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이 담긴 신문 ‘신앙신보’
신앙신보 in 신앙체험기신앙신보는 하나님 말씀과 더불어 천부교회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신앙신보를 읽고 천부교에 관심을 갖게 되거나, 하나님 말씀과 은혜를 새롭게 깨닫게 된 분들이 있습니다.
1961년,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박양희라는 친구가 쉬는 시간마다 신문을 열심히 보기에 무슨 신문인지 궁금해서 보여 달라 했습니다. 친구는 전도관에서 나오는 신앙신보라며 박태선 장로님의 설교 말씀이 실려 있다 했습니다. 신문을 받아 들고 말씀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쏙 빠져서 읽었습니다. 결혼 전까지 장로교회에 다녔지만 자유율법이 성경에 나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설교 말씀에 마음과 생각으로 죄짓지 않는 것이 자유율법을 지키는 것이고 자유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 했습니다. 모세율법에서는 남의 것을 훔쳐야 도적죄가 되지만 자유율법에서는 훔치고 싶은 마음을 가질 때 죄가 된다 했고, 길가에 떨어진 구부러진 못도 자기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자유율법은 차원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결되는 말씀이 궁금해서 그때부터 매주 나오는 신앙신보를 기다렸다 읽었는데 우리 집 옆에 음악종 울리는 교회가 청주전도관이라는 것을 알고 당장 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 주 일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다 청주전도관에 가게 되었습니다.
1958년 어느 날, 저는 남편을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전도관에서 발행되는 신앙신보를 읽어 보라고 주었습니다. 남편은 처음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한쪽으로 밀쳐 두었으나 그래도 계속 신문을 갖다 주며 권했더니 결국 펴 들고 읽어 보았습니다. 신앙신보에는 하나님의 설교 말씀이 실려 있었는데 그 말씀을 한참 동안 유심히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신앙신보를 읽은 후로 남편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마산시청에서 근무했던 남편은 퇴근 후 영화관에 들르는 것이 하루 일과일 정도로 영화 관람을 즐겼으며, 술과 담배를 무척 좋아하여 건강을 위해 끊으려고 했다가도 번번이 실패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신보를 읽은 후로 영화관에 가던 발길을 딱 끊어 버리고 술과 담배를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손에 담배 냄새가 배어 있었는데 그 냄새마저 역겹다고 했습니다. 그때 남편에게 마산전도관에 다닐 것을 권유했더니 다음 날부터 새벽예배에 참석하며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신앙신보를 읽고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신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신이 역사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신앙신보를 이전보다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1981년 제1회 이슬성신절에 하나님께서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시는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습니다. 저는 미국에 있어서 말씀을 자주 듣지는 못했지만 신앙신보를 통해 말씀을 읽으면서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슬 같은 은혜는 하나님의 신이며 하나님의 신을 내리는 자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하실 때 ‘과연 그렇구나!’ 하며 무릎을 쳤습니다. 초창기부터 하나님의 성신을 내려 주셨던 일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하나님만이 내리실 수 있는 은혜를 직접 체험하게 하시고, 하나님이심을 차근차근 깨우쳐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신앙신보는 하나님 말씀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만제단에 다니면서 차츰 하나님 설교 말씀을 이해하며 깨닫게 되었는데, 구원을 얻으려면 죄와는 상관없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는 한 말씀 한 말씀이 제 마음속에 울렸습니다. 구원의 참길을 깨달은 이상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 길을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1963년 군에 입대한 저는 논산훈련소에서 신병 훈련을 받은 후 계속 그곳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병영 생활을 하며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서 친구 재환이가 보내 주는 신앙신보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매주 신문에 실리는 설교 말씀을 통해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고 은혜 체험담을 읽을 때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는 예배 시간이 몹시도 그리웠습니다.
