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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설교하시는데 활활 타는 불덩어리가 튀어나와

박정순 권사(2) / 덕소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345

그 후 군인인 오빠가 광주에 있는 부대로 발령받게 되면서 저희 가족은 광주 근처의 일곡으로 이사했습니다. 하루는 광주 시내에서 벽보를 봤는데 조선대학교 아래의 ‘광주전도관’이라는 곳에 박태선 장로님이 오셔서 집회를 하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고대하던 박 장로님의 집회 소식을 알게 되어 얼마나 기쁘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저는 집회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집회가 열리는 날 광주전도관을 찾아갔습니다.

광주전도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빼곡하게 채우고 앉아 있었습니다. 저도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앉아 예배를 드리는데 어느 순간 아주 좋은 향기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향기는 광주공원 집회에서 맡았던 바로 그 향기였습니다. ‘아! 은혜구나.’ 하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한 번만이라도 박 장로님 집회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와서 은혜를 받는구나.’ 하며 전도관을 찾은 것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광주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광주전도관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서
광주공원 집회에서 맡았던 향취를 맡아
고대하던 하나님 집회에 참석해
은혜 받은 것이 감사해 눈물 흘려

저희 옆집에는 육군 준위의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저는 그 집 아주머니인 숙이 어머니에게 전도관에 가 보자고 했습니다. 제가 은혜를 받았던 체험담을 이야기하며 광주전도관에 가자고 했더니 그분은 흔쾌히 따라나섰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숙이 어머니가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설교하시던 중에 단을 ‘쾅!’ 하고 내려치시자 활활 타는 불덩어리가 튀어나와 자신에게로 떨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불덩어리를 맞는 순간 견딜 수 없이 뜨거웠다고 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교인들이 ‘불과 같은 성신’을 받았다고 하던 것이 떠올라 “숙이 어머니가 불성신을 받았나 봐요.”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숙이 어머니는 그때부터 광주전도관에 열심히 다니게 되었고 남편도 전도해 같이 제단에 나왔습니다.

광주제단에 계속 다니면서 우리 동네 사람들이 열 명 가까이 광주제단에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단이 멀어서 새벽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그분들과 함께 “우리 동네에 전도관을 세우자.” 하고 뜻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일곡은 농사를 짓는 동네여서 다른 집의 농사일을 도와주고 품삯을 모아 건축 자금을 마련했으며, 얼마 후에는 흙벽돌을 찍어서 제단 건물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마을 입구의 확 트인 곳에 깨끗한 ‘일곡전도관’이 지어지면서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습니다.

광주전도관까지 거리가 멀어 새벽예배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우리 동네에도 전도관을 세우자` 논의 후
마을 입구에 ‘일곡전도관’을 세웠는데 교인 늘어나

그 후 군인과 결혼한 저는 1961년에 남편의 발령지를 따라 강원도 철원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철원전도관과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하고 매일 빠짐없이 제단에 나가 새벽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은숙이 어머니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30대 후반인 그분은 남편이 농촌지도소 소장을 맡고 있어서 동네의 대소사를 훤히 알고 있었는데,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생각해서 해 주는 말인데 전도관에 가지 말아요. 동네에서 전도관을 안 좋아해요. 객지에 나와 살면서 사람들한테 나쁜 말 들으면 안 좋잖아요.” 하며 앞으로 전도관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 터무니없는 죄목으로 투옥되시고 전도관을 비방하는 기사가 신문에 실리다 보니, 동네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고 전도관을 반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비방하는 말만 들으시는 것 같은데 저는 전도관에 다니면서 받은 은혜가 분명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다닐 거예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하나님 집회와 전도관에 다니며 받았던 은혜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의외로 은숙이 어머니는 관심을 보이며 유심히 귀를 기울였고 전도관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당시 소사신앙촌의 소비조합 몇 분은 장사를 하러 강원도에 올 때마다 저희 집에 찾아와서 신앙촌 소식과 하나님의 설교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은숙이 어머니에게 소개시켜 주었는데, 은숙이 어머니는 전도관과 신앙촌에 대해 궁금한 것을 많이 물어봤습니다. 특히 ‘신앙촌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성실하게 일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곳’이라는 이야기에 감명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시는 감람나무’와 같이 성경 구절을 풀어 주시는 말씀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무어라 비방을 해도, 저는 전도관에 다니면서
받은 은혜가 분명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다닐 겁니다`하며
제가 하나님 집회와 전도관에서 받았던 은혜를 이야기 하니
반대하던 사람도 귀를 기울이고 자기도 전도관에 가고싶다고 해

그러던 어느 날 은숙이 어머니가 결심한 듯 “나도 전도관에 다녀야겠어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동안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전도관에 가지 말라고 했어요. 앞으로는 나도 다녀야겠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은숙이 어머니는 그때부터 매일 새벽예배에 나오면서 구석구석 제단을 청소했으며 자신도 은혜를 받고 싶다면서 제단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열심이었습니다. 저는 그분과 같이 즐겁게 제단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아쉽게도 그분의 남편이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철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분과 저는 “우리가 전도관에 계속 나오다 보면 언젠가는 만날 날이 있겠지요.” 하며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제가 철원제단에 계속 다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주제단에 오셔서 집회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가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때 마침 친정어머니가 저희 집에 와 계셔서 어머니에게 원주에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광주에 있을 때도 전도관을 그렇게 쫓아다니더니 강원도에 와서까지 그러냐.” 하시며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집회가 열리는 날 저는 어린 딸아이를 업고 원주제단으로 향했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에는 안찰을 받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눈에 가볍게 손을 얹으시고 안찰을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길게 줄을 서서 차례대로 한 명씩 안찰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손을 살짝 대시기만 해도 어떤 사람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러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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