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64세인 클라리타 바르가스는 자신이 8세였을 때 워싱턴주 오막의 성모 자선교회에 보내졌을 때 고립된 채로 두려움에 떨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제가 다른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그녀를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한 뒤 무릎에 앉은 그녀를 더듬고 성추행했다고 말했다. 바르가스는 그로부터 3년 동안 성적 학대가 계속되자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었다고 말했고, 지금도 그 일이 ‘평생 나를 괴롭혔다’고 말한다.

바르가스는 “교회는 내 영혼에 상처를 입혔고, 내 영혼을 앗아갔으며, 내 어린 시절을 빼앗아 갔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우스다코타 주 마티에 있는 기숙학교로 보내진 제랄딘 샤르보노 듀보르트는 “만약 누군가가 당신이 학대를 극복했다고 말한다면, 저를 믿으십시오. 당신은 그것을 극복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75세인 그녀는 16세 때 가톨릭 사제에게 교회 지하실에서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으며 나중에 강제로 낙태를 당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기숙학교가 있던 여러 곳에서 대규모 무덤이 발견되면서 원주민 어린이들의 처우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전체적으로 학교에서 사망한 아메리카 원주민 어린이의 수는 약 40,000명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는 아직 성학대의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았다며, 이번 조사에 나서지 않거나, 나설 기회가 없었던 피해자들이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기숙학교의 설계 방식 때문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아이들은 종종 가족으로부터 수백 마일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고, 말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소외되었다.

전직 가톨릭 신부 패트릭 J. 월은 기숙학교가 ‘가해자의 원더랜드’였다고 말하며, “피해자들이 도움을 청할 수는 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듣거나 믿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 가톨릭교회 내에서 만연한 학대와 체계적 은폐 사실이 전 세계에 폭로되면서 일부 생존자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공유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알래스카 랭겔 연구소의 전 학생이었던 짐 라벨은 “나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67년을 기다려왔다”고 더 포스트에 말했다. 현재 77세인 그는 집에서 700마일 떨어진 기숙학교로 보내졌고, 가족과 문화에서 쫓겨났을 때부터 그에게는 이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가톨릭교회의 범죄를 지적하는 이유는 수많은 폭로 이후 사람들이 교회와 같은 강력한 단체에 대항할 수 있고,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아메리카 원주민 피해자 변호사 비토 드 라 크루즈는 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가톨릭교회는 캐나다 등 일부 피해자들에게 ‘문화 파괴’에 대한 역할에 대해 특별히 사과하면서도 기숙학교에서 만연한 학대에 대해 논평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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