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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의 충고

발행일 발행호수 2199

북한이 핵을 가지고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다가 6자회담에 복귀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6자회담 당사국들은 협상 전략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북한이 일단 대화의 장으로 나온 것에 안도하는 분위기지만 북한의 행태로 보아 회담의 전망은 낙관할 수 없으며 6자회담이 실패할 경우에는 한반도의 정세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점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6자회담의 성공을 위해 몇 가지 충고와 제안을 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하겠다. 키신저는 6자회담 성공의 3대 원칙으로 첫째, 회담에 복귀하는 것만으로 북한에게 제재 중단이란 선물을 안기지 말아야 하며 둘째, 북한이 북핵 폐기 이외에 그들의 불만을 협상의 의제로 삼도록 해서는 안 되며 셋째, 협상이‘북한의 비핵화’라는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핵심 의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북한의 핵 폐기 프로그램 일정이 확정될 때 비로소 경제원조 및 북한 체제의 보장 계획도 세워야 한다고 했다.

키신저는 또 미국은 여론에 밀려 미·북 양자협상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양자협상의 틀 속에서는 북한이 합의된 사항을 어기지 못하도록 강제할 나라가 미국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북한은 미국과의 새 양자합의를 나중에 미국을 공갈 협박하는데 다시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키신저는 미·북 양자협상이 교착되면 점증하는 남한 내부의 민족주의적 감정으로 볼 때 그 책임을 미국 탓으로 돌릴 것이며 이러한 양자협상의 함정으로 한·미 관계는 더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미국과의 양자회담을 통해 스스로 한민족 이익의 대변자로 자처하면서 한국 정부를 미국의 꼭두각시라고 선전할 것이며 자신을 핵보유국으로 대우해 줄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키신저는 한국의 좌파들이 미국을 한반도 긴장의 원흉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어설픈 평화주의자들은 북한의 핵무기가 미국의 위협에 대한 자위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순진한 민족주의자들은 북한의 핵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선전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스스로 미국과 북한의 ‘중재자’를 자임하고 미국에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제재와 압박보다 평화적 협상을 촉구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결국 회담에서의 지렛대가 사라져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협상의 귀재라는 키신저의 이와 같은 충고는 베트남 전쟁 당시 자신의 역할에 대한 뼈아픈 후회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1973년 키신저는 공산 월맹의 전략에 말려 이른바 평화 협정을 체결하였고 그 결과 베트남은 적화 통일되고 말았던 것이다. 만일 북한이 6자회담으로 시간을 벌면서 핵무기와 미사일 발사능력 개발을 계속한다면 한반도의 정세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바뀌게 된다. 6자회담이 ‘북핵 폐기’라는 지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회담의 성공 전략으로 압박과 제재가 필요하다”는 키신저의 충고를 경청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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