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혈 아동 강제입양 인권유린
신부, 보호시설서 성폭력
‘성 원선시오의 집’ 최소 1천여 명 피해
1950년대부터 정부 주도로 시행된 혼혈 아동 강제 해외 입양과 보호시설 내 아동 성폭력 실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지난 3월 30일, 시민단체 ‘TRACE 해외입양·아동인권 진실규명연대’는 정부와 입양기관이 자행한 인권 유린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신청했다.
당시 정부와 홀트아동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등은 혼혈 아동을 ‘정리 대상’으로 간주해 주한미군 부대 주변 기지촌 가정을 찾아다니며 양육 포기를 종용했고, 수많은 아이가 강제로 부모와 떨어져 시설로 보내졌다. 특히 입양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보호시설은 끔찍한 성폭력과 아동 학대의 온상이었다.
1970년대 인천 부평에 설립된 혼혈아동 보호시설 ‘성 원선시오의 집’은 실상 지옥과 다름없었다. 시설 원장이었던 가톨릭 메리놀회 소속 K 신부는 절대 권력을 쥐고 주로 10대 백인 혼혈 남자아이들을 표적으로 상습적인 성학대를 저질렀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 1982년까지 최소 1,000여 명의 피해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말에 능통했던 K 신부가 아이들을 향해 “준비하세요”, “방에 이불 까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성폭력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신부는 10대 남자아이들 7명이 모여 있는 방에 찾아와 한 명씩 불러냈다. 공포에 질린 아이들은 신부에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 밤마다 서로 팔짱을 끼고 스크럼을 짠 채 잠을 청해야 했고, 누군가 거부하면 다른 아이가 대신 희생되어야 했다. 심한 폭행으로 피를 흘리거나 성병에 감염되어도 적절한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반항하는 아이는 고참 원생 행동대장을 시켜 피가 날 때까지 짓밟았다.
피해는 성별을 가리지 않아 여자아이들 역시 입양 직전까지 지속적인 성적 학대를 당했다. 아이들은 매일 아침 샤워도 하지 않은 채 신부복만 걸치고 위스키와 담배 냄새를 풍기며 돌아다니는 신부를 피해 숨어야 했다.
이러한 참상을 시설 내 다른 성인 직원들도 목격했지만, 신부의 권력 앞에 침묵했다. 아이들 스스로도 “이것이 미국에서 행복하게 사는 대가”라며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이 끔찍한 범죄는 한 원생의 어머니가 현장을 목격하고 격렬히 항의한 끝에 공론화될 기미를 보였으나, K 신부는 1980년대 초 어떤 징계나 형사 처벌도 받지 않은 채 건강 악화를 핑계로 미국으로 도피하듯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