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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여기 계시다는 확고한 믿음이 뿌리 내리기까지

최순환 권사(1)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373

저는 1932년 경기도 연천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위로 오빠만 다섯이 있는 집에서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유복하게 성장한 저는 열네 살 무렵에 큰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8·15 해방 후에 서울 구경을 할 겸 충신동의 칠촌 아저씨 댁에 잠시 머물렀는데 그 사이 삼팔선이 가로막히는 바람에 이북에 있는 저희 집으로 돌아갈 길이 막연해진 것이었습니다. 가족들 품으로 돌아갈 날을 애타게 기다렸으나 시간이 갈수록 삼팔선의 경계는 더욱 삼엄해질 뿐이었습니다. 부유한 칠촌 아저씨 댁에서 보살핌을 받았지만 난생처음 가족과 떨어진 저는 외롭고 불안한 사춘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난을 다니며 앞날에 대한 걱정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인생을 혼자 헤쳐 나가야 된다는 걱정과 불안으로 마음을 놓지 못했습니다. 막막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고민을 안고 지냈습니다.

70년 동안 교회를 다니던
친척 할머니의 권유로
기성교회에 따라 나갔으나
예배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아

아저씨 댁에는 아흔이 넘은 할머니가 계셨는데 그분은 70년 동안 감리교회에 열심히 다니신 분으로 저에게 교회에 나갈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를 따라 가끔씩 교회에 나가 보았으나 저는 설교나 예배에서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한 귀로 흘려버리고 예배에 건성으로 참여하는 저를 보고 할머니는 안타까워하셨지만 저는 ‘세상에 보이는 것도 믿기가 어려운데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그저 막연하고 허무하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1955년 3월이었습니다. 당시 아저씨네 가족과 함께 부산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아저씨의 외동딸인 팔촌 언니가 범일동에서 부흥집회가 열린다며 함께 가 보자고 했습니다. 남편이 의사인 그 언니는 병원의 간호원들과 왕래가 잦았는데 간호원들이 ‘범일동에 있는 장로교회에서 교회를 새로 지으려고 유명한 부흥강사를 모셔 와서 며칠 동안 집회를 연다.’라는 소식을 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 부흥강사는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으로 그분이 집회를 하시면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언니의 권유에 못 이겨 집회가 열리는 첫날부터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집회장은 범일동에 있는 희망예식장으로, 교회가 협소하여 그 동네의 큰 건물인 예식장을 빌려서 집회를 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언니와 제가 도착했을 때는 벌써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서 간신히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그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조용히 기도하면서 예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곧이어 등단하신 박 장로님께서는 손뼉을 치시며 찬송을 인도하셨는데 저도 사람들 틈에서 열심히 손뼉을 치며 찬송을 따라 불렀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예배에 갈 때면 항상 권유에 못 이겨 마지못해 따라가는 정도였으나 그 집회에 한 번 참석한 뒤로는 왠지 모르게 또 가고 싶어졌습니다. 다음날 언니는 낮예배에만 참석했지만 저는 새벽예배와 낮예배, 저녁예배까지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초창기 박장로님이 인도하시는 집회에서
사흘 째 되는 날 활활 타는 불덩어리가
떨어진 것 처럼 온 몸이 뜨거워 지더니
“내가 하나님이야”하시는 박장로님의
부드러운 음성이 세 번이나 똑똑히
귀에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집회 사흘째 되던 날 새벽예배 시간이었습니다. 한참 찬송을 부르고 있을 때 갑자기 활활 타는 불덩어리가 제 앞에 떨어진 것처럼 순간 온몸이 견딜 수 없이 뜨거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박 장로님께서 아주 부드러우신 음성으로 “내가 하나님이야. 내가 하나님이야. 내가 하나님이야.” 하고 세 번 말씀하시는 소리가 제 귀에 분명히 들렸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께서는 힘차게 손뼉을 치며 찬송을 인도하고 계시는데 제 귀에는 “내가 하나님이야.” 하시는 박 장로님의 음성이 똑똑히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놀라움은 형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날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의심하던 제 모습이 떠오르면서 저도 모르게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때 굳게 닫혀 있던 저의 마음이 활짝 열리고 분명한 하나님이 여기 계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렇게 얼마 동안 울었을까, 쉴 새 없이 흐르던 눈물을 그치고 나니 몸이 어찌나 가벼운지 둥실둥실 떠올라 하늘까지라도 올라갈 듯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차고 넘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살면서 그렇게 기쁜 적은 처음이었으며, 저는 할머니가 말씀하시던 천국이 떠올라 ‘천국에 가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에는 한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반짝이는 햇살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고,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라 해도 저처럼 기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집에 잠깐씩 다녀오며 집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 참석했는데, 집회 중 하루는 예배를 드릴 때 아주 지독한 냄새가 풍기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머리카락 한 다발을 태우는 것처럼 고약한 냄새가 코를 들지 못할 정도로 진동하더니 예배실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처럼 뽀얗게 되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잠시 후 그 고약한 냄새는 싹 걷히고 은단을 먹은 것처럼 입 안이 시원해지며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마음 속에 차고 넘치는 기쁨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렇게 기쁜 것은 난생처음
‘천국에 가면 이런 느낌일까?’

그 후 5월에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박 장로님의 집회가 열렸을 때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참 찬송을 부르고 있을 때 빗방울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봤더니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제 옷을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젖은 곳이 전혀 없는데도 계속해서 이슬비가 내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날 예배를 마친 후 주변에 앉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는 ‘은혜’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서는 은혜가 내려서 죄가 타는 고약한 냄새가 나기도 하고 아주 좋은 향기를 맡는 일도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예배실에 뽀얀 안개나 이슬비처럼 내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라고 하면서 박 장로님 집회에서는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럼 나도 은혜를 받은 것인가?’ 하면서 직접 은혜를 체험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공설운동장 집회 후에는 부산 지역의 여러 교회에서 박 장로님을 초청해 집회를 열었는데 저는 집회 소식이 들리면 한달음에 달려가 참석을 했습니다.

(최순환 권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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