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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흑사병(黑死病)

발행일 발행호수 2213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300여년 동안 유럽과 아시아에서 기승을 떨친 흑사병의 유행으로 인류는 가장 참담한 고통의 암흑기를 맞게 된다. 이 무서운 질병의 재난으로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이 죽었고 전세계적으로 2억 여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흑사병의 창궐로 중세기에 전쟁이 중단되고 지주들이 파산했으며, 그때까지 엄격했던 사회계층 구조가 뒤바뀌는 등 유럽은 황폐화되었던 것이다.

“슬픔이 도처에 깔리고 공포가 사방에서 조여 오는구나. 내가 이 땅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이 시대가 오기 전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인데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없이 한다.” 14세기 이탈리아 인문학자 ‘프란치스코’가 쓴 편지는 당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공포 속에 지옥의 삶을 살았던가를 알 수 있게 한다.

만일 그 흑사병의 재난이 오늘날에 재현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과학과 의술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흑사병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바이러스가 잠복하고 있을 뿐이며 또다시 유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섬뜩한 가설이 제시되었다. 리버풀 대학의 ‘크리스토퍼 던컨’ 교수 등 영국 연구진은 잠복하고 있던 흑사병 바이러스가 다시 나타날 수 있으며 만일 흑사병이 다시 유행한다면 그 피해는 중세에 비해 훨씬 더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에이즈는 1981년 미국에서 발견된 이후 전세계에서 수천 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갔으며 현재 4,000만 명이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감염되었고 매일 14,000명의 새로운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 동안 인류가 축적한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에이즈 원인 바이러스를 밝혀내고 치료약도 개발되었으나 각종 치료제에 내성(耐性)을 가진 ‘수퍼 에이즈 바이러스’가 출현한다면, 에이즈는 그야말로 치료가 불가능한 21 세기의 흑사병이 된다는 것이다.

또 요즘 아시아에서 빈발하고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AI)와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경우도 인간에게 대량으로 전염되어 인류를 위협할 제2의 흑사병으로 발전할 위험이 매우 크다. 현대사회는 세계화와 유동인구의 증가로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에 좋은 토양을 제공하고 있으며 생물무기를 이용한 테러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후진국 병으로 이미 퇴치된 것으로 알려졌던 결핵도 최근 발병률이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전세계적으로 확산됨으로써 인류의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고 세계보건기구(WHO)가 경고했다. 모든 약에 내성을 가진 ‘수퍼 결핵균’이 출현하였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된 21세기에도 에이즈, 암, 사스, 조류 인플루엔자, 내성 결핵균과 같은 의술과 치료약을 뛰어넘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계속 출현하여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인간이 하나의 질병을 극복하면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는 또 하나의 ‘수퍼 바이러스’ 가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지구의 온난화로 야기된 이상기후는 21세기 흑사병의 확산에 불길한 터전을 마련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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