그 후 근무지가 27연대로 옮겨지면서 일요일 외출이 허용되어 인근의 금마전도관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단 하루 예배에 참석하는 그 시간이 더할 수 없이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금마전도관은 언덕 위의 자그마한 시골 제단이었는데 하루는 예배드릴 때 향취가 강하게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제단을 가득 채우는 듯한 향취 은혜 속에서 이곳 시골 제단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심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주 하나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니” 하는 찬송가를 그때 절실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1955년 11월 광주공원집회에 참석해 불성신과 향취 은혜를 체험한 저는 그 후로 하나님의 집회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1956년 4월 여수 집회에 참석했을 때, 그 집회에서 전도관 소식이 실리는 신앙신보가 발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저는 신앙신보사에 편지를 띄워서 학교로 신문을 보내 주시기를 부탁드렸습니다. 다음 주 배달된 우편물 속에는 신앙신보와 함께 광주에 전도관이 세워질 거라는 반가운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매주 신앙신보를 읽으며 하나님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게 되었고 전국 곳곳에 세워지는 전도관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1956년 9월 드디어 광주전도관이 세워지면서 그곳에 다니게 되었으며, 하숙집을 전도관 옆으로 옮겨 매일 새벽예배에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1982년 미국 텍사스로 이민을 간 저는 다시 제단에 다니려고 찾아보았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전도관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려고 한인들이 다니는 감리교회에 갔더니, 마침 그날 박사 학위가 넷이나 있다는 목사가 초빙되어 강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가 전도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전도관에서는 발 씻은 물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목사에게 “그 물을 마셔 보셨습니까? 아니면 그런 광경을 직접 보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목사는 우물쭈물하면서 직접 보지는 못했고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전도관에 수십 년 다녔어도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어떻게 목사라는 분이 거짓말을 하실 수 있으십니까? 앞으로 어디를 가서도 그런 말씀은 하시지 마세요.”라고 하자, 목사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생명물을 통해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을 직접 체험했는데 그런 되지도 않는 말을 들으니 너무나 속이 상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어떻게 하면 제단을 찾을 수 있을까요?’하며 울고 있는데, 불현듯 덕소신앙촌에 아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 보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보냈더니 얼마 후부터 2주에 한 번씩 신앙신보를 보내 주었으며 텍사스에 사는 교인들도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신앙신보를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으면서 고향을 다시 찾은 것처럼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고, 하나님 말씀 테이프를 받아 매일같이 듣고 되새기면서 다시금 신앙을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제단이 있는 뉴욕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제단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신앙신보는 구원의 말씀을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신앙촌 물건을 전해 주는 고객 중에는 경북 풍기에서 세탁소를 경영하는 분이 있습니다. 풍기 장로교회 장로로 교회 활동에 적극적인 그분은 나름대로 신앙생활에 마음을 많이 기울이는 분입니다. 신앙촌 물건이 제일 좋다며 무척 애용하는 그분에게 저는 신앙신보를 꾸준히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신보를 준 후부터 그분이 저를 볼 때마다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신앙신보를 두 손으로 아주 소중하고 공손하게 받았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하는 말이, 천부교인들은 참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날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 그렇게 웃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저는 저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생활이 어려웠던 그때는 웃는 일이 드물었지만 하나님을 알고 난 후부터 밝게 웃을 수 있었고, 소비조합을 하며 그 기쁨을 좋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제 소망은 전도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 그 씨앗이 마음에 남아 있는 사람들, 하나님을 알지 못해도 신앙촌을 참 좋아하는 오랜 고객들…….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조금만 더 정성과 마음을 기울인다면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전도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면 저의 정성이 부족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제게 남은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온전히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며 그 은혜를 널리 전하고 싶습니다.
요즘 저는 신앙신보를 가까운 친척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신앙신보에 실리는 하나님 말씀을 보면 하늘나라에서 살던 인간이 어떻게 해서 지구에 떨어졌으며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말씀이 나온 신앙신보를 모아 두었다가 보내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성공하여 잘살고 있는 친척들이지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만큼 큰 복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가 들어 인생을 돌아보니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서 기쁘고 행복하게 지내온 세월이었습니다. 제가 받은 은혜와 기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깨닫는 데 아주